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여러 번 죽이기

by 김원일 posted Jul 27, 2014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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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8 11:48수정 : 2014.07.28 12:36

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그를 ‘부관참시’ 하고 사돈에 팔촌까지 희생시켜
유씨의 잘못이 밉지만 이 정권의 야만은 더 끔찍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68

주검을 꺼내어 목을 베거나 벤 목을 거리에 내거는 것을 부관참시(剖棺斬屍)라고 합니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조선조에선 극형 중의 극형이었습니다. 묘를 파내어 시체에 채찍질을 했다는 중국 오자서의 일화에서 나온 굴묘편시((掘墓鞭屍)도 있었습니다. 부관참시는 조선의 폭군 연산군 때 성행했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했다거나, 어머니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게 했다 하여, 연산군은 김종직, 송흠, 한명회, 정여창, 남효온, 성현 등을 부관참시했습니다.

유병언씨의 사체가 전국 방방곡곡에 사실상 효수되었습니다. 백골과 구더기로만 발견된 죽음도 비참한데, 목이 부러지고 손가락이 잘렸으며, 그 사체는 생방송을 통해 낱낱이 전국에 방송됐으니 참혹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 개인의 주검이 이렇게까지 능멸당한 건 연산군 이래 일찌기 없었던 일입니다. 세상의 인심이 그렇게 흉악해진 것도 아니고, 범죄가 그렇게 흉폭해진 것도 아닌데, 지금 대명천지에 그런 짓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씨는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그런 참혹한 죽임으로 몰렸으며, 죽은 뒤에도 참시되고 효수되는 것일까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떠나, 과연 유씨가 그렇게 토끼몰이 끝에 죽고 또 참시 당할 죄가 있었던 걸까요. 세월호의 사실상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법과 인권을 앞세운 민주국가에서 연인원 180만여명의 경찰에 군까지 나서서 그를 구더기 밥으로 떠밀어도 되는 것일까요.

검찰과 경찰이 그에게 적용하려는 건 과실치사상이었습니다. 세월호 승객 300여명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과 유씨는 형식적으로 무관합니다. 비상연락망 등에 그가 회장으로 기재돼 있다거나, 김한식 청해진 대표가 세월호 증개축을 지시한 것은 유씨라고 진술한 것 등이 고작입니다. 청해진해운의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대주주는 그의 아들인 유대균, 유혁기씨입니다.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의 관계보다도 유씨와 청해진해운과의 관계는 멈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 그에게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하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게 이 나라 법과 양식의 판단입니다.

그에게 그런 죄를 준다면, 한계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이명박 정부, 그런 배에 대해 두번씩이나 안전 심사를 통과시킨 한국선급, 과적과 엉터리 고박 상태에서 출항 허가를 내준 자들에겐 어떤 죄를 줘야 합니까. 그들은 오히려 유씨보다 더 책임이 큽니다. 나아가, 그가 살아서 그런 죄를 받았다면 대한민국 기업인들, 특히 재벌 총수들 치고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은 아마 밀항선이라도 타고 도피해야 했을 겁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신원 확인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은 유 전 회장의 왼쪽 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월 체육관이 붕괴돼 새내기 대학생 10명이 사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는 코오롱 자회사입니다. 이웅렬 회장은 개인적으로 이 회사의 지분 24%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사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형평성을 따진다면 이 회장도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대림산업 여수 고밀도폴리에틸렌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습니다. 그러나 이해욱 부회장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선 정규직만 2012년 5명, 2013년 7명이 산재로 사망했습니다. 올들어서는 하청업체 노동자만 벌써 6명이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은 처벌은커녕 여당의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180여명이 직업병을 얻어 70여 명이 백혈병 림프종 등 암으로 사망했다는 삼성전자에선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은 물론 임직원 어느 누구도 입건되지도 않았습니다.

유병언씨만 예외였습니다. 이 나라 검찰과 경찰 아니 대통령은 그가 세월호 참사의 거의 유일한 책임자인 양 몰아부쳤습니다. 사지로 떠돌다 구더기 밥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유씨뿐 아니라 부인과 형, 동생, 처남이 구속됐고, 그의 두 아들과 두 딸은 구속됐거나 추적당하고 있습니다. 부관참시에 삼족을 멸하는 봉건왕조의 야만적 처형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들에게 모두 적용된 것은 횡령과 배임입니다. 부당거래 등으로 2400억원 규모의 회사 재산을 빼돌렸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많은 혐의입니다. 설령 그것이 사실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게 한 개인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도록 토끼몰이를 할 죄는 아닐 겁니다. 다른 기업인의 경우를 따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와 그 가족에게 횡령 혐의가 적용돼 처벌을 받을 경우, 아마 이 나라 재벌가 가족들은 그런 처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삼성 가족, 현대차 가족, 씨제이 가족, 롯데 가족 등, 부당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 어디 있습니까. 검찰 식으로 계산한다면, 2천억~3천억이 아니라 2조~3조를 넘지 않을 집안이 없을 겁니다. 

유씨는 1992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의 배후로 몰렸습니다. 그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교사는 무혐의로 판정났습니다. 엉뚱하게도 사기죄로 4년 동안 실형을 살았던 유씨입니다. 이 나라 검찰과 경찰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려 할지,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무슨 올가미를 씌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지, 그들에게 농락당하고 죄를 뒤집어쓰고는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법무부 장관이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검찰도 그를 희생양으로 삼고는 싶었겠지만, 최소한의 법과 원칙은 지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잡아들이지 않고, 소환 통보를 하는 법 절차를 따랐습니다. 사실 혐의도 확정하기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를 대역죄인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었습니다. 다섯번이나 그의 체포를 다그쳐 군까지 동원하게 했으니, 저 심약한 ‘김진태의 검찰’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곽병찬 대기자

법을 그렇게 조폭 칼 쓰듯이 휘둘러선 안 됩니다. 법은 세상에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만듭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법은 집행돼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법치의 표준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법을 앞세워 국민을 속이고 협박하고, 국민의 생각을 조작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한 개인과 그 가족을 구더기 밥으로 내몰고, 부관참시하고 사돈에 팔촌까지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정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지탱한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유씨의 잘못은 밉습니다. 그러나 그와 그 가족에 가하는 이 정권의 야만은 더 끔찍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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