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안식일 계명을 폐하지 않았다 김주영님이 주장하는 것 처럼!

by 계명을 posted Sep 15,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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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님은 논리에 전혀 맞지않은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안식일의 계명을 폐하기 위해서

안식일날 병자를 고치셨는가?


구약의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께서

안식일의 의미을 더 확대시키고, 

빛을 더 하시기 위해,


안식일 계명의 본래의 목적인 

쉼과 해방의 의미를 부각 시키기 위해

병자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 계명을 폐하시려고

안식일날 병자을 고치셨는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잘 지키는 것인가를 

교육하시고 개선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님은 예수님과 같이 안식일날 선한 일을 하자는 건가?

참으로 장한 일이다.

부디 계속 그렇게 주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졸업하였다느니, 폐지 되었다느니,

하는 주장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마치 예수님의 안식일 더 잘 지키기 운동을,

마치 자기가 주장하는 안식일 폐지 운동으로 끌어 들이지 말라는 얘기다.


님의 의도를 숨기고 더 이상 거짖으로 논객들을 농락하지 말기를 바란다.

제발 하나님까지 끌어드려 욕되게 하는 일을 그치기를 바란다.


비록 안식일 계명 뿐만이 아니다,


물리적인 간음 계명을 "음욕을 품은자마다" 정신적인 계명으로 확대하셨다.

물리적인 살인 계명을 "미워하는 자마다" 정신적인 계명으로 확대하셨다.

부자 청년 "다 지켰다" 아니다 "재산을 다 팔아" 계명을 확대 시키셨다.


정신적인 계명 잘 지키기가 아니라

이제는 아예, "하나님을,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영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키셨다.


"사랑하라"는 것이 더 쉬운가?

"거짖말 하지 말라"는 계명이 더 쉬운가?

이웃을 미워하면서도 얼마든지 거짖말은 안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죄인 열명 있던 곳에 죄인 백명을 만들고 계신다.

기기 막힐 일 아닌가?


예수님이 오셔서 계명이 가벼워 진것이 아니라,

계명이 더 쎄졌다는 말이다.

더 무거워졌다는 말이다.


십계명이라는 멍에를 벗으면 자유하게 될 것 같은가?

벗어서 새계명의 멍에를 지어봐라 더 가벼워 졌는가를...


웬만한 인간들은 이제는 계명을 지킬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 오신 후에는 말이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마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로7:13)


예수님은

죄로 심히 더 심하게,

아주 심하게,

정신적으로라도

우리를 죄인으로 몰아 부친 분이시다.

어디 빠져 나갈 빈틈이 없게,

우리를 죄되게 하신 분이시다.


"모세가 간음하지 말라고 그랬냐?

웃기지 마라,

네가 제사장이냐? 네가 랍비냐? 너희들 마음에 음욕폼었었지? 

너희들 다 간음한 자들이야


예수님은 

계명의 기능을 더 확대 생산하시고 

확실하게 그 의미를 더 하셨다.

폐한다는 말하고는

정 반대의 작업을 의도적으로 하셨다.


소가 멍에를 메고 있어야 주인하고 가까이 있게 되는 것처럼,

인간이 계명이라는 멍에를 메고 있어야

주인인 예수님과 가까이 있게 된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갈3:24) 것처럼 말이다.


멍에을 벗고 날 뛰는 것을 우리는 망아지라 부른다.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도살장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뿐이다.


"나의 멍에를 메고"(마11:30)

예수님은 멍에를 폐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다.

위에서 말한대로 사실 멍에를 더 무겁게 만드신 분이시다.


그러나,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30)


계명은 알면 알 수록, 배우면 배울 수록 우리를 예수님께 더 밀어 붙인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계명을 무시하고 만들어 지는 모든 믿음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다 행위로 빠지게 된다.

믿음을 자기 속에서 생산하려는 모든 의도가 그렇게 만든다.

(진정 스스로 내가 어떤 믿음에 있는가 살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멍에의 결과물은 "쉼"이다.

그리고

멍에가 아닌

"짐"은 가벼워진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


제발 "계명"없이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그 허접스런 천주교, 개신교들의 교리를 앵무새처럼 되뇌이지 만 말고,

그 속임수에서 하루 빨리 정신들을 차리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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