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는 반드시 구원 받아야 한다?" (대 수정) - 김균님, 가을바람님 께도

by 계명을 posted Sep 19,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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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님:


죄를 지어봤어야 죄를 알고 죄인이라 자복하지

-> 죄를 지어보지 않은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죄를 지어 보지 않은 사람이 왜 십자가를 찾을 필요가 있나요?


    고통/죽음이 십자가로 이끌고,

    계명으로 말미암아 (즉 불법이) 고통 죽음으로 이끌게 된 것이죠.


    "선한 그것으로(계명)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로 7:13) 


십자가를 발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율법

그게 율법이냐?

-> 십자가를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 죽게 되어 살 길을 찾다 보니깐,

    십자가를 찾은 것이겠죠.


죄인이 아니면 십자가가 필요 없냐?

-> 죄인이 아닌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고통 속에서 살고, 죽음의 위협에서 산다는

    그 자체가 다 죄인이기 때문 아닙니까?


세상에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다 구원 얻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고통을 받아 십자가를 찾은 사람들이 다 구원 얻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들 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바로 이 율법과 십자가의 관계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구원얻은 거듭난 자들은 율법이 십자가로 이끄는 경험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과의 관계없이 십자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십자가를 찾았다고,

육체적인 고통이 사라 지겠습니까?


그러나 이 노예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이 "십자가"로 이끄는 일차적인 몽학선생 노릇을

한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그들의 고통이 변함없지 만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십자가 앞에서 참 거듭남을 통해

쉼과 희망을  가지게 되어,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룰 수 있게 된다면,

그 "고통"이 선한 일을 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천국에는

수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

부모 잃은 아이들,

학대 받은 여자들,

착취 당한 사람들,

절름발이들,

문등병자들,

눈먼자들.

창녀들,


그리고 노예들로 가득 찰 것이라고,

"안 봐도 비디오" 일 것이라고 확신 하는 것은,


돈 많은 상인들과

종교 지도자들,

종교 학자들을,

채찍으로 물리 치신후,


성전의 분위기는 천국 같아 졌는 데,

예수님 주위에는

위에 언급한 그러한 사람들로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아무 두려움이 없었는 데,

다른 그룹들은 두려워서 다 도망치고 말입니다.

참 이상 야룻한 현상이 아니였습니까?


이천년 전에 이미 천국 리허설은 끝났습니다!


"율법"이,

율법의 결과물인

"고통" 이 만들어낸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까?


이 고통 말고 

무엇이 

이 다른 그룹들을 형성하게 만들었을 까요?


...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일곱살 먹은 예쁜 딸 아이가

엄마가 일하는 부엌에서 어정 되고 있었습니다.


"거기 뜨거운 물이 있으니 조심해라"

말이 끝나자 마자,


"았 뜨거워!"

"으앙" 하고

숨이 넘어가는 딸 아이를,


엄마는 부등켜 안고 

병원으로 달려 갑니다.

아이의 얼굴의 화상을 보며,

엄마는 얼굴에 눈물로 범벅이 됩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얼굴에 흉터가 생기면,

큰 일이라고 안절 부절 하지를 못합니다.


"내가 잘못 했지,

뜨거운 물을 미리 치웠어햐 하는 데,"


딸 아이를 탓하기 보다는 자신을 탓합니다.

그리고 가슴을 조입니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만약 엄마가 "내가, 조심해라 했는 데,

왜 말을 안들었느냐"고 

병원에는 안 데리고 가고,

딸 아이를 바로 교육 시키기위해

엄마의 명령 즉 법을 잘 지킬 것을 약속 할 때 까지

매질을 하고 있었다면,

도대체,

우리가 이 사람을

엄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율법을 잘 지키느냐? 아니냐?  에 더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범법으로 인해 생기는 파멸 혹은 죽음에 더 관심이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 고통이 몽학 선생노릇을 하여

십자가로 이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주 파멸 되기 전에 말입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모는 율법을 선하다고

바울은 웨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그 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로7:13)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계명을 단순히 지킨다, 안지킨다

행위냐 아니냐에 함몰되어

수천년이 흐르면서도 그 트랩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맴돌고 있지만,


로마서 7장은 율법의 순 기능인

십자가로 이끄는 원리 Physics를 

강조하고 또 강조 하고 있는 것 입니다.


어디, 7장에 계명을 잘 지켜라, 말라하는 단어가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어디 7장에 율법이 필요없다는 말이 한마디라고 있습니까?


율법 때문에 인류가 죽게 되었고,

율법 때문에 인류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죽음과 고통 때문에,

십자가의 은혜로 달려 갈 수 밖에 없다는

이 단순한 원리를,

왜? 깨닫지 못합니까?

왜? 애써 외면 하려 합니까?


왜 이해를 못하십니까?

똑똑하신 분들이...


"율법이 은혜를 낳습니다."


"더욱 은혜스러운 삶을 갈구 하신다면,

더욱 율법을 갈구 하십시요."


이것이 유일한 비결입니다.


왜 냐하면,

인간을 겸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율법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겸허" 라는 말은

윤리나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간 절망에서 나온 철학적인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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