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한국 군대 현실… 폭력으로 숨진 20살 청년을 기리며

by 배달원 posted Jul 31,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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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후 35일간 물고문, 성고문 등 갖은 가혹행위로 끝내 숨져

집단적 폭력문화 대물림, '악의 평범성'이 젊은이들 짓밟아

민군 머리 맞대고 내·외부 감시시스템 마련 시급

병영 문화 개선, 국가대개조 틀에서 단행해야


나는 고발합니다. 무릇 기자는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기사를 써야 하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이 없습니다. 눈물로 기사를 씁니다. 과 대표를 맡을 만큼 활기찼던 대학생이 군에 입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죽어간 이야기를 쓰는 손이 떨립니다.

↑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건이 표면화한 시기는 지금부터 넉 달이 채 안된 4월 6일 입니다. 치킨과 냉동만두 등을 내무반에서 먹던 중 선임병사들에게 맞아서 기도가 막힌 윤모 일병이 군 병원을 거쳐 의정부 모병원에 후송됐으나 이튿날인 7일 새벽, 끝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인은 '기도 폐쇄에 따른 호흡 정지'였습니다. 사건은 바로 알려졌죠. '14년 만의 구타사고'라는 부제가 붙어 각종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점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윤 일병은 지독하고 잔인한 가혹행위에 시달려 왔습니다. 먼저 KBS가 30일 밤 '뉴스 9'에서 병사 4명의 집단구타 뿐 아니라 간부까지 가담했으며 치약을 먹이고 가래침을 뱉고는 핥아 먹게끔 강요했다는 점을 특종 보도했습니다. 놀랐습니다. 잔인함에 놀랐고 경험에 비추어 놀랐습니다. 내가 근무했던 30여 년 전의 의무대 역시 병사들끼리 군기가 빡쎄다고했건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점입니다. 31일 오후 3시 군인권센터의 긴급 발표 내용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 그 자체입니다. 윤 일병은 우발적인 구타로 사망한 게 아니라 입대 후 하루 하루를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숱한 가혹행위 속에서 윤 일병이 △맞아 쓰러지면 포도당 수액 주사를 놓아 기운을 차리게 한 뒤 다시 때리고 △맞아서 다리를 절뚝거리면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또 폭행하며 △개 흉내를 내게 강요하면서 바닥에 뱉은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하고 △성기에 안티 프라민을 바르게 했답니다. 뿐만 아닙니다. △새벽 3시까지 '기마 자세'로 얼차려를 시킨 뒤 잠을 재우지 않는 '취침 통제' △치약 한 통 강제로 먹이기·드러누운 얼굴에 1.5리터 물을 들이붓기 등(피해자 이모 일병)도 자행됐다고 합니다. 도대체 인간이 뭔지….

군인권센터의 발표는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군검찰의 공소장과 가해자들의 진술, 입실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인권센터의 발표를 근거로 재구성한 윤 일병 사망 직전 상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4월 5일 점호가 끝난 밤 9시 45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주범 이모 병장은 쉴새 없이 윤 일병을 폭행합니다. 다른 3명의 가해자들은 망을 보거나 윤 일병의 팔을 붙잡아 폭행을 도왔습니다. 새벽 2시 폭행을 일단 멈췄으나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잠들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6일 아침 7시 30분께 이 병장은 다시금 폭행을 시작했습니다. 윤 일병이 피곤해 잠잤다는 게 이유였죠. 뺨과 허벅지 폭행을 시작으로 오전에만 쉬지 않고 7회 이상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오전 10시쯤에는 침대 밑으로 가래침을 두 차례 뱉으면서 핥아 먹게 강요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 이후 냉동식품을 함께 먹을 때 쩝쩝거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윤 일병의 가슴과 턱, 뺨을 때려 음식물이 튀어나오자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을 핥아 먹게 했습니다. 이후 4 명의 가해자들은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때리고 엎드려 뻗쳐를 시킨 상대에서 폭행을 계속했습니다.

오후 4시 30쯤 윤 일병이 오줌을 지리며 쓰러지자 꾀병을 부린 거라며 이모 병장과 이모 상병, 지모 상병은 뺨과 가슴, 배 부위를 때렸습니다. 이때 쓰러진 윤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가해자들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도 윤 일병은 의식을 찾지 못했고 결국 연천의료원과 국군양주병원을 거쳐 의정부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지만 다음 날인 4월 7일 숨을 거뒀습니다.

