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할례는 행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by fallbaram posted Sep 19, 2014 Likes 0 Replies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할례의 목적을 구글을 통해 검색해 보면

내가 원하는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요즘에 민초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신 율법주의 (본인들은 한사코 억울하다고 하지만) 를

상대해 보면 왜 할례는 언급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율법의 남자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그것도 생후 팔일째에 안식일이라고도 상관치 않고

행해야 하는 예식이다.


할례는 히브리말로 “브릿트 밀라”, 헬라어로는 “페리토메”peritome라고 한다. 영어의 circumcision은 'cut around' 뜻을 가진 라틴어 “키르쿰키시오”(circumcisio)에서 말이다. 히브리어 “브릿트” 계약(언약)이란 뜻이고 “밀라” 할례를 뜻한다. 그러므로 “언약의 할례”하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사내 아이를 낳은 여자는 일주일 내내 부정하고 제 팔일에 그  남자 아이가 할레를 행하는 날에 그 부정에서

벗어 난다.

좀 비약을 한다면 율법의 아이를 낳은 여인 (광야 교회)은 제 팔일이 되기전까지는 부정하다는 표상적 의미가 엄청나게

풍기는 내용이다.

그 부정함이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 의 부정함이며 또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의 부정함이다 


제 팔일은 새로운 시작의 숫자이다.

다윗이라는 여덟째 아들이 시작하는 새 왕조의 숫자이고

여덟이라는 노아 방주의 새시작이며

첫째 아담에게 준 일곱이라는 창조에 반하여

둘째 아담이 시작하는 새로운 날 (시작)이다.

그날은 일곱진법으로 계산하는 날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출생이 다른

날이 되듯이 새롭게 되어지는 날의 숫자이다.


비록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갈대아 라는 바벨론을 나온자 이지만

그는 99세가 되기까지는 부정한 여인의 일곱날속에 살아가는 부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행위로 낳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약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던

속절없는 부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정을 깬 주체는 아브람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적어도  99세라는 확실한 육체의 씨 (정자)가 죽어버린 어느 싯점에 가서야 닥아오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할례는 하나님이 시작하는 약속이고

사람에게는 그것을 기다리는 기다림만 있을 뿐이다.

99세에 비로소 할례를 행하고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이 된다.그리고 십개월 후에 약속의 아들이 태어났다.

아브라함과 그가 기다리지도 못하고 낳은 행위의 아들이 동시에 할례를 받았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2:11


"아브라함 그의 아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