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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다니엘의 “칠십 주”는 언제 시작되는가?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항상 완전 수이다. 이방인의 수가 “10”이라고 한다면 “7”은 이스라엘의 수이고,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숫자였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인식하시고 일하시는 방식은 항상 이 “일곱”과 관련이 있다. 한 주간은 칠 일이며, 우리 몸의 세포들은 수명이 칠 년이다. 위대한 중세 화가들(미켈란젤로, 다빈치, 램브란트 등)이 사용했던 색은 일곱 가지 뿐이었다. 우리는 또한 일곱 가지 색상과 일곱 음표를 가지고 있다. 레위기 23장과 25장에서도 일곱과 연관된 법칙이 율법에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7”은 하나님의 수인 “3”(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세상의 수인 “4”(봄, 여름, 가을, 겨울)를 더한 것이다.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운영 계획은 “때”(times)와 “시기”(seasons)가 정해져 있다(행1:6-7). 갈라디아서 4:4에서 하나님은 “때가 찬 경륜”이 되었을 때 그 분의 아들을 보내셨다. 우리가 성취된 예언들을 통해서 볼 때, 어떤 예언이라도 정확한 때에 반드시 성취되었듯이 미래에 대한 성경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1. 예언적 연대기(prophetical chronology)

  우리는 다니엘의 “칠십 주”를 유대인의 시간 관념에 따라 해석하여야 한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를 따라, 곧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하여 사십 년 간 너희가 죄악을 질지니, 그리하여 너희가 나의 약속의 파기를 알리라』(민14:34).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과 허물로 인해 그들에 대한 심판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 카나안으로 인도하여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40일, 곧 40년 동안 파기하셨다. 이 심판에 대한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어 그들은 40년 간을 광야에서 보내야만 했다.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계산하는 것(연일 체계)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흔한 일이다. 창세기 29:15-28에서 보면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한 주”동안 일하기로 라반과 합의했으나 “칠 년”동안 일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두 사람은 이 “한 주”가 “칠 년”을 뜻함을 잘 알고 있었다. 에스겔서 4:4-6에서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에스겔이 430(390+40)일의 날 수대로 좌편과 우편으로 누워 각각 그 죄악을 담당하여 이스라엘의 집에 징조가 되게 하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때 4:6에서 『내가 네게 하루를 일 년으로 정하였느니라』(A day for a year)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칠십 주”에서 그 대상은 유대인이므로 이러한 계산 방법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곧 한 주가 칠 일이므로 칠십 주는 7x70=490일이 되는데 위에서 살펴보았던 성경적 계산 방법인 연일 체계(Year-day scale)에 따라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면 490년이 된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명기 28:13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의 머리로 삼으시기 위해 490년의 기간을 정하셨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 9:25에 따르면 “칠십 주”의 시작 곧, 490년이 시작 되는 시점은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내릴 때부터 시작된다. “복원하다”(restore)는 단어는 대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하여 돌아옴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분명히 “예루살렘 성읍”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또 “재건하다”(build)라는 것은 그 당시에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읍”의 성전과 집들과 성벽까지 다시 건축하라(build it up again)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전과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과 관련하여 메대와 바사 왕들이 내린 칙령이 네 번 있다는 것이다. 그 네 칙령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칙령 : B.C.536년 바사의 코레스 왕에 의한 칙령
  두번째 칙령 : B.C.519년 메대의 다리오 왕에 의한 칙령
  세번째 칙령 : B.C.458년 바사의 아탁세르세스 왕에 의한 칙령
  네번째 칙령 : B.C.445년 아탁세르세스왕에 의한 칙령

  그렇다면 이 네 칙령 중 다니엘의 “칠십 주”가 시작되는 칙령은 어느 것인가? 위에 제시된 칙령들을 다니엘 9:25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다니엘의 “칠십 주”의 시작과 관련되는지 차례로 고찰해 보도록 하자. 

