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36 님에게

by fallbaram posted Oct 17, 2014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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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글을 읽으면서

선린중학을 다니다가 부모님이 박달재로 입산을 하는 바람에

나와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동창이 되었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그럭저럭 한 이년정도 까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도미후에 신학을 해서 목사까지 한 친구

 

순전히 이건 내 생각이지만 재림교인이라면 어느누구도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는다거나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고 여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기다림의 방식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초림을 기다려 보지 못한 사람이 재림을 어떻게 기다리는 것일까요?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나를 구속하고 사랑해 주신 분) 을 기다리는 기다림이라면

기다림의 이유가 더 분명해야합니다.

 

초림은 역사적으로 지나간 사건이지만 개인의 구주로 오신 예수는

지금도 우리속에서 게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증속에서 그는 날마다 죽는다는 십자가의 사건에 더 집중하고 있으며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는 말에서 그에겐 초림의 사건이 더

강조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삼십여년전에 먼저 이민을 간 지금의  아내가 사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나와 결혼을 한후에 미국으로 같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다시 나에게로 오기전에 우리는 이미 사년이라는 공백을 넘어서는

서로간의 애정과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미국에 적응이 되고 미국에서 공부한 소위 전문인 출신들과

결혼하기를 아내의 부모들은 바랐지만 아내는 나에 대한 사랑과 약속을

더 우선했기 때문에 우린 다시 만나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부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율법과 교리는 사건을 기다리게 하지만

복음과 사랑은 사람을 기다리게 합니다.

 

율법과 교리는

죄를 용서받는 일로 닥아서지만

복음과 은혜는

죄인을 용서하는 일로 우리에게 닥아 옵니다.

 

우리는 날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날자를 기다리는 일에는 율법의 준수나 행함이 항상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에는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있는 곳에서 또 시간대에서

사랑과 약속을 믿고 지키는 삶이라면

그것이 바른 기다림입니다.

 

사건이나 날자로 선동하는 일에

흔들리지 마시고

 

사랑에 흔들리고

은혜에 흔들리고 

약한 믿음에 흔들리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각자의 믿음이 자라는 곳에서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날은 "두럽고 떨리는 날"이 됩니다.

 

그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입니다

 

약속을 믿고 사랑에 감동한 자들에게는

그날은 결코 두럽고 떨리는 날이 되어선 안됩니다.

그리고 결코 도적같이 임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말세를 준바하는 힘은 오직

그분에 대한 믿음 뿐입니다.

 

이것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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