다음과 같은 말씀은 어떻게 읽고 해석을 하며 신앙을 해야하나요 <?>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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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에 집중해 보자!
1. 은혜주의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상당히 부담이 되는 성경절이다.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예수님이 왜 또 계명을 들먹거리시나?
예수님의 십자가을 믿으면 됬지 왜 또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우선, 예수님도 구속주 되시는 본인과 계명을 분리 시키지 않으셨다
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한다.
은혜와 계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같이 가야한다.
이 불가분의 관계를 무시하거나 이해 못하는 신학은 제대로
된 신학이 아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신학이 이 계명을 무시하고 세운 신학들이다.
이것을 복음이라 하며 목을 메고 있다.
이 부분에서 사단은 대박을 터트렸다.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한다. 우리...
2. 율법주의 자들 혹은 행함주의 자들은,
이 말씀이 없었으면 망했을 뻔했다.
복음주의 자들에게 들이 대는 전가의보도 처럼 된 성경절이다.
봐라, 믿음으로 구원얻었으나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되!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어!
그래서 나온 결론적인 구원론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구원얻은 사람은
자원해서 계명을 지킨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믿음이냐? 행함이냐? 의 트랩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믿음으로는 확실하고, 그렇다고 계명을 열심히
지키다보면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고,
이 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일 피해를 본 무리들이 재림교인들일 것이다.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었는 데,
계명을 지키는 자신을 보니 시원치 않고
그래서 은혜주의 나 복음주의 자들같이 확근한 신앙이 없고,
덤덤한 무표정이 오늘날 재림교인들의 대부분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이 부분에서도 사단은 대박을 터트렸다.
아니 그런가!
3. "율법(계명)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그 해답이다!
이것이 깨달음의 첫 시작이다.
당신이 정직하기만 하다면,
당신이 조금만 지혜가 있다면,
당신이 조금만 도자 다운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혁명의 시작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 하나 만을 주지 않았다.
여기 요14:15 과 같이 예수(복음) 와 계명을 같이 주셨다.
"하나님의 계명" 과 "예수믿음" (계14:12, 계12:17)
구원 얻을자들에게 확실하게 이 두 elements 를 주셨다.
그런데 이 두 elements 를 보면,
예수는 복음이요
계명은 행함이다.
이 둘은 사로 상극이다. 우리가 생각 하는 frame 에서는,
그래서 생각 한것이 한 무리는 계명을 버리기로 했고,
한 무리는 이 둘을 껴안고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만 가까이 이해 한다면
상당히 전략(Strategic)적인 분이신 것을 알 수 있다.
이 two elements 를 인류에게 주신 것은 systematic 그리고 strategic 한
창조주의 지혜가 거기에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세상의 구속주와 여호와의 율법을 함께 바라볼 때
그 두 속성의 연합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18:35) 라고 부르짖게 한다.
(리뷰 1892. 12. 13)
지난 수세기 동안 이 지구상에서 어느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구속주와 율법의 조화를 논한자가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율법 = 행함" 이라는 등식으로 세뇌 되어있다.
다시,
"율법(계명)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
"율법은 묵상하는 것이다." (시1:2;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나이다)
왜?
율법(계명)은 하나님의 성품을 애끼스로 우리에게
쉽게 풀어 친절하고 겸손하게 간추려 놓은 것이니깐,
그 계명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깔을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스니깐,
가까이 가면 우뢰소리 같고, 태양 빛 보다 수천배 밝은 분이
어떤 분인 줄을 우리는 알 도리가 없으니깐,
간추린 그야마로 간단하게 만들어준 그분의 성품을 우리는 명상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그 거룩하고 높은 분 앞에 (계명)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깐,
나는 감히 주눅이 들어 얼굴 조차 들 수 없는 존재임을,
그 분의 성품앞에 숨도 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
"나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7:24)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사6:5)
그 순간,
이 곳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십자가 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 그분의 전적인 은혜를 붙잡게 된다.
그야말로 은혜에 메달리게 된다.(로7:25)
그 다음 그 마음에 밀려 오는 기쁨은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으랴!
한번 만의 경험인가?
아니다.
인간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성찰이 되었다면,
거만 떨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은혜를 갈구하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시1:2)
왜?
더 큰 은혜를 늘 받고 싶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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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인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이렇게 읽어야 한다.
"너희가 나의 계명을 열심히 지키려다 보면,
율법의 요구가 너무 높아서(묵상),
그리고 너(인간)의 처지가 너무 형편없어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십자가가 절실히 필요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예수를 더 갈급하게 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너는 완전한 자유와 은혜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민초스다 식구들에게,
이 완전한 자유와 은혜가
영원히 있으라!
님,
'간단명료' 하게 드린 질문대로
율법이라는 용어에 혼돈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에 말씀하신 '계명' 은
'법'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들하나님에게 '계명 (법)' 을 주셔서
아들은 그 계명(법)을 지켜 아버지 안에 거했나요?
아니지요?
'계명' 이란 말로 번역을 하지만
예수님의 명령, 뜻, 주문,너희를 향한 간절한 염원... 이런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부터 주욱 읽어 보십시오.
뭔가 잡히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것은 '법'의로서의 '계명' 이 아닙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묵상한 율법은
여러 다른 단어들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법' 이 아닙니다.
그래서 소생이 '간단명료' 한 질문을 드린 겁니다.
님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율법'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율법' '계명' 으로 번역되는 말들이
요즘 우리가 이해하는 용어 '법' 으로 혼동되어서
우리는 수렁 속에 빠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