  (1) 첫번째 칙령 : B.C. 536년 코레스 왕의 칙령

  에스라 1:1-4에 보면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내게 주시고 내게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을 그를 위하여 건축하라 하셨도다. 그의 모든 백성 중에 너희 가운데 있는 자가 누구냐?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를 바라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에 계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지니라...』

이 포고는 역대하 36:22-23에서 확인되어진다. 그러나 이 구절들 가운데 어떠한 곳에서도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언급은 없다. 단지 언급된 것은 『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지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학자나 그리스도인들(서달석 목사, 간하배 교수, 요한 칼빈, 카일 루돌프, 에드워드 영 등)은 이 구절이 바사왕 코레스가 왕좌에 오르기 176년 전 그에 관하여 주께서 말씀하신 구절인 이사야 44:28에 따라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레스 왕으로 하여금 이 명령을 하도록 고무시킨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므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다니엘은 예레미야에 의해 예언되었던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는 그때(코레스왕 원년)가 되자 유대인들의 해방을 요구하거나 왕의 관심을 이사야 44:28에 돌리게 하지 않았다. 또한 성령께서 유대인들을 그들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도록 코레스 왕을 감동시켜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으로 되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고, 심지어는 금과 은접시들(느부캇네살이 성전에서 가져갔던)을 되돌려 주게 하셨는가? 코레스 왕으로 하여금 명령을 하도록 부추긴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결과로서 50,000명의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되돌아 오는데(스2:64-65), 이는 그들로 제단을 세우고 그들의 희생 제사와 절기들을 재생하며, 성전을 재건하도록 진행되었지만, 반대자들로 인해 그 사역은 지연되고 오래 끌게 되었다. 자, 이것이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전한 말씀의 성취인가? 물론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 간의 바벨론 포로생활은 끝났다. 그러나 역대하 7:14 말씀에 따라 그들은 거국적인 회개를 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과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는 것이 지연되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그들은 레위기 26:18-21,24-28에 따라 그들의 죄악을 7배나 더 담당해야 하므로 70년의 7배인 490년이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다니엘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490 년인 70주가 지난 후에 그들은 그들의 약속대로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의미한다. 코레스는 에스라 1:1-4에 보면 그의 명령을 “성전 건축”에 한정시켰으며, 한 번도 “예루살렘 복원과 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그가 그것을 포함시켰다고 확대시켜 추측하거나, 또는 이사야의 예언(사44:28)과 코레스 왕의 명령의 공포 사이에 있는 176년 만에 주께서 그 분의 마음을 바꾸셔서 코레스의 사역을 단지 “성전을 건축”하는데 한정시키셨겠는가? 마치 우리가 고레스 왕에게 단순히 그 분을 위해 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의 집(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셨다는 코레스의 말(스1:1-4; 대하36:22,23)에만 우리 자신을 한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코레스 왕의 칙령은 단순히 예레미야 25:11과 29:10의 성취이라는 것을 다니엘은 알았던 것이다. 이사야 44:28의 예언은 예레미야의 예언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바사 왕의 거명에 불과하다. 이것은 에스라 1:1-4과 역대하 36:

성벽이 다시 재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레스 왕의 칙령은 단순히 “성전”의 건축에만 국한시키고 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성읍 전체를 방호하는 벽이나 참호(trench), 참호길(ditch)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 칙령은 다니엘의 “칠십 주”의 시작이 될 수 없다.

  (2) 두번째 칙령 : B.C. 519년 다리오 왕의 칙령

  이 두번째 칙령은 에스라 6:1-12에 기록되어 있다. 에스라 5:1-17에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였던 자들이 그에 대한 권한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역에 얼마나 많은 방해를 받게 되었는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리오 왕에게 바벨론에 있는 왕의 보고에서 조사를 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래서 다리오 왕은 나라의 보고를 조사하도록 하였고, 정식 문서를 작성토록 명하였다. 그는 17년 전에 이미 코레스 왕에 의해 성전 건축의 조서가 작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단지 다리오 왕은 첫번째 조서를 인정함을 보이기 위해서 명령을 다시 내려서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에 대해 방해 받지 않도록 그 조서를 더욱 강화시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리오 왕의 칙령도 단지 성전에 국한된 언급이며,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재건”하는 것에 관한 언급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도 단지 성전에 제한시킨 코레스 왕의 칙령을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3) 세번째 칙령 : B.C. 458년 아탁세르세스 왕의 칙령

  이는 에스라 7:11-22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칙령은 몇명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에스라와 함께 데리고 가며, 벽돌 및 성전 제물로 드릴 수양과 어린 양들을 모으며, 또한 만약 필요하다면 왕의 보고에서 은 일백 달란트, 밀 일백 말, 포도주 일백 밧, 기름 일백 밧, 소금은 얼마든지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 된다는 허락을 하는 편지를 에스라에게 하달한 것이었다. 에스라 7:16-17에서 우리는 왕과 관원들이 그것들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칙령에서도 “예루살렘 복원과 재건”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이 명령도 역시 성전에만 국한되었다.

