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점 일획도 변치않는 율법의 영원성

by fallbaram posted Sep 22, 2014 Likes 0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옛말에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을 성경을 들여다 보는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요즘의 민초에는 다 그렇지는 않다 하여도 대부분 서로의 보는바와 믿는바를 가지고

상대의 믿는바 그리고 보는바 (씨름에서의 삽바)를 쥐고 넘어뜨리려 하는 시도가 더러더러 있어 보인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앞서서 서로의 삽바에서 취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놓치고 오히려 배격하는 논쟁에만 취중하는 것이

상당한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면이 노출이 되어서 반말이라는 규제에 걸려 한줄의 댓글이 잘려 나가기도 했다.


율법이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이라는 말속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의 기록이나 영원성이 전혀 문제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것을 인간의 공간과 시간안에서 주어진 논제요 사안이라면 그 영원성은 한번쯤 새롭게 해석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이나 품성처럼 변하지 않는것을 주셨지만 변하는 우리 인간의 영역에서 그것이 영원하면서 전체적인 성취의 과정을 거쳐서 영원히 기념되고 적용되는 방도나 길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이고 영원한 것이므로 너희들 또는 우리들이 그것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라는 논조만으로는

비록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약속을 받은자들이라 해도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부활전의 성도들이 여전히 갖는

BUT NOT YET 의 부족한 현상때문에 그 영원성과 전체적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율법 그자체로는 폐하여진 것이 아니지만 일차적으론 우리의 연약한 몸이 그것을 폐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차적으론 그 연약함을 극복하신 예수안에서 율법의 저주와 요구가 완성되었다는 의미에서 다시 폐하여 졌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가 또 오해하는 부분이 하나있다.

그런 지키지 못할 율법을 주시고도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실 것인가의 물음이다.

간음중에 잡혀온 여인을 가운데 놓고 율법의 사도들이 예수에게 물었다.

예수는 땅에다 두번의 글을 쓰시면서 자신이 시내산에서 두번이나 돌비에 글을 써신 장본인임을 암시하는 행동을 하시고 그러나 율법을 준 내가 이 율법의 범함을 정죄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신다.

그러면 율법은 누구를 정죄하고 심판하실 것인가?

그것을 지켜야만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속삭이는 거짓말의 주인만이 심판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런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율법은 영원하다고 속삭이는 그 자식들 (독사의) 또한

심판의 대상이다.


나의 이 아침단상을 받치고 있는 성경 한토막 올리려 하니

잡수시고 오늘도 우리구주 에수의 행하신 능력을 힘입어 좋은 하루 뜻깊은 하루가 되시기를 바란다.


요한복음 12장에 나오는 성경적들이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그 인자는 율법의 영원한 완성이요 동시에 일점일획도 변치않는 율법의 성취이며 우리의 모본이 아닌 우리의 대속이시다.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시므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율법위에 영원히 계시므로

일점일획도 빼지 않고 영원히 기념될 율법의 시작이

그분이 들려지는 십자가의 순간부터 시작 된다는 말이다.


십자가에서 처음 익은 열매속에 있는 그 영원성 그리고 모든 율법의 성취

이미 들려진 그 열매를 바라봄으로 우리도 율법에서 영원하고 그 성취에서 온전하자.

온전한것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자.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