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혁님, 재림과 천국 얘기 그만하고 위대한 스님들을 따라 지옥으로 가도록 서로 노력해 봅시다.

by 무실 posted Jul 30, 2014 Likes 0 Replie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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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혁님, 천국에 가기보다 지옥으로 간 스님들 얘기 들어 보셨나요?

성철 스님 (1912~1993) 의 열반송도 그중 하나입니다.

저도 그 시를 처음 대했을 때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그것에 대한 설명을 보지 못했지요.
단지 기독교인 중에 열반송에 나오는 표현을 보고
스님이 평생 사람들을 속이다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남긴 시라는 엉터리 해석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지옥에 관한 가르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주 선사 ( 778-897 )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 관직에 있는 사람이 선사를 찾아와서 물었다.
"대선지식도 지옥에 갑니까?"
" 암, 가고 말고, 내가 제일 먼저 간다."
"도인이 어째서 지옥에 갑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당신을 볼 수 있겠는가?" "


관직에 있는 사람은 지옥에 가기가 너무 쉬우므로

선사 자신이 그곳에 가서 진리를 가르치겠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언젠가 민초에서 보았던 글도 생각이 나군요.
지옥에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도 있을 것이라는...,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다 죽은 테레사 수녀는

죽어서 천국에 들어 가기 보다는 지옥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 분명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옥으로 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누리 어떤 분이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 끝에

동굴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쌍한 처지를 논하고

그곳에서 나와야 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 누리를 연 김 교수님이 주님이 동굴 속으로 스스로 오셨다는 이야기도 같은 뜻이 아닌가 합니다.

혹 제가 잘못 알고 있다면 교정해 주십시요.


아직도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재림을 기다리는 운혁님과 저는 언제 이런 스님들의 고백을 남길 날이 올까요?

아직 저는 먼 것 같습니다. 운혁님은 아니 신가요?


성철 스님의 제자인 무비 스님의 해석을 아래 옮겨 봅니다.



성철(性徹)스님 열반송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활함아비한만단  일륜토홍괘벽산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



<해설 >


이 글은 성철(性徹,1912-1993)스님의 열반게송이다.

스님께서 이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다.

불교인들에게는 항상 접하는 내용이라서 별 관심이 없었으나

비불교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은 대단히 의아해 하였다.

나아가서 일부 다른 종교인들은 불교를 폄하할만한 꺼리가 생겼다고 하여

이리 저리 글자대로만 해석하여 크게 비방하고 나섰다.


그래도 불교인들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소치라 생각하고 그러다가 말려니 여겼다.

그런데 10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 더 극성이란다.

성철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선전을 하며

불교를 형편없는 종교라고 비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새삼 이 명구 난에 그 해석을 남기게 되었다.


불교에서 존재 일체를 보는 견해가 교리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중도(中道)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성철스님은 일생의 불교공부를 백일법문이라는

법회를 통해서 거의 모두를 피력하였다. 백일법문의 일관된 사상은 중도다.

그것은 스님 역시 일체 존재를 중도로 보았고

불교를 중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중도를 지나치게 강조하시다가 스스로를 중도광(中道狂)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일체의 존재원리가 중도며 그것을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도 중도로 일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백일법문 속에는 근본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중도의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중도는 공식이다.

경전과 어록도 모두 중도공식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의 이론은 아무리 짧은 글이라 하더라도

중도가 표현되지 않으면 온전한 글이라고 보지 않는다.

열반송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철저히 중도로써 자신의 일생을 표현하였다.

중도란 간단히 말하면 절대부정에서 절대긍정을 나타내는 이론이다.

사물이나 인간의 의식세계를 중도적으로 표현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을 쓰지만

성철스님은 자신의 일생을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라고 철저히 부정하였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성자이기에 그 부정은 더욱 빛난다.


자신존재의 그 진공성의 표현은 참으로 숨이 막힐 정도이다.

경전이나 어록에는 공(空)이나 무(無)를 사용해서 중도를 표현한다.

참고로 금강경의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은 세존이 자신의 깨달음과

일생동안의 설법을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며, 또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은 제자들의

수행성과(修行聖果)마저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다.

다시 절대긍정으로서의 내용은 “산체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一輪]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라고 하였다.

절대긍정의 지극한 표현이다.


선불교에서의 지옥은 극락의 다른 표현이며 한은 기쁨의 또 다른 표현이다.

큰 죽음은 큰 삶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옥과 극락을 소요자재하면서 모든 생명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그들을 제도한다.

또한 산체로 지옥에 간다는 말은 죽을 겨를도 없이 지옥에 빨리 가서 지옥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성철스님 같이 법력이 뛰어난 분이 지옥에 가야 지옥의 중생들을 건질 수 있다.

보통의 도력으로는 지옥에 갈 자격이 되지 못하며

가 보아야 지옥의 중생들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양”이란 무엇인가? 성철스님 자신이다.

태양이 높이 떠서 세상을 비추다가 지금 이렇게 아름답고도 장엄한 저녁노을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지나친 자기자랑인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 이상의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은 없다.

한편 태양은 우리들의 자신이며, 지금 이렇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바로 이 사실이다.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성철스님의 본래면목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크게 긍정하여 가위 중도광(中道狂) 답게 철저히 중도로서 표현하였다.

천고의 절창이다. 부디 바른 이해가 있었으면 한다.


해설 : 무비(無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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