  (4) 네번째 칙령 : B.C. 445년 아탁세르세스 왕의 칙령

 이 칙령은 느헤미야 2:1-8에 나와 있듯이 바사 왕 아탁세르세스 20년에 바사 왕정의 고위 관원이었으며 왕이 신임하던 신하 중의 한 명이었던 왕의 술관원 느헤미야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어느날 그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찬 채 왕에게 나아갔다. 왕은 그가 병이 들었는지 무슨 근심이 있는지 물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신이 슬퍼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 성읍, 즉 내 조상의 묘들이 있는 곳이 황폐하게 되고 그 성문들이 불에 탔으니, 어찌 내 용모가 슬프지 아니하겠나이까?』 느헤미야의 설명을 들은 아탁세르세스 왕은 성전과 예루살렘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주도록 삼림 감독에게 조서를 내렸고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 성읍을 재건하고 복원하도록 허락하였다. 물론 이 칙령은 성벽을 재건하고 성읍을 요새화하는 것이 반역적 행동이라고 생각한 산발랏과 토비야와 같은 외부 세력의 반대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단지 정치적인 것이었지 종교적인 파송은 아니었다. 성벽이 52일만에 재건된 반면에, 성읍이 복원되고 율법이 재정비되기까지는 12년이나 걸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니엘 9:25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성읍의 재건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역사>에서도 이에 대하여 잘 나타나 있다. 느헤미야 파송의 목적은 정치적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복원이며, 또한 유대 민족의 회복이었다(완전한 회복은 아니다). 비록 조서와 칙령이란 말은 없지만 느헤미야 사역의 성격은 예루살렘의 복원과 재건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 본질상으로도 증명한다. 왕에 의해서 하달된 편지는 분명히 조서의 형태였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느헤미야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아탁세르세스 왕 20년이 B.C.445년이라는 것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확인된 연도이다. 우리는 세속적인 역사에 의뢰할 수 밖에 없으므로 다니엘의 “칠십 주”는 바사 왕 아탁세르세스 20년인 B.C.445년 3월 14일에 시작한 것으로 정확한 시점을 확증하도록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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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균 2014.10.21 18:52

    안식일 교인들 기 죽일 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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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 2014.10.21 19:31

    그러게요 제가 김운혁님에게 그렇게 스 7장의 아닥사스다와의 조서는 예루살렘 중건령과 무관하다고 일러줘도 운혁님은 원어를 들먹이고 또 자치권 회복이야 말로 진정한 예루살렘 중건령이다 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리더군요.

    그냥 읽어도 1차에서 3차까지의 조서들은 성전중건에 관한 언급인데도 안식일교회와 운혁님은 그것이 예루살렘 중건령에 관한 기산점이라고 우기는군요.

    독자분들도 그냥 한 번 읽어보세요. 에스라서는 성전중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고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중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 7장 그 어디에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 (rebuild Jerusalem)"는 암시조차도 없습니다.

    참고로 과거 구약시대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한 권의 책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성전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예루살렘 성읍회복으로 순차적으로 옮겨가고 있는거죠. 따라서 1차에서 3차까지는 성전에 관한 조서이고 마지막 4차는 예루살렘 성읍 (city)에 관한 조서죠. 칠십주님께서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왜 안식일교회는 스 7장을 "예루살렘 중건령"의 기산점 (Starting Point)로 잡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아마도 

    엘렌 화윗이 성전중심으로 착각해 다니엘서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운혁님은 늘상 안식일 교회 그 어느 신학자도 그 어느 목회자도 그 어느 누구도 예루살렘 중건령의 기산점을 아는 사람이