사고 직후, 가해자들은 은폐를 시도했습니다. 고 윤 일병의 후송 과정인 연천의료원 주차장에서 이 병장은 공범이 하모 병장과 이모 상병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했답니다. 부대에 남아 있던 지모 상병에게는 함구령을 내렸습니다. 사건 전후의 과정을 목격한 입실환자인 모 병장에게는 "00씨는 자고 있던 거예요"라고 입을 다물라고 압박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입을 맞췄습니다.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TV를 보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사건 다음날인 4월 7일 오전 9시, 하모 병장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수첩 2권의 일부를 찢어서 버렸습니다.

윤 일병의 수첩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버렸으니까요. 그러나 이들의 은폐 시도는 곧 발각됩니다. 군 헌병대가 이들에게 '윤 일병이 깨어나는 것 같다'고 하자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구성한 윤 일병의 자대 배치후 생활은 참혹함 그 자체입니다.

2013년 입대한 고 윤 일병이 자대 배치 받는 시기가 2014년 2월18일입니다. 28사단 포병연대 000포병대대 본부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받았습니다. 2주간의 대기기간이 지난 3월 3일부터 윤 일병은 사망하는 4월 7일까지 매일 폭행과 욕설, 인격모독과 구타·가혹행위에 시달렸습니다. 별첨한 일지를 보시면 알겠지만 윤 일병은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이 죽을 때까지 맞았습니다. 이쯤 되면 '가족은 뭣했나, 다른 병사들은 왜 가만 있었나'라는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구타 사실의 외부 전파를 차단하려 애썼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윤 일병이 일요일 종교행사, 즉 교회에 가는 것조차 막았습니다. 가족 초청 운동회가 열려도 윤 일병은 점수가 부족해 가족초청 자격이 없다며 면회도 방해했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그토록 고통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고 윤 일병의 가족 중의 한 어른이 사건 초기에 '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 이해하는 듯 하다가 진실을 알고 난 뒤에는 엄벌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꾼 점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나머지 병사들은 뭘 했느냐. '아무런 생각 없이' 폭행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의무대의 특성상,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연대 의무중대라고 해도 파견 인원을 빼면 본부에는 7~12명이 보통입니다. 포병대대 본부포대 의무대라면 6~7명이 고작입니다. 간부인 하사마저도 나이가 많은 이모 병장에게 일과 후에는 '형'이라 부를 정도로 고참병의 제왕적 권위가 분명한 상황에서 다른 병사들은 무의식적으로 폭행에 가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죽은 윤 일병보다 3개월 고참인 이모 일병의 경우 윤 일병이 전입 오기 전까지 '죽을 만큼' 얻어맞고, 치약 한 통을 억지로 빨아서 먹는 고통을 당했음에도 윤 일병 폭행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맞은 병사가 후임 병사를 때리는 폭력구조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는 특이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군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무반 전체, 심지어 간부까지 폭행에 가담했다는 점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폭력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모 병장은 평소에 '아버지가 조폭'이라고 강조하며 끈질긴 폭행을 주도했다고 하나 그 역시 자아와 자존감을 짓이기는 집단적 폭력구조의 피해자인지도 모릅니다.

유대인 여성 철학자 안나 아렌트가 직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릅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으로 남미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게 잡혀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지켜본 아렌트는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남겼는데요.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모범생이었고 도덕적인 가장이었으며 신앙심도 깊은 아이히만이 어떻게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을까?' 아렌트는 선과 악에 대한 고민보다는 집단 속에 자기를 맡기는 평범함 때문이며 이게 모여서 거대한 악이 된다고 봤습니다. 폭행에 가담한 병사와 간부이야말로 '악의 평범성'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 모두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군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군은 물론 사회 전체의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혹자는 요즘 신세대들의 문제를 말하지만 이전에도 이런 사고는 비일비재했습니다.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간 것 뿐입니다.

윤 일병 구타 사고는 분명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사건보다 잔혹합니다. 다른 부대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라도 집단에 의해 말살 당하는 개인이 없을까요. 재발을 막으려면 병영문화와 의식의 혁신이 요구됩니다. 마침 정부가 국가대개조를 추진하는 때입니다. 미래의 자원인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은 채 이렇게 죽어가고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도 없습니다. 결연한 마음으로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병사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우선입니다. 지휘관은 물론 개별 병사들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병사도 나만큼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의식구조의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군은 이를 위해 사회 각계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의견을 구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댈 때만이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군 혼자서 수많은 장병의 문제를 짊어지기도 불가능합니다. 내·외부 감시 및 평가 시스템과 민과 군이 군복을 입고 있는 젊은이들의 문제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풍토가 자리잡기 바랍니다. 고 윤 일병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경제 | 권홍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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