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을 이루는 비결

by southern cross posted Sep 18, 2014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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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민초에서 올라온 주된 토픽은 복음과 율법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안식일에 대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몇몇 올라오는 글들 중 이성과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재림교회는 위의 키워드들을 다룸에 있서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포용적이고, 인간적이며, 말 그대로 안식일 사상에 더 가까워야 한다는 주장에 뜻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 아래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저는 재림교회의 교리와 신앙 형태는 매우 보수적이지만, 이 보수적인 모습은 진리에 대해서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형식주의에 가깝다는 비판에 백번 동의합니다. 여러 문제와 문제의 원인들이 진단되었습니다. 이미 충분한 얘기들이 오갔지만, 사족을 달아 봅니다.  


사랑  vs.  형식주의


2000년전 이스라엘 본토에서 이루어진 종교 개혁의 화두는 형식주의의 타파였다. 

형식화된 종교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바리세인의 형식과 누룩을 버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사랑은 그 어떤 종교 사상 보다 더 위대하다고 여러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사랑은 마치 오늘날 현대사회의 헌법과도 같은 것이다.  

즉, 헌법이 모든 법의 근간이듯 사랑이 종교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를 이어 받아, 사도바울도 사랑이 먼저 이해되어야 다른 율법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고 주장한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사랑보다 아래에 있는 몽학선생의 레벨에 있는 것이다. 


사랑이 빠져있는 종교에 율법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면, 율법을 꺼내 내려 놓고 사랑을 원위치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위치를 바로잡는 작업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과, 심지어 배 고픈 제자들을 위해 안식일에도 추수 할 수 있음을 보여주심으로

안식일 계명의 형식보다 그 의의와 뜻이 더 중요함을 시사하신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랑이 빠진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해 허울만 붙잡고 있는 안식일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삶의 터전에 사랑이 없으면, 종교의 터전에도 당연히 사랑이 없을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삶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이해심이 없으면, 안식일에 교회가서 헌담만하고 온다.  

헌담, 사랑이 없는 사람이 하는 가장 특징적인 행위이다.

듣는 행위보다 말하는 행위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한마디로 비뚤어지게 말한다.


하지만, 사랑은  '듣는 마음'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듣는 마음' 은 솔로몬이 백성을 의롭게 재판하기 위해 구했던 것이다. 

'듣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집과 이해를 내려 놓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과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믿음의 기초를 세우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의 문제는 인간의 보통 삶 뿐 아니라, 종교 전체의 문제가  된다. 

형식이 우쭐대고 그 자리를 차지 할 성질이 아니다.  

사랑이 빠진 율법에, 사랑이 들어서면 저절로 율법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율법과 형식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진정 율법의 완성을 이루게 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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