    지구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보기에는 운혁님 자신이  더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로 김운혁님의 재림날짜 계산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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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십주 2014.10.22 18:36
    화잇이 뭐라고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화잇이 성전이라고 했느냐 성읍이라고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화잇이 2300주야를 말했는데 만일 화잇이 틀렸다고 한다면 이 교리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안식교인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첫째 천사를 통하여 밀러에게 1844년 10월 22일에 재림한다고 기별을 주시고 다시 하나님께서 그 날을 바꾸셨다고 한 것처럼 이것도) 비록 화잇이 틀렸지만 하나님께서 일부러 틀리게 하시고, (새로운 의미로 주셨다고 하고) 또 새로운 창시자가 나온다면 몰라도 (안식교인들의 기준으로 보아도 이것은 맞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화잇의 말이 제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화잇은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바로 ‘성전‘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난해 구절이지만 (안식교가 아닥사스다 왕으로 연대 기준을 잡는 것은) 에스라서 6장 14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력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곧 최초로 조서를 내리고 다음에 일을 계승하고, 일을 완전한 새 왕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낙성되었은즉 세번째 조서를 내릴 때를 2300년의 기점으로 잡는 것은 예언의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대쟁투 합본 페이지 366)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화잇은 분명히 성전 중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 (예루살렘 중건령이 성전이 아닌) 성읍을 말한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성읍 구석에 하다못해 성벽이 무너지고, 성읍 구석에 있는 개울가가 어지러워지고, 다리가 하나 무너지고 그러면 성읍이 깨끗하게 중건이 안 됐다는 말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화잇도) 성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중심이 성전 아닙니까?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지성소로 올라가셨다는 것도 역시 성전에 대한 것입니다. 성전이 핵심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전이라고 하면 성전 중건령이 고레스가 원년에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명령을 내린 것이 536년입니다. 그런데 고레스가 가서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성경에서는 이 이방인의 왕 고레스를 “나의 의로운 왕“이라고 하여 그를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다 말고, 그냥 자기 집 먼저 짓느라 중단했습니다. 그러니까 학개 선지자가 나타나서 책망을 했습니다. 그게 학개서의 내용입니다. 그래 가지고 다리오 왕이 그 얘기를 듣고 재차 중건령을 내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안식교나 우리나 똑같습니다.

    안식교인들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까지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몇 년에 섰느냐? 주전 516년, 그 때 완성이 됐습니다. 지금 이 에스라 6장 14절에 마지막에 분명히 뭐라고 했는가 하면 “다리오왕 6년, 아닷월 3월에 전을 피력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6장 거기서도 뭐라고 했는가 하면 “스가랴의 권력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성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야 상식입니다. 그리고 삼육대학교의 총장 신계훈 목사가 최초에 요한계시록을 쓸 때는 성전 중건령이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성전 중건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닥사스다 7년을 성전 중건령이라고 하니까 뭐가 걸리느냐? 성전은 이미 고레스 왕 때 명령이 내려졌고 다리오 왕 때 완전히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아닥사스다 왕 때 성전 중건령이 내려졌다고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필원 목사랑 여러 사람들이 성읍까지 중건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인이 된 우필원 목사하고 저하고 논쟁을 할 때 그 분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중앙청이 수복이 되었다고 구로구청이 아직 더러워졌는데 서울이 다 수복되었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을 하기를 뭐라고 했는가 하면
    “구로구청 담벼락이 무너졌다고 중앙청이 더럽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닥사스다 7년, 즉 457년을 보니까 눈을 씻고, 씻고, 또 씻고 찾아봐도, 성전이니 성읍이니 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명령이 내려진 날일뿐입니다. 성경을 가서 다시 찾아보십시오.
    (그런데 이제 또 성읍이라 해도 문제가 되니까) 김상래 목사(교회와신앙측 진용식 목사와 논쟁한 안식교측 목사)는 뭐라고 했는가 하면 성전, 성읍, 왕조, 자치권이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닥사스다 7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해입니다. 귀환 명령이 내려졌을 때입니다.

    성읍이라고 하려면 오히려 아닥사스다 20년으로 잡아야 합니다. 주전 445년에 52일 동안에 성읍을 수축하였습니다. 밤에 성읍을 지으면서, 한쪽에서는 전쟁을 막으면서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은혜스럽게 52일 만에 성벽 수축을 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그 성벽 수축을 못하게 하려고 온갖 회유를 하고 다 했습니다. 그래도 52일만에 성벽 수축을 다 끝냈습니다. 성읍을 말하려고 하면 445년 아닥사스다 왕 20년대 연대 기준을 잡아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를 잡으면 뭐가 틀리느냐? 화잇의 2300주야가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니 이리 가도 걸리고, 저리 가도 걸립니다. 그런데 더 놀랍고 기가 막힌 사실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목사님께서도 뭐라고 했는가 하면 고레스하고 다리오 왕은 성전에 대해서만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화잇도 성전을 얘기했습니다. 화잇의 대쟁투에 성읍이니 하는 그런 얘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2300주야 문제 때문에 안식교인들하고 논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안식교인들 가운데서 조용히 성경을 연구하다가, 적당히 믿는 사람은 몰라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이거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성경을 보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입니까? 고레스하고 다리오 왕 때에 성전 수축령이라고 했는데, 에스라서에(6장 14~15절) 거기에 아닥사스다 왕의 이름이 왜 들어갔는지 이상합니다.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력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6:14~15). 이것은 난제입니다. 그러나 이 전을 여기서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고 해 놓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라고 하여 아닥사스다와는 상관이 없는데 그 이름이 들어갔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성전이 다리오 왕 때 완성되었으니까 아닥사스다하고는 상관이 없는데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닥사스다 왕보다 앞선 다리오 왕 때 완성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15절에서 “다리오 왕 6년, 아닷월 3일에 전을 피력하니라“ 그런데 왜 여기다가 아닥사스다 왕 이름을 집어넣었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름만 빼 주셨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안식교가 존재를 못하는데 어째서 이것을 안 빼셔가지고 속을 썩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안식교 목사님께서 성경대로 믿자고 했습니다. “아멘“ 성경대로 믿읍시다. 항상 성경 앞에서 겸손해야 됩니다. 성경과 안 맞으면 멀리서부터 다시 접근해 가야 합니다. 특별히 계시서는 더 그렇습니다. 계시는 상징적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내 인간적인 인위적으로 맞추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빼거나 넣으면 이름을 빼버린다고 했습니다. "


