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을 넘기면서 조금씩 나타나는 확연한 퇴화의 조짐들이 몸안에서 그리고 몸 바깥
쪽에서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일처럼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잘 없다고나 할까.
그나마 늙음을 의식하지 않던 시절의 가을은 말 그대로 낭만과 색갈과 풍요롭게 익어있는 과일들의
계절이요 천고마비의 계절이었는데 지금은 가을이 무상불 쓸쓸하게 오고 또 가슴시리는 차가운 온도로만 닥아 오는것 같다.
그런 생각을 극복해 보려고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의 운동을 하고
더 많은 분량의 채소나 과일을 섭취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산다.
삼천포 어느 마을에 살면서 꺼지지 않는 화산처럼 타오르는 우리가 소위 김옹이라고 부르는 정열의 한 노인이 쉼없이 산을 오르고 낚시를 즐기고 돌멩이 날아드는 이곳 전쟁터에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보다 십년이나 뒤쳐져 따라가는 초로의 내 처지를 여기다가 올려놓고 가을은 쓸쓸하다고 또 시리다고 하는것이 어떤 불경이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지만 그 분의 그런 분수가 식기를 기다려 나의 분수를 이야기 하기엔 그분의 건강은 실로 엄청난듯이 느껴진다.
요즘엔 기상시간이 전보다 훨씬 빨라져서 네시반이나 다섯시에 일어나게 된다.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절로 일어나 지는 시간이다.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의 문을 열면 곧바로 웅덩이 보다는 크고 호수라고 부르기엔 좀 작아보이는 인공으로 된 호수가 눈앞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저런 독서를 끝내고 운동화를 신고 바깥으로 나와서 그 호수를 일곱 바퀴를 돌면 사십분 정도의 산책이 된다.
그 호수엔 북쪽과 남쪽으로 하나씩의 분수가있다. 여름 저녁에는 열시가 다 되었는데 꺼지지 않고 계속 물소리를 내는 분수가
아침에는 언제 시작이 되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냥 분수는 스물 네시간 돌아가는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요즘은 보통 아침 다섯시 반에 산책을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에 분수가 언제 시작하는지 그 시간을 알게 되었다.
아침 여섯시에 분수에서 처음으로 분수의 물줄기가 솟아 오른다.
그런데 첫날에는 잘 몰랐던 부분들을 그 다음날에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그냥 쉬익 하는 정도의 바람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분수가 어두운 저녁에 문을 닫은 집안에 까지 시끄럽게 들리는 소음은 분수의 물줄기가 솟구쳤다가
수면에 떨어지는 순간에 생겨나는 소리다. 쉽게 말하면 마찰음이다.
통상 우리는 그 마찰음을 분수의 소리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분수의 소리는 마찰음 만이 아니고 쉬익 하고 물줄기가 나오는 소리도 분수의 소리인 것이다. 아침 여섯시에 그 분수 앞에서 쪼그리고 앉았다가 물이 올라오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분수의 소리가 마찰음 뿐이라는 생각으로 평생 살았을 것이다. 물줄기가 나올때 쉬익 하는 소리는 마찰음이 시작이 되면 다시는 들을 수 가 없고 맨 처음 뿜어 올리는 그 순간에만 딱 한번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이런 분수를 알게 되던날에 나는 내 마음속에 신선한 충격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분수의 소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결론짓고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이런저런 일과 사람을 샹대할 때도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살아가는 부분이 상당히 많으리라는 반성의 시간도 가져 보았다.
율법의 어느 부분을 우리가 보고 듣는가.
또 믿음의 어느 기능을 우리가 알고 말하는가.
상당한 부분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이는데 서로간에 뿜어내는 소리가 다른것도 이런 각도에서 느껴진다.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그 소리를 크게 듣는 사람들과 그것이 수면에 떨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소음을 크게 듣는 자들 사이에서
민초의 분수는 지금도 힘있게 돌아가고 있다
다만 쓸데없이 우리가 좀 다르게 생각하는 그 쉬익하는 소리들이 수면 (우리의 다른 시각속으로)으로 떨어질 때 나는 마찰음이 저으기 염려 스럽다.
분수를 알던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