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많은 글들이 올라와
할 수 없이 이렇게 본글로 답변합니다.
계명을님: "우선 진정성 글에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은 제 글이나 댓글 중 진정성이 결여된 것도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님의 이전 댓글을 참작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진정성 없이 글 올리지 않습니다.
물론 읽는 사람의 느낌은 별개이지만.
계명을님: "나의 먼저 댓글은 오버리딩 한 점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Under-reading인 면도 있다고 느꼈고요. ^^
계명을님: "김주영님의 '졸업'은 십계명의 단절을 말한다고 이해 됐습니다."
-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계명을님: "여기서 '졸업'은 어떤 뜻에서 말 한 것입니까?"
-"의대 졸업 전 김주영, 의대 졸업 후 김주영"이라는 저의 글에 대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계명을님: "님이 말하는 윤리는 그전의 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며?"
-제 본글에서 ("율법은 범하라고...") 확실하게 밝혔다고 생각하는데...
계명을님: "[윤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입니까? 아니면 인간 속에서 창조되고 개발 되어 지는 것입니까?"
-저는 철학도도 아니고
인본주의적 도덕주의자도 아니고
신학도입니다.
대답이 되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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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계명을님의 질문 전문입니다.
// 조회 수 75 추천 수 0 댓글 1
우선 진정성 글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먼저 댓글은 오버리딩 한 점이 있습니다.
님의 글을 여러번 읽는 가운데,
님이 언급한 "졸업" 과 김주영님이 언급한 "졸업"이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김주영님의 "졸업"은 십계명의 단절을 말한다고 이해 됐습니다.
그전의 그의 글들 속에서 그는 통상 알려진 "믿음/은혜주의"에 입각해서 "졸업"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님의 글에서는 신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계시다는 개념하에서
법과 윤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신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얘기는
율법이 우리가운데 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의 공의와 자비의 두 얼굴에서 공의의 얼굴이 바로 율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임재를 늘 느끼고 있다면 우리가 구태여 법과 윤리를 논할 필요조차도 없다고 봅니다.
그 분이 법이요 그 분이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태이건 하나로 된 법이건 열개로 된 법이건
신이 우리에게 주신 법이라면,
그 법을 의식하고 있는 한, 신이 내 곁에,
임마뉴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성소안의 돌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임마뉴엘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저의 신학속에서,
김주영님이나 그외 여러분들이 말하는 십계명을 졸업하느니 폐하느니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상 속의 신의 임재를 부인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신의 임재를 부인한다고 하면 벌쩍 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그런 의미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러면 안된다고 저도 벌쩍 뛰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이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님은
"우리는
끊임 없이
범법하고 졸업한다.
모순이다."
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졸업"은 어떤 뜻에서 말 한 것입니까?
그리고 또,
"시행력, 집행력 있는 게 법인데
바로 그 시행력, 집행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진정한 윤리의 영역에 들어선다.
...
법을 넘어선 인간의 창조적 계발과 개발을 말함이다."
이라 했습니다.
님이 말하는 윤리는 그전의 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입니까? 아니면 인간 속에서 창조되고 개발 되어 지는 것입니까?
답변 감사하게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