    -- 글 번호 8313 김운혁님 참고하세요 에서 발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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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혁 2014.10.22 01:41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에 동방에서 온 귀인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방문하는 일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저는 한동안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예수님이 탄생하실때가 가까왔는지 알 수 있었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여기 원글님이 말씀 하신대로 고레스 부터 아닥사스다 까지 네번의 조서가 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은 이 네개의 조서 중에 어떤 조서를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계산 하였을까?

    다니엘 9장의 70주일 예언을 어디서부터 계산했을까?

    출애굽의 역사를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지낸지 430년이 마치는 날 그들은 출애굽 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보시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원래 말씀 하실때는 400년간 너의 후손이 이방나라의 종으로 지낼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성취 될때에는 구체적으로 430년이 마치는 날 출애굽 하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 특별히 장자재앙의 사건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사건 이었습니다.

    430년이란 숫자는 사실상 지구 역사가 4030년이 끝나는 날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이 계획하신 예언적 숫자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 요셉이 총리로 나간 나이가 30세일까요? 왜 다윗이 왕으로 나아간 날이 30세 일까요?

     

    예수님은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30세에 그분의 직무를 시작 하셨습니다.

     

    그때는 서기 27년도 유월절이었습니다. 성전 정결을 하심으로 그분의 메시야 사명을 시작 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이스라엘 지도자들도 이 네번의 조서 가운데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서로간의 의견 충돌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더욱 유심히 봤다면 그들은 충분히 주님께서 서기 30년에 돌아가시고

    3년간 공생애를 하실것이며 공생애를 시작할때의 나이가 30세가 될것이며 결국 예수님이 태어나시는 때는 BC 5년경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 가운데 흑암 가운데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방 나라에 있는 동방 박사들이 더 주님을 기다리고 찾고 알고자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의 오심을 알리는 파수꾼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뇨 ? 우리가 경배하러 왔노라"

    " 온 이스라엘이 듣고 소동 한지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깊은 흑암가운데 빠져 있다가 깜짝 놀라깨어 났습니다.

    진리는 경건의 비밀 입니다.

    왜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고 보십니까? 인류의 역사는 2030년에 종지부를 찍을 것입니다.

  • ?
    김운혁 2014.10.22 01:55
    한가지 더 첨언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이유를 알면 예루살렘 중건의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루살렘 헤롯 성전은 서기 70년에 타이터스 장군에 의해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50여젼간 지어왔던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의 자랑거리였던 예루살렘이 서기 70년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주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 하시다 이 모습을 미리 내다 보시고 큰 소리로 통곡하시며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앎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아" 라고 부르실때는 건물을 부르신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일컬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황폐하게 된 근본 이유는 그 건물의 내구성에 있는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타락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중건은 사실상 사람들의 영적 회복을 말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새예루살렘도 " 천사가 성을 청략 하니 천사의 척량 곧 사람의 척량이라"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새예루살렘 성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성에 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학사겸 제사장 이었습니다.

    그는 3차 조서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 갑니다. 그리고 비오는 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의 눈물을 함께 흘립니다. 주님의 뜻을 거슬러 이방인가 결혼 관계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방인 아내를 버리겠다고 울며 결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된 예루살렘 중건은 건물이 아닙니다. 그 구성원이 죄를 버리고 여호와께 돌이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예루살렘 성이 멋있고 화려해도 주님은 " 그 도성에 거할 사람이 한사람도 없으리라" 라고 선포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예루살렘 성을 중건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참된 중건은 우리의 영적 쇄신, 깊은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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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혁 2014.10.22 02:28
    원글님께 말씀 드립니다.

