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말장난과 글장난/율법을님

by 김균 posted Sep 26, 2014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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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말장난과 글장난/율법을님

 =너무 길어서 댓글이 아닌 원글로 올라갑니다 양해하시기를-

 

여기서 제가 알기로는 율법주의자들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에게 율법주의자라고 하면 기분 상합니다

그러나 여기 그런 분들 억수로 많습니다

이름 적어 볼까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자는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직접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믿음 다음은 분명한 행함을 강조합니다

나더러 주여주여라고만 하지 말라


더군다나 저는, 율법을 지켜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에 초점을 맞춘 적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은 님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님의 시리즈 두 번짼가에서 님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님에게 행함으로 구원얻는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단지 갈라디아나 로마서 원글을 적으면서 님에게 수신처를 붙인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은혜이지 내가 믿은 다음 법을 지켜서가 아님을

나는 압니다" 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마치 님은 은혜를 주장하고, 저는 행위를 주장하는 것처럼, 결론을 내리고 계십니다.

 

답은 되셨는지요?

난 단지 로마서 7장 해석을 하면서 님에게 수신처를 붙인 것 뿐인뎁쇼?

님의 이름 한 글자도 적지 않았고 그런 냄새도 안 피웠는걸요?

 

그런데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중간에

유대인들처럼/율법을 님이란 글을 하나 더 썼습니다

물론 이 글은 님이 쓴 댓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님이 쓴 글은 붉은 표시를 했습니다

이건 님의 글에 대한 반증이란 말입니다

오늘도 님의 글에 대한 반증이니 님의 글은 붉은 색으로 덧칠을 합니다

 

나는 흑인들이 율법 모르고 그 주인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신원을 했다

님은 흑인들도 그분의 은혜로 믿었다

이게 두 사람의 쟁점일 뿐이었습니다


"오직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얻는다." 저의 주장과 동일 합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 님은 율법을 버려야한다.

저는 율법은 은혜에 은혜를 더하게 한다. 버릴 수 없다. 주구장창,

저는 님이 그렇게 주장하시는 믿음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율법의 기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님은 율법하면 "행위"라는 해묵은 논법으로

율법주의 자들과 논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을 버려야 한다고 한 번도 말 한 적 없습니다

율법을 졸업하자 했습니다

졸업은 더 나은 것을 위한 것이며 새로운 예수 믿음이지

졸업한다고해서 교회 졸업하는 것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율법하면 행위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위가 아닌 예수 믿음이 구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화하기가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많이 한 것 처럼 말입니다.

님도 별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마서 7장은 몽학선생이 아니다 라고

단칼에 잘라 말씀하시는 투가 그렇단 말입니다.

 

네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로마서 7장은 몽학선생이 아니라

세분화된 율법에 해당됩니다

죽이고 살리는 율법 말입니다


바울은 7장 내내 율법의 그 기능을 말하고 있는 대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원리를 독자에게 설명하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대도 말입니다.

어디 7장에 율법을 지켜야, 안지켜야 하는 논쟁이 있습니까?

 

내 글 어디에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 이야기가 있습니까?

로마서 7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서두에서부터 강조했는걸요


사설이지만, 제가 신학교를 설립한다면, 모든 신학생은 일년간 수학은 무조건 필수입니다.

그 가운데 기하학은 반드시 포함되야 합니다. 일년간 "B" 학점을 받지 못하면

무조건 탈락입니다. 신학교 근처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몇분과 대화하고 느낀 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난 수학을 못하면서 신학을 했더니 이 모양 밖에 안 됐군요

허허


논리나 원칙으로 나가다가 끝에가서는 꼭 감정, 휴너니즘, 등등 으로 빠집니다.

은혜를 꼭그런 식으로 처리한단 말입니다.

은혜는 자기들의 무슨 전유물인 양 하면서 말입니다.

바울은 은혜를 어떤 원리에서 설명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은혜는 내 전유물 맞습니다

내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난 어려서부터 율법주의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돌아선 겁니다

어려서부터 지독한 보수주의적인 신앙을 했습니다

돌아서보니 내가 제일 왼쪽에 있더라구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로마서 7장의 설명 끝은 휴머니즘도 아닙니다

내가 요즘 나이를 먹다보니 기억력에 자주 문제가 생겨 사색의 한계점에 달해서

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내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감정이 실렸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곳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바로 율법을 말함입니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율법인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습니다만

님처럼 설교하는 목사님도 계시더군요


사망의 음침함에서 나를 가이드 해주는 것이, 몽학선생이 바로 율법이라고

다윗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다윗은 이 말 바로 앞에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다윗은 율법의 인식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경우이외에도 법이 아닌 쫒기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바울처럼 시내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등

400여인의 부량자들과 함께 광야를 떠돌았고

남의 양을 돌봐 주면서 요즘 말로 하자면 보호세 자릿세까지 뜯은 사람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그는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기를 써 주실 때까지 지켜주시는 지팡이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말할 때 "말씀" 을 줄여서 하면 결국 "율법"인 것입니다.

율법을 인식하고 인지 하는 태도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 (dwelling among us) 는 것이란 말입니다.

 

말씀이 율법이면

빛이 있으라 하신 것도 율법입니다그려

1:1과 창1:3을 믹서해서 해석하는 우리 목사님들 같군요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말씀은 사랑이 아니라 율법이란 글로 바꾸셨군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은 율법이란 칭호를 받기 원하시는지 아니면 사랑이란 칭호를 받기 원하시는지

자비 은혜 노하기 더딤과 인자와 진실이 많은 그분이 율법이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다음 적은 님의 글은 성소를 통한 율법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견해가 다릅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소를 짓게 했습니다

그건 그들과 함께 한다는 표시입니다

그 표시가 없어집니다

이 땅에서는 성소를 통해서 말씀하실 일이 더 이상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역이 아닌 하늘로 가시면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 그분의 성소라 하십니다

하늘은 거소요 땅은 발등상이라 하십니다

그분이 하늘로 가신 그 시간에부터 그분은 지성소라는 곳에 대제사장 변호인 등등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분하는 1844년이란 한갓 가치 없는 날이 아닌

그분의 하늘 입성과 더불어 그분은 하늘의 지존한 곳에 계셨습니다

스데반은 그곳에 계시는 그분을 봤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는 은혜의 보좌는 성소에 있고 1844년까지 예수는 성소에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분 대제사장이 계시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합니다

답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상성막이나 성소에 있던 십계명이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오늘도 같이 중요하다고요?

아니요 오늘은 그보다 세분화된 나라 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늘법보다 더 지키기 힘든 법 현대판 탈무드가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로마서 7장은 성막 법궤 안에 있던 십계명의 설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을 없이하고 은혜를 논하자!

도대체 무슨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누구 좋으라고 하는 말씀들입니까?

 

율법 없이 은혜를 논하자고요?

율법은 근간이 되는 겁니다

나라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없는 듯이 졸업하자는 겁니다

현대판 탈무드에서 졸업하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 서론의 예를 들어서, 결론을 돌출하려는 어법을 가지고,

김치국부터 마시면서 남편이 죽었다고 호들갑들을 떠느냐 이 말입니다.

 

???

로마서 7장은 남편이 죽었다 살았다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편이 살았을 때와 죽었을 때를 갈라서 과부가 하는 행동의 범죄유무처럼

우리도 율법으로 그런 경우를 당한다는 말이 아닌가요?

님은 남편이 살아있는 것을 죽었다는 것도 말하지 않고

단지 그런 경우를 설명하는 구절로 왜 호들갑을 떨지요?

 

제발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도 길게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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