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이곳에는 19 금의 소낙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걸쭉한 욕지거리하며 계속 이어지는 공방속에 구경하다가 잠들었다
당국에 알리겠다느니 시비가 이어졌지만 아침이 되자 사그라들었다
태풍이 사그라지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곳을 좋아한다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의 체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에는 왠 눈물이 그렁그렁 ------- 아침이슬과 함께 요동을 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곳의 탄력과 그 진행 방향 --- 바로 속사포로 비유된다
코스모스가 지천에 춤을 추고 가을 고추 잠자리가 유희를 즐기는 계절이다.
아침에 이곳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창세기를 탐색하였다
아담의 눈물이 스쳐 지나간다 아담의 눈물 --------------
최초의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난 첫째 아담 그는 타락의 주자로도 족적을 남긴다
사나이 답지 않게 변명과 핑계로 얼룩진 첫 사람 아담의 체면은 구겨졌다
더 이상 에덴에 머물 수 없는 아담과 그의 부인 하와
창조주 하나님은 드디어 아담 부부와의 결별을 작심하신다.
에덴 밖을 나가는 아름다운 부부를 생각하며 하나님은 고뇌에 빠진다
그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어야 할까 ?
그들에게 어떻게 이별을 하여야 할까 ?
하루는 아담 부부를 부른다
건강하고 털이 많은 양을 골라 양가죽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담 부부에게 설명한다
구속의 경륜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떨리는 음성으로 구속의 경륜에 대해 설명을 듣는 아담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곧 헤어져야 할 하나님 아버지
곧 떠나아야 할 낙원 에덴을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속에서 토해지는 피의 절규 - 누구를 원망하랴
자업자득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도 자상하게 따뜻하게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 야훼
죽기가 무서워서 울부짖는 양의 몸부림을 지켜봐야 하는 아담 부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저 죄없는 양이 죽어야 하다니
양의 죽음을 통하여 메시야의 죽으심과 십자가의 이치까지
아낌없이 다 설명하시는 야훼 하나님 - 아가페의 아버지
아담 부부의 몸 사이즈에 맞추어 한 올 한 올
추위와 바람에 견딜 수 있는 용서와 사랑의 옷을 직접 만드시는 아버지 야훼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는 아담 부부를 생각해 본다
아담 부부는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옷 한 벌이 다 만들어졌다
야훼는 두 사람에게 손수 만드신 옷을 입혀본다
맞춤이라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옷이다
손으로 어루만지니 감촉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마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손으로 만져보는 느낌이다
내 아들아 이 옷을 잘 보관하여라
그리고 안식일마다 에덴 동편으로 나아올 때 이 옷을 입고 오너라
너가 힘들고 지치고 고난이 겹칠 때마다 이 옷을 만지며 위로를 얻도록 하여라
이 옷은 곧 나의 화신이며 나의 임재이니라
친히 자신이 만드신 옷을 입혀 주시며 포옹과 입맞츰으로
에덴 밖으로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멀리 시집가는 딸 아이를 못내 아쉬워 한참이고 손 흔드는 아버지처럼
옷 고름으로 눈물 적시는 어머니처럼
나는 이것을 가죽옷 사랑의 잔치라 부른다
에덴에서 가져 나온 하나님의 선물 가죽옷
에덴을 나오니 날씨가 변하고 대지가 변하고
죄악의 흔적으로 낙엽이 떨어지고
가족에 퍼져가는 불신과 범죄의 자국들이 아담 부부의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보낸 아담 부부
에덴이 그리워지고 하나님이 보고플 때면
에덴에서 가져온 선물 가죽옷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적신다
드디어 첫 안식일이 되었다
에덴을 나와서 처음 맛보는 에덴의 행복이다
에덴 동편에서 아담 부부는 하나님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가죽옷을 입고 왔다
화염검으로 불타는 에덴의 동편
하나님의 임재로 뜨거운 세키나의 은혜가 넘쳐흐른다
아담 부부는 종일 이곳에서 하늘을 맛보고 에덴을 맛보고
해가 저물고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하루 오로지 안식일만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에덴을 맛보는 안식일 기쁨과 은총의 그 안식일
용서와 위로가 충만한 에덴 동편의 안식일
거룩한 시간속에서 만져보는 가죽옷의 은혜를 말이다
하루는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불신과 범죄의 길로 나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참다 참다못해 아담은 전 가족을 다 모은다
나지막한 언덕위로 아담은 오른다
그의 손에는 에덴에서 가져 나온 하나님의 선물 가죽옷이 있다
심상치 않은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첫 사람 아담의 고뇌를 훔쳐본다
모두들 숨를 죽이고 아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담은 말없이 그저 들고간 가죽옷만을 만지작거린다
아담의 눈가에는 후회와 회한의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골처럼 남겨진 구렁으로 눈물샘은 터져 흐른다
아이들아 이 옷은 말이다
이 할아버지가 에덴을 나올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란다
이 옷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눈물이 올마다 고이 가득 베인 것이란다
아이들아 이제 우리 모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구나
다 이 할아버지의 잘못이로구나 너희들이 이리도 고생을 하는구나
다 이 할아버지의 잘못이란다 이 할아버지를 용서하여다오 흑흑흑
아담의 전신으로 흘리는 눈물이
언덕아래 모인 온 가족의 심금을 울린다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회개의 울음소리가 고즈넉히 들린다
하와는 아담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가슴으로 울먹인다
큰 아이가 앞으로 나선다
할아버지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겠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순종하겠습니다
다음 안식일부터 에덴 동편 교회에 잘 출석하겠습니다
아담은 눈물로 회개하며 뉘우치는 쿤 아이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그래 고맙구나 고맙구나 다 이 할애비의 잘못이야
가끔 아담은 이런 부흥 집회를 가졌다
아담의 가족에게는 가보 1 호가 바로 가죽옷이다
가죽옷 부흥회 ------------- 그 때마다 아담 가족은 새롭게 헌신하였단다
박진묵님
님의 글을 잘읽고 있습니다.
오늘의 글을 읽고서는 님이 전에 다른 필명으로 야곱의 열두 아들과 요셉에 대한 글을
써 올리던 그 필명 (이름을 잊었슴니다) 의 주인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주어진 테마안에서 드라마타이즈 ( dramatize ) 하는것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글속에 이미 어떤 논리나 논지가 들어있고 기별 또한 분명하지만 희곡적이거나 수필등의 형식을 취하면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 장점이 있어 보입니다.
이 민초라는 곳에서 희곡도 자라고 시도 자라고 수필도 자라고 웃을 꺼리도 자라고 또 논쟁도 자라야 하지만
잡초처럼 뽑아버리고 싶은 욕지거리나 상대가 하지도 않은 내용을 꼬투리 잡고 글에 대한 반박보다는
글쓴이에게 돌을 던지는 아전투구식의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민초에 애정을 갖고 있고 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민초에서
신앙의 사색을 즐기며 함께 가고 있다는 동행의 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삽니다.
다소 이건 아닌데 라고 느끼는 혐오스럼도 있지만
결국엔 성숙한 의지와 생각이 더 크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 믿으며
님과 함께 이아침에 아침예배를 드려 봅니다.
박희관님은 요즘 어디로 갔는지 그의 발자취가 그리워지는 아침이기도 하네요.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