    3차 조서는 기원전 457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4차 조서는 444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의 데이터를 사용하면 재림 교회 모든 예언 해석이 모두 다 사상 누각이 됩니다.

    과연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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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행함 2014.10.22 03:18
    김운혁님은 아래에 제가 퍼온글을 확실하게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원어를 잘 아신다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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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혁 2014.10.22 03:22

    믿음과 행함님.

     

    중건은 두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아가다 + 접속사+ 건축하다.

     

    이내용을 확인 하시려면 예레미야 29:10을 히브리어 원문을 보십시요. 다니엘서 9장 25절과 비교해서 보시면 확실히 아실 수 있습니다.

    원래 번역은 "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건축하라는 명령이 날때부터" 라고 해야 합니다.

    돌아가라는 명령은 에스라 7장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니산월 1일에 내렸습니다.

    기원전 457년 니산월 1일이 기산점입니다. 주님은 서기 30년도에 돌아가셨습니다.

  • ?
    믿음과행함 2014.10.22 03:28
    그뜻은 내용중에 설명되어 있구요. 스 6:14,15 절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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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혁 2014.10.22 03:41
    네 살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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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행함 2014.10.22 03:08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 (퍼옴)

    예루살렘 성,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다. 건축을 나타내는 단어는 히(바나)가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중건은 (슈브)이다.

    슈브는 건축의 의미도 있지만 회개하라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restore and build”=“예루살렘 회복 및 재 건령”이다. 물질적 표현뿐만이 아닌 관계를 강조한 단어이다.

    ‘조서’가 아닌 다바르이다. 성전, 성, 왕궁, 주권도 잃었다. 9:25 예루살렘 (슈브)하면- 무너진 것이 모두 회복되어야 한다. 성전, 정치적,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사는 주권도 회복되어야 한다.

    1. 제1차조서-고레스, BC 538~537년: 스 1:2 “성전 재건령”(고레스실린더(원통도장)기록) 스 2:1-4 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해 포로들을 상당수 돌아가게 해준다. 그러나 그들의 법인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생활하지 않았다. 아직 주권회복은 되지 않았다. → 고레스의 조서는 = “성전재건령”이지 “예루살렘 중건령이 아니다”

    2. 제2차조서-다리오왕, 고레스왕의 조서를 확인하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실행하라. 다리오왕의 조서는 고레스왕의 조서를 재확인한 것이므로 동일하다.

    3. 제3차조서-아닥사스다왕

    ①『스 6: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논리적으로 14절과 15절은 모순 된다. 스 6:14절은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15절에서는 다리오왕 6년에 성전건축이 마쳤다.

    14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세 왕이 내린 조서면 조서는 복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조서는 ‘조서들’이 아닌 조서라는 단수이다. 세 왕의 조서가 합쳐져야만 ‘하나의 조서’가 된다.

    스 6:15절은 역사적 사실을 말해준다면 14절은 그 조서의 신학적, 영적, 구속사적의미를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개의 조서를 단수로 말하고 있으므로 세 조서가 합해져야 하나님이 내린 조서가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 성전 건축은 다리오왕의 조서로 이루어졌지만 구속적 의미는 아닥사스다왕 때 완성된다. 시간적으로 세 조서 모두가 포함된 마지막 것을 ‘중건 영’의 완결로 본다.

    ② 아닥사스다의 명령
    하나님의 율법의 재판(=통치)이 이루어진다는 의미 = 주권회복.

    ③ 구약시대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성문.편집
    성문이 건축되지 않으면 재판이 이루어질 수 없다. 재판하라는 것은 성의 회복이 전제된다.

    아닥사스다왕 제 7년의 조서

    성전 중건령/ 주권회복령/성 중건령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만이 온전히 회복되는 영이다.

    이 영이 단 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


    BC 457년 - 아닥사스다 1세는 세 번째 조서를 내림. 이것은 그전의 단순히 건축하라는 법령과는 달리 수도로서의 예루살렘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법을 집행할 행정관과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권까지 부여했다(스 7:12-26). 또한, 관리들의 주택과 재판소, 거리와 성벽 등의 건축을 허가했다. 그러므로 기원전 457년에 내린 명령이 다니엘 9장 25절에 기록된 중건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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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 2014.10.22 07:45

    믿음과 행항님이 어디서 퍼온글인지 모르겠군요.

