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by southerncross posted Jul 31, 2014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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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광야 (히. 다바르)는 말씀 (히. 다바르)이 임하는 곳이라고... 단순 언어 유희 같이 들리지만, 꽤 흥미로운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에는 언제든지 다바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말씀이 떠오른다.

 

말씀이 광야에 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한 예가 침례요한의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는 누가복음 3장에서 확인된다. "빈들에 있던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히브리어 표현, 광야 (다바르)와 말씀 (다바르)이 헬라어로 바뀌면서 언어 유희는 사라지지만,
로고스와 에레무스의 만남은 신약에서도 이어짐을 확인 할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글 번역진들이 헬라어 '에레무'를 "빈들"로 번역했다는 점이다. 흔히 "광야"라고 번역되어지는 이 단어를 왜 "빈들"이라고 표현했을까?
 
여러 가능성 있는 대답 중에 하나는 이 구절이 읽히는 곳이 한반도임을 염두해 두고 볼 때,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사막같은 광야의 이미지보다는 단순 빈들이 쉽게 개념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언어 의미적/기능적 이유로 의도적으로 선택된 번역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비록 두 번역된 표현이 지칭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인지되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두 단어의 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이다. 빈들은 텅빈,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흥미거리 조차 없는 환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광야는 거칠고, 생명력 없는 그래서 고생스럽기까지한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것도 없는 비워진 환경에서 더 잘 들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빈들'에 한 표 던질것이고, 거친 삶 속에서도 잔잔히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광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느 것이 옭고 그르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스마트폰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에 파 묻혀진 21세기 인류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임하였다는 번역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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