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에서 -곽건용

by 김균 posted Jun 19, 2014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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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내가 미국으로 간다니까 고등학교도 대학도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송별회란 것 해줬다. 그때가 1993년이었으니 이미 대학을 졸업한지 10년도 더 지나 친구들 모두가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고 결혼도 해서 자녀들도 한둘 씩 있을 때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 같은 계열(그때는 계열로 신입생을 뽑던 때였다)에 진학한 친구가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그 중에 법대에 진학한 친구는 두 명이었다. 왜 하필 법대냐고? 지금은 법대가 없어지고 미국처럼 법학대학원 체제가 됐으니 자기가 졸업한 학과가 없어지는 '비운'을 겪는 게 불쌍해서......는 아니고 오늘 하려는 얘기가 판사에 대한 얘기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이 1학년 때부터 '우열반'을 나눴는데 우리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부 좀 하는 넘들과 덜 하는 넘들을 구분했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지만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 문과와 이과를 다시 나눴다. 그러니까 문과 우수반과 열등반(이라고 부르진 않았던 거 같지만), 이과 우수반과 열등반이 있었던 거다. 사정이 이러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2학년 때 문과를 택했고 3학년 올라갈 때 열등반으로 가지 않는 한(그런 경우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3년 내내 같은 반일 수 있었던 셈이다. 친구관계가 폭넓지 않은 대신 깊을 수는 있었던 거다. 같은 대학 같은 계열에 진학한 여덟 명 중에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있었다. 법대 간 두 친구가 다 그랬다고 기억한다. 

그날 송별회에는 법대 간 두 친구 중 한 친구만 나왔다. 그 친구는 당시 법관이었고 나는 그때 소위 '운동권' 교회로 알려진 교회의 부목사였는데 내가 일하던 교회 담임목사께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 반의 실형을 살고 나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아무리 친구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그리 편치 않은 얘기를 친구라는 이유로, 그리고 곡주가 상당히 들어갔다는 핑계로 현직 판사인 친구에게 따지듯 물었다. "야, 너희 법관들 왜 그러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라고 말이다. 내 얘기는 시국사건이나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서 거의 예외 없이 기계적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법관들에 대한 항의성 질문이었다. 

그러자 '순둥이'인 그 친구는 매우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 근데 그게 판사의 재량이란 게 거의 없거든. 무슨 행동을 했으면 실형 1년, 거기다 또 무슨 짓을 했으면 1년 반 등등 다 정해져 있어. 판사를 그대로 판결을 내리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친구가 한 말을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니지만 뜻은 대체로 이랬다.

나도 그런 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현직 판사 입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형량 정량제 얘기를 들으니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 자리가 내 송별회 자리여서 무거운 얘기는 그 정도에서 그쳤지만 나는 대한민국 법원이 적어도 국가보안법 사범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선 법관에게서 진실을 들었던 거다. 

오늘 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 얘기가 생각났다. 아, 대한민국 법원은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매우 씁쓸했다. 

이 판결을 내린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고 스스로 생각할까? 아니면 자기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아파하면서 판결했을까? 그런 판결을 내리는 게 한 민주주의 국가의 법관으로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갖지 않고 당당하게 판결했을까?

나는 내 친구가 법관 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건을 맡았다면 어떻게 판결했을까를 상상해봤다. 나는 그 친구의 정치의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그가 얼마나 '순둥이'였는지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 친구는 소위 공부 잘 하는 녀석치고는 너무도 순둥이여서 놀려 먹기 미안할 정도였는데 만일 그가 정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또는 '조작된' 국가보안법 사건을 맡았다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을 내린 법관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에 뉴스를 들으면서 든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봤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내 친구 판사가 누군지 궁금할지 모르겠다. 또 이 글에 반감이 드는 분들 중에는 그 친구 신상을 털어보고 싶은 분도 있을 거다. 애쓰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 친구는 이미 오래 전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으니까. 다른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트럭에 치었는데 트럭 운전사는 그들이 살아 있는 걸 보고 되돌아가서 한 번 더.... 나는 이 소식도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몇 년 후에 들었다. 

내가 아는 한 헌법학 교수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개혁이 시급한 곳은 법원입니다." 나는 그나마 법원이 제일 나은 줄 알고 있었으므로 그때는 이 말 뜻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알 거 같다. 이런 일이 소수의 양심 없는 법관들만 저지르는 일탈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그 분 말에 점점 동의하게 되는 나를 보는 일이 참으로 서럽다. 

이 보잘것없는 글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법관이었던 '순둥이' 내 친구 영진이에게 바치고 싶은데 그 친구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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