    퍼온글의 주장데로라면 재판권(자치권)은 성(읍)의 회복을 전제로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다시 한 번 스 7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윗글에 언급한 주택과 재판소 거리와 성벽의
    건축을 허가했다는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요? 그리고 에스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제발 성경에 없는 주장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스라서는 일관되게 성전건축 완성 그리고 봉사에 관련된 것들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퍼온글의 주장대로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읍이 완전히 회복됬다고 전제합시다.

    그러면 불과 12년후에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내리는 또 다른 조서는 뭔가요?

    성전도 낙성되고 성읍도 완전히 회복되었는데 느헤미야는 왜 비탄에 빠져 다음과 같이 한탄하고 있는가요?

    느 2:3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탓사오니...."
    2:5 ".......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send me to rebuild Jerusalem)
    하옵소서."
    2:8 "왕이 조서를 내려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서는 일관되게 예루살렘 중건에 관한 책입니다.

    참고로 파숫대로 유명한 여호와증인도 70이레를 해석하며 "성을 건축하라 (Rebuild Jerusalem)"는 기산점

    (starting point)을 느 2:1, 5-8로 주장하고 있군요. 어느 교단이 기산점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가요? 근데 여증도 기산점의 정확한 연대가 역사가들에 의하면 BC 455이랍니다. ^^ 혼잡스럽군요.

    한마디로 퍼온글의 주장대로라면 스 7장은 느헤미야서의 내용과 배치됩니다. 에스라와 느혜미야는
    같은 책인데 뭔가 앞 뒤가 맞지 않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혹 제가 모르고 있는 다른 주장이 있으면
    권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 ?
    믿음과행함 2014.10.22 12:58

    스7: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스7: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단 9:25 절에서 70이레의 기산점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중건을 마치는 때가 아닌,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 라는 것이지요.

    아닥사스다 7년의 조서로 중건이 시작되었지만 중간에 다른민족의 방해와 고소로 중건을 완전히 마치지 못하고
    중단되었던 것을 아셔야 합니다. BC 444/455년에 다시 조서를 내리게 된 경위는

    에스라 4: 7-23절을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아닥사스다왕의 예루살렘 중건 허가에 대해 불평했던 일들로 인해서
    아닥사스다가 기원전 457년의 조서를 번복하여 성전 중건을 중지시켰던 사정을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사 법에서는 한 번의 조서로서도 충분한데 아닥사스다가 예루살렘 중건을 허가하는
    두 번째 조서까지 발행하게 된 것은 왕의 변덕과 메가비주스의 반란의 결과였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은 대규모의 반란을 지도할 당시 메가비주스가
    강(江) 서편 지역의 총독이었다는 것이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이 그의 관할 구역이었고, 예루살렘도 그 구역에 포함되었다.

    메가비주스가 10여 년 후인 기원 전 448년에 반역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정은 사마리아인들이 아닥사스다왕으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성을 견고히 쌓아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오해하도록 유도하기에 좋은 배경을 제공했다.
    아닥사스다왕의 이같은 상황에 영향을 받아
    사마리아인들은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동안 쌓아올린 성을 허물고
    성문과 성전 문을 불살랐다.' 카스다 2008.12.03 20:27 김균님의 글 중에서

    BC 444/445년에 내려진 조서에서 느헤미야의 귀환은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 457년)의 경우와는 달리 집단적이
    아니라 신변 안전에 역점을 둔 개인적인 것이었으며(느2:7-9) 또한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었습니다(느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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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 2014.10.22 14:25
    님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아닥사스다 7년의 조서로 중건이 시작되었지만 중간에 방해를 받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요?

    스 6:15 보면 이미 다리오 왕 제 육년에 성전은 이미 완성된것 아닌가요? (The Temple was completed
    during the sixth year of King Dariu's reign).

    스 3장에 성전공사가 시작되고 4장에 성전공사가 방해받고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조서에 따라 다시
    성전공사를 시작해 다리오 왕 6년에 이미 낙성식까지 했는데 아닥사스다왕 7년의 조서로 뭘 명했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스 7장은 아닥사스다 7년에 성소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명령이 아닌지요?

    에스라서는 계속해서 성전건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요?

    님이 말씀하시는 아닥사스다 7년의 조서 즉 스 7장 어디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있는지요?
  • ?
    믿음과행함 2014.10.22 15:11
    제가 위에서 퍼온글 내용중에서 (스6:14)의 내용을 잘 이해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14절과 15절은 모순 된다. 스 6:14절은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15절에서는 다리오왕 6년에 성전건축이 마쳤다.

