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오랜만의 안부 편지 이지만 오늘은 안녕하셨느냐고 물을 수가 없습니다.
온 나라가 깊은 좌절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수장되어 가는 이때에
안녕을 묻는 것은 철모르는 아이들도 하지 않을 바보 같은 물음일 것입니다.
두 달째 계속되는 이 막막한 아픔에 대해서는 저도 뭐라 위로의 말씀 드릴 재간이 없어
입도 벙긋 못하고 다만 진실과 정의가 살아나길 바랄뿐입니다.
K형,
제가 겪어보니 ‘오래 앓는 병은 약이 된다’는 말 다 헛말입니다.
‘속히 막힌 곳은 뚫고 썩은 살은 도려내며 어긋난 뼈는 바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대로
죽을 때까지 골골 지질히 고생만 하다가 죽을 뿐입니다.
손 놓고 있다가 저절로 낫는 그런 요행은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가만히 있’으면서 낫기를 바라는 것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의롭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신의 섭리도 아니며 현실적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의 육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K형,
제가 사는 이 동네는 겉으로는 너무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6월 15일)이 Father's Day, 아버지의 날이라 합니다.
아침부터 딸과 아들이 전화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비의 안부를 묻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해지고
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해진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귀를 막고 걸어보면 창백하게 피 도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지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피는 다리를 절며 혈관의 모서리 돌아 겨우 추락했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 가야하는 아득함에 힘 다한 마라토너처럼 맥을 놓고는,
검게 굳어버린 허파의 계곡 같은 주름을 전력을 다해 넘어 올라오는 날숨에서는
이제는 바쁜 도시의 오래된 차와 같이 힘겨운 매연 냄새가 납니다.
K형,
이미 저도 백사장을 가로로 걸으며 세로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어지러워 휘청거린지 오래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평생 달고 다니는 그림자와는 태양을 마주할 수 없는 법
그저 어둠을 등지고 빛을 향해 가다보면 밝은 곳에서 만날 날 있지 않겠습니까.
K형,
‘사유는 종종 죽 그릇 앞에 가지런히 놓인 젓가락’이거나,
‘면 그릇 앞에서 윤이 나는 수저‘와 같다합니다.
죽인지, 면인지 오리무중으로 닥쳐오는 현실 앞에서
미리 갈고 닦는 사유란 쓸모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차라리 즉물의 세계에 던져진 신체가 말하는 진실'에 저는 더 자주 열광합니다.
사유는 늘 그 뒤의 일이며, 역시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인가 봅니다.
저의 오랜 바람이 있다면,
모든 사유가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정의와 진실의 행동을 직면하는 것인데
형은 어떠하신지요.
K형,
이제 가로등이 눈을 떴습니다.
밤새 눈동자가 불타올라, 새벽 쯤 안압이 터져버릴 겁니다.
어리석은 아우가 형의 건강과 그 바다를 걱정하는 모양이 꼭 그러합니다.
그러니 속히 몸 추려 진실의 바다 위로 힘차게 떠오르시라 재차 소망합니다.
추) K형, 이 노래를 즐겨 부르셨지요?
안녕하신지요?
라고 하는 이 질문이 참 진부합니다
쓰신 글이 모두에게 던진 화두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자기앞의 일만 코가 빠집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