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가 쓴 서사시 오디쎄이의 줄거리를 구글에서 클릭을 하면 글을 올린 이들이 트로이의 멸망을 위해 출정한 도시국가들의 제왕중에서 오디쎄이 (오디씨)가 목적을 달성하고 귀환하는 중에 겪는 과정의 이야기에 너무 집중하다가 후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하는 복수의 장면을 잘 부각시키지 못한점들이 있어 보인다.
후반에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장면은 이런것이다.
오디씨 부재중 (왕권의 부재중)에 왕권을 둘러싼 숱한 음모의 과정들이 아내인 페텔로페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 오디씨는 트로이의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트로이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배가 파선되었고 그의 젊음과 중년을 잃어버리는 장기간의 방랑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천신만고끝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자신의 왕권과 아내 페넬로페의 운명은 바람앞에 촛불과같이
사라질수 있는 위기의 시간들이었으나 아내 페넬로페의 정절과 지혜가 그 시간을 연장시켜주었고 드디어 오디씨가 궁전인 자신의 집으로 거지처럼 변장하고 등장한다.
오직 왕권이 뒷받침이되는 왕비 페넬로페와 결혼하기 위해서 온갖 압력을 행사하는 도전자들이 페넬로페는 활쏘기 시합으로 과녁을 맞추는 자에게 자신과 결혼할 것을 약속한다. 그 과녁은 도끼의 손잡이를 뺀 열두개의 도끼 구멍을 통과하는 과녁이다.
1. 먼저 활의 시위를 걸 수 있는 힘이 필요하고
2. 그 다음은 일렬로 세워진 열두개의 구멍으로 화살이 지나갈때 중간에 화살의 스피드가 떨어지면 그 구멍을 다 통과하지 못한다.
사용할 활은 남편 (오디씨)이 사용했던 어마하게 큰 활로 청혼자들이 시위에 걸지도 못하고 안간힘을 쓰며 활을 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이때 거지로 변장한 오디씨가 활을 시위에 꽂아 시위를 당겨 과녁을 정통으로 맞추자 오디씨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두 사람의 충복, 그리고 아테네 여신의 힘으로 무례한 영주들과 그들에게 놀아난 방종한 하녀들을 모조리 살육하게 된다.
그리해서 20년간 헤어졌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늙으신 아버지 라에르테스와의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영원한 평화를 이룩한다는 내용이다.
성경도 한번 그렇게 보면 어떨까?
시내산에서 내려주었던 그 활 (십계명)에 도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도전자들이 모세를 포함해서 그 활이 주어진 육신의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었는지 우리는 모를일이다. 다만 육백만이라는 남자 성년의 숫자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그것을 시위 (육신)에 끼우지도 못하고
그것이 바라는바 인간들의 영생이라는 과녁또한 맞출수가 없었던 돌판 (그대로는 완전하나 그 완전을 이룰 수 없는 육신의 연약함) 을 자신의 시위 (육신)에 맞추고 열개의 구멍을 정확하게 쏠 수 있었던 예수가 그를 따르는 자들 (페넬로페) 에게 다시는 그런일이 없는 행복한 삶을 함깨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된 길이 진리이고 생명이고 또 참빛이라 하는 것이다.
그를 따르는자인 페넬로페나 교회는 그 화살을 쏠수도 없고 또 쏘아서도 안되는것이다.
그냥 그가 이룬 행복 (안식)에 들어가는것이 남은 무리다.
당신들의 생각으로 더 완전케된 율법이라면 그전에 완전하지 못한것도 시위를 맞추고 활을 당길수도 없었거던 어찌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 참으로 모를일이다.
여자 즉 교회는 그 남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정절과 기다림의 아내여야 한다.
지금도 그 율법의 시위를 맞추어서 더 완전해진 과녁을 정확히 쏘려하고 또 쏠수 있다고하는 무리들은 여자가 아니고 도전자 남자들이다.
요한복음에는 그 화살을 쏘지도 못하고 정절도 지키지 못한 소위 성경적 표현으로 한다면 간음중에 잡혀온 여자하나를 놓고 그 화살을 쏘기 위해서 평생을 훈련받은 영생의 씨도 없는 변태적 남자들이 자기들과는 신분이 다른 한 남자에게 그 여자를 고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말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한 그 하와의 분신이다. 거기서 지금까지의 그 남자들하고 다른 둘째 아담 (살리는 영)이 그 여자가 먹었던 열매를 대신 먹고는 정죄하지 아니하는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다. 그리고 간음중에 잡혀온 그 여자를 살리신다.
옆동네는 거지반 100 퍼센트가 되어보이고 이 민초에도 그 광야에서 죽었던 육백만명의 남자 귀신들이 참 많이 득실거린다. 그중엔 운혁이 귀신도 있고...
간음중에 붙들려온 그런 여자는 별로 안보이는데 참으로 큰일이다.
안식을을 지키려하는것보다는 안식에 들어가는것이 더 쉽다니까...
남은교회는 결코 남자가 아니고 여자이지.
정자 (sperm) 의 종교가 아니고 난자 즉 ovum 의 종교라니까
그래서 난자의 측면에서 간음이 성립이되지 성경적으로는 sperm (남자) 의 측면에서는 간음이 성립이 되지 않지 않는가?
한심한 남자들아!!!
지키려하는 행위는 정자의 행위고
그 지킴에 들어가려함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여자의 행위임을 언제 알게 될꼬?
활을 쏘는자가 되려하지 말고 활을 쏘는 자를 기다리는것이 성도의 인내이지 않은가?
차라리 간음한 여자는 용서를 할 수 있었어도
그놈의 씨도 없는 무정란의남자들 (율법을 지키려하는 바래새인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