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팔레스타인 엄마들을 죽여야 한다”는 말도 지극히 성서적이고 유대교적이다.

by 김원일 posted Aug 07, 2014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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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7 18:44

고명섭 논설위원

1656년 7월2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교 회당에서 선언문이 낭독되었다. “우리는 바뤼흐 스피노자를 파문하고 추방하고 저주하고 비난한다.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저주했던 그 저주로 저주한다. 엘리사가 아이들을 저주했던 그 저주로 저주한다. 율법 책에 쓰인 모든 징벌로 저주한다.” 23살 먹은 젊은이를 파문한 암스테르담 유대인 공동체는 애초 스페인에서 살던 유대인들의 후손이었다. 15세기 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은 유대인이라는 이물질로 눈을 돌렸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추방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대다수 유대인들이 포르투갈로 떠났다. 그러나 포르투갈에서도 똑같은 박해가 뒤따랐다. 갈 곳 없는 유대인들은 기독교 개종을 택했다. 그러나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종교재판소가 고문으로 ‘위장 기독교도’를 색출해 모조리 학살했다. 불관용에 쫓긴 유대인들은 네덜란드로 갔다.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그렇게 당했던 유대인들이 한 생각 깊은 젊은이를 찍어내 축출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진리에 대한 탐구심과 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품은 영혼이었다. 유대인 공동체는 스피노자를 유대교 신을 부정하는 불온한 자로 몰았다.

스피노자를 파문한 글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동체의 견딜 수 없는 증오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증오심이 바깥을 향해 표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난 한달 이스라엘이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휘두른 증오의 폭력을 진저리나게 보았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대결을 두고 헤비급 선수가 기저귀를 찬 아기를 패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직설이다.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놀이터를 때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놀던 어린아이들이 떼로 죽었다. 20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의 다수가 어린이와 여자와 노인이었다. 왜 아이들을 죽이는가? 혹시 이것은 의도된 것이 아닐까? 지난달 이스라엘의 한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무얼 말하는가? 그 의원은 “모든 팔레스타인 엄마들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 내일의 테러리스트를 낳아 기르는 것이 엄마이니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증오전쟁은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여자는 아이를 낳고 아이는 미래의 어른이니 미리 씨를 말려야 한다. 나치 독일이 바로 그런 범죄형 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원수를 닮아가고 있다. 가자 학살 작전을 국민 80%가 지지하는 이 끔찍한 증오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공동체 전체가 유죄다.

<구약성서>는 외부 세계와 만나는 두 가지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바빌론 포로 생활이 끝난 뒤 돌아온 사제 에즈라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사는 것에 경악했다. 에즈라는 남자들에게 이민족 아내를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에즈라의 길은 닫혀 있었다. 반면에 예언자 요나의 행적은 공존을 향해 열린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요나에게 적국 아시리아의 도시 니느웨를 구하라고 명령했다. 요나가 항의하자 하느님이 말했다.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12만이나 된다. 내가 어찌 이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요나는 하느님 뜻을 따랐다. <탈무드>의 가르침도 요나의 길이 유대교의 핵심임을 알려준다. 어느 날 이교도가 유대교 사제를 찾아와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율법) 전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사제의 대답은 간명했다. “당신 자신에게 증오스러운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시오. 그게 토라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그 주석일 뿐이오.” 이스라엘은 유대교 정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퍼온이의 사족: "유대교 정신"은 사실 획일적이지 않다. 적어도 구약의 정신, 혹은 토라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지금 이스라엘의 만행은 유대교, 혹은 구약 정신의 어떤 한 면에 어긋나는 것이라 해야 맞다. 다행히도 구약이나 유대교는 한 가지 "정신"만 지닌 것이 아니다.)

고명섭 논설위원


노란 배경색상은 퍼온이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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