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장과 교황 - 몰랐던 역사의 한 장면

by 김주영 posted Jan 27, 2011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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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A

교인 수로 치면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미국보다 훨씬 많다.

 

라틴계나 흑인 대총회장이 나올까?

 

1980년대에 북미지회장이었던

흑인 브래드포드 목사가 과연 대총회장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얘기가 오고가던 시절이 있었다.

 

인종문제에 있어

단연 후진에 속하는 우리 교회에서는

아마

카톨릭이 비유럽계 교황을 내면

그때 쯤 나올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잘못 알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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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인디애나폴리스의 55차 대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http://blacksdahistory.org/The_Adventist_Barack_Obama.html

 

그 대총회는 여성안수문제, 대총회 기구 문제, 십일조 문제 등으로

첨예한 주제들이 오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브래드포드 목사가 1990년에 은퇴했다)

 

 

당시 이미 12년동안 대총회장이었던

닐 윌슨 목사는

다시 대총회장직에 도전장을 냈다.

윌슨은 아직도 건재했고 능력과 인기가 있었다.

 

선거위원회는 두사람으로 압축했다.

 

윌슨 목사와  쟌 브라운 목사였다.

 

표결 결과

 

쟌 브라운 130 대 윌슨 81 로

 

브라운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런데 브라운은 왜 대총회장이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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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목사는 당시

중앙 아메리카 지회장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안티구아인 아버지와 도미니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서반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수리남인을 아내로 둔

라틴계 목사였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이었다. 

 

지회장으로서 그의 혁신적인 성취가 인정받아

변화를 요구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그의 선출을 반겼다.

 

66세의 브라운 목사는

전혀 의외의 결과에 놀랐던 모양이다.

 

선거위원회 결과를 알리기 위해

그를 찾는데 한참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대총회장직을 당장 수락하지 않고

금요일 오후 5시까지 답을 하겠다고

시간을 요구했다.

 

선거위원회가 발을 동동구르는 가운데

브라운 목사는 가족들과 회의를 하고

개인 기도로 깊은 성찰을 하는 중

 

No 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총회장을 한 회기 하면

70이 넘는데

자기 보다는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대총회장이 되면

계속 출장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약한 아내를 떼어 놓고 다닐 수 없다는 것도 그 하나의 이유였다.

 

선거위원장과

총회 지도자들의 줄기찬 설득이 있었으나

결국 그는 끝까지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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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 

비 미국인 대총회장을 맞이할 뻔 했던

재림교회의 새물결은

그렇게 일렁이지도 못하고 잔잔해졌다.

 

그 회기에

윌슨은 대총회장이 다시 못되고

선거위원장이었던

폴켄버그 목사가 대총회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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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카톨릭보다 앞선 것일까?

 

그랬다면 좋겠다.

 

하기야

교황선출하는 바티칸의 conclave 는

절대 비밀회의라서

그 속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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