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선생님.
우리교회의 가치판단 기준이 온통 음모론뿐이니 어떻게 교회가
희망이 있을 것이며,
약자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의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불평등과 부패에 맞설 것이며,
불의에 단호히 아니오 할 수 있을 것이며,
인류의 공동선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며,
섬기는 리더쉽이 있을 것이며,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교회안에 예수의 사랑이 터 잡을 수 있겠습니까?
대물림 교인으로
음모론을 졸업하지 못하는 교회가 혐오스럽고 저를 슬프게 합니다.
심상치 않은 교황의 최근 행보들
김대성 한국연합회장의 교회지남 권두언(2014,9월호)
현재 교황 프란치스코의 서민적 모습이 세계인들의 주목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 문제를 풀어 가는 그의 정치적 역량에 대하여 세계 정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검소한 삶으로 가진 자의 본이 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로 희망과 정의의 등불이 되고 있다.”
“섬기는 리더십으로 세상 지도자들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정의의 사도로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에 맞서고 있다.”
“평화의 사도로 인류의 공동선과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어느 한 월간 잡지에 게재된 교황 관련 기사에서 교황에 대하여 묘사한 문구들입니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교황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의 영향력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파격적인 인기와 급작스럽게 증대된 권력의 배경을 가지고 움직이는 그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교황의 발언
2014년 6월 12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스페인 언론 <라 반구아르디아>와의 인터뷰에서 성경 중심의 신앙에 충실한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매우 도전적인 발언을 하였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더라도 근본주의는 폭력이다.” 그리고 이어서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분쟁은 종교의 가르침과 “모순된다.”는 비판도 첨가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란 성경을 인간 편의주의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황의 그러한 발언의 내용을 기독교 근본주의에 국한시켜 해석하면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그것이 모두 성취될 것으로 믿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이며, 좀 더 확대 해석하면 그러한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장 철저하게 믿고 살아가는 재림교인들에게 교황의 그러한 발언은 매우 위태로운 것입니다.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며 그 일을 주도하고 있는 교황의 권세가 ‘폭력’이라고 간주한 기독교 근본주의 이념을 가지고 신앙을 하는 재림교인들에게 어떤 물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이 다분히 있는 것입니다.
■ 교황이 만든 행복 십계명
그리고 교황은 ‘행복 십계명’이라는 것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한국일보 2014년 8월 2일 자 2면 참조). 그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은 ‘주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라.’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반인들에게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내용처럼 이해될 수 있지만,
재림교인들은 그 내용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알 것입니다. 지금 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 일요일 법령(Sunday Law)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대표적인 명분은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고 청소년들의 범죄를 축소하자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일요일 법령과 관련하여 그러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바 있습니다.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는 것은 재림교회의 예언 전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 중에서 핵심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 2장과 7장을 역사적으로 해석하면 필연적으로 가톨릭의 오류가 지적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는 계명은 곧 성경 예언을 가르칠 수 없도록 만드는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오늘 재림 성도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미래를 위하여 대비할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
성경 예언에 의하면, 가톨릭이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하나님의 참백성을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핍박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거의 종결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징조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는 예언의 성취가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재림 직전의 상태를 노아의 때와 같을 것(마 24:37)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이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39절)고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도전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고 명백하게 일어나고 있는 재림의 징조와 예언의 성취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지금,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훈련하여 신앙의 근력을 키우지 않으면, 언젠가 핍박이 몰려와 양단간에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재림 신앙을 포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라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쪽 저쪽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라고 확실히 말하는 것이 바른 목소리 입니다.
주변을 의식해서 혹은 여러 사람이 따라가니까 같이 따라가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취하고 그른 것은 버릴 줄 아는 취사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성경에 예언된 것을 해석함으로 얻은 결론인데 '음모론'으로 모는 것은 적합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