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있니?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십니다
숨어있는 것 아시고
“넌 어디 있니?”
술래잡기 같습니다.
법을 피해 숨은 아담
그 법으로 도망 다녀야하는 아담
그로부터 세월 약간 흘러
아들이 아들을 죽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너의 동생 어디 있니?“
“내가 내 동생 지키는 신하입니까?”
그렇게 법은 인간을 속박합니다
그러다가 그 얄구진 이스라엘이란 나라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망합니다
이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결국 없어집니다
약 2000년 세월입니다
아니 그 앞에는 남의 속국이 되어 조공이나 바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아담의 범죄로 인한 벌이라고요?
아니요
이방인은 아담의 범죄로 인한 벌을 안 받을까요?
저들 알기나 알까요?
하나님을 쳐서 무찔렀다는 교만에 대한 벌은 왜 안 받을까요?
이상하죠?
우리는 흔히 이럽니다
저들이 하나님을 잊어서 이방의 객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방이란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마귀의 백성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나라가 마귀의 나라라면
그럼 우린 뭘까요?
답이 나오나요?
그게 오늘까지 우리가 해 온 성경 연구라는 겁니다
십자가 사건 후 하나님이 그 법을 우리 마음에 심었다고 하지요?
맞아요?
아니요 십자가 전에도 우리 마음에 있었고
그 후에도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 바로 법이라는 겁니다
이 마음에 있는 법을 졸업한다고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리 쉽게 졸업이 되면 인간 아니지요
그런데 오늘 왜 우리는 빛나는 졸업장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그 법으로 죽는 소리만 해 대니 하나님께서 그래 좋다 해 봐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무한한 기쁨, 영원한 사랑, 다함없는 은혜
이 모든 것이 십자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구경도 못했던 것들이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예전에 지키고 있던 그 버릇을 개 못 주고 가지고 있으려 합니다
법은 속박하는 것이다
법은 죽게하는 율법일 뿐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법에 매달려서 십자가를 찾으려 합니다
법 때문에 돌아가신 분을 법을 통해서 보려 한단 말입니다
재림교회가 이런 스타일을 못 버리면 영원히 법속의 그리스도 찾느라고 헤맬 겁니다
법이 있어야 죄를 알고 그래서 죄인이 그리스도 십자가로 찾아간다는
형식적인 신앙이 판을 치게 할 겁니다
마음에 새겨졌다구요?
정말입니까? 새겨진 것 보셨나요?
감으로 알아차린다구요?
아서요
성경절 따로 딱 떼어서 읽어보세요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나의 법”이 십계명만을 가리킬까요?
내 속에 있는 양심의 법이 십계명일까요?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것이 바로 양심을 잘못 관리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양심이 화인 맞으면 외식하고 거짓말 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은 거짓말 하는 자는 144000에 못 들어가고 성 밖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 속에 두신 하나님의 법은 거짓말 하지 말라는 훈계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 하나님 믿는 것같이 하는 양심
하나님 백성을 업수이여기면서 이 놈보다 내가 낫지 않습니까? 하는 기도
즉 외식하는 신앙으로 양심을 짓밟으면서 그것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법을 우리 마음에 심으셨다고 가르치는 겁니다
아직도 십계명 졸업 못하셨지요?
한 열 번쯤 시나리오 써 드릴까요?
그래도 못 믿어워 하시겠지요?
마음이 완악하면 귀를 막습니다
사울도 바울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법에 매달리면 다들 그렇게 된다구요
10자가가 10계명으로 보이지요
싫으시면 그렇게 보면서 그대로 죽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