    14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세 왕이 내린 조서면 조서는 복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조서는 ‘조서들’이 아닌 조서라는 단수이다. 세 왕의 조서가 합쳐져야만 ‘하나의 조서’가 된다.

    스 6:15절은 역사적 사실을 말해준다면 14절은 그 조서의 신학적, 영적, 구속사적의미를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개의 조서를 단수로 말하고 있으므로 세 조서가 합해져야 하나님이 내린 조서가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 성전 건축은 다리오왕의 조서로 이루어졌지만 구속적 의미는 아닥사스다왕 때 완성된다. 시간적으로 세 조서 모두가 포함된 마지막 것을 ‘중건 영’의 완결로 본다.
    -----------------------------------------------------

    스4:12,13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아닥사스다 7년에 내린 조서(스7:7~26)에 예루살렘 중건에 관한 위의 내용이 없었다면 음해하는 사람들이
    위와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내용에는 무너진 성전뿐만 아니라 폐허가 된 성읍의 복구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치권의 부여도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한 세명의 페르샤 왕들의 조서는 ,고레스 원년 (537년BC),다리우스1세 제2년(520년BC),아닥사스다 제7년(457년BC),아닥사스다 제20년의 추가조서(444년BC)등이 있었으나 다니엘서9장 25절에 예언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조서는 기원전 457년에 내린 아닥사스다왕 제7년의 조서입니다.
  • ?
    피노키오 2014.10.22 16:31

    그렇지요.

    14절 15절은 모순되죠.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다른 이견을 가지고 있죠. 저자가 다니엘이 아니라
    후대에 다른 저자가 기록했기 때문에 그의 동시대와 근접한 사건의 기록들은 비교적 정확하지만
    그 이전의 오랜사건들에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그런 주장도 있다는 것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조서가 단수니 복수니 그런것은 한글 번역상의 문제가 아니가요. 제 영문 성경에는 그냥
    "The temple was finally finised, as decreed by Cyus, Darius, and Artaxxes, the kings of Persia."
    이 경우는 세명의 왕이 복수로 되어있군요.

    성전건축에 성읍과 성곽이 동시에 건축되었을 것이라는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사람들도 경제활동을 하고 거처할 주거가 필요했으니까요.

    스 4:17절에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성전을 건축한다고 되어있습니다.
    "We will build the Temple for the Lord, the God of Israel, just as King Cyrus of Peria commanded
    us."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성전건축이 시작되었다면 님의 주장데로 다른 도시 인프라도 시작되
    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파들이 성읍과 성벽을 언급한 것이지요. 그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겠습니까? 또 위의 성경절은 성전 성읍이 누구에게서 처음 시작되었는지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반대파들이 성읍과 성벽을 언급했기 때문에 아닥사스다의 조서에

    예루살렘 중건령이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추즉은 너무 억지 같군요.

    단 9:25절은 예루살렘 중건령이 날 때부터 입니다.

    그렇다면 고레스가 내린 조서(명령)를 기산점으로 하는 것이 더 성서적이지 않겠습니까?

    스 7장에 언급되지도 않았고 아닥사스다의 조서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
    라는 명령을 억지로 유추하려는 모습은 마치 김운혁님의 해석 방법과 뭐가 다른지요? 우리는 그냥
    성경에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있지 않은가요 그런점에서 차라리 여증의
    기산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요?

    아무튼 님의 설명 잘 들었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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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행함 2014.10.23 01:59

    고레스가 내린 조서는 예루살렘성의 중건령이 아니라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스 1:1-4)
    스 4:1절부터 보면 유대인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주변 민족이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스4: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하였으며
    스4: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저희가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니라
    스4:7 아닥사스다 때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스4:8....예루살렘 백성을 고소한...

    스 4:5~8절에 걸쳐 고레스때부터 아닥사스다때까지 방해한 내용들을 한번에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레스와 다리우스때에는 뇌물을 주어서 방해를 했고 아하수에로때부터는 고소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아닥사스다때 고소한 내용이 나오는데

    스4:12-13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고소의 내용에서 보듯이 성전 건축이 아니라 성읍건축에 관해서 음해성 고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닥사스다는 이 고소를 받아들여 건축을 중지하고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고 영을 내립니다.
    스 4:23절까지 아닥사스다왕때 음해자의 고소로 건축을 중지한 이야기를 한후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4:24 절에서 고레스때 방해로 중지되었던 성전 건축이 다리오왕 2년까지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스5:1 절부터는 선지자의 독려에 의해서 다시 성전 건축을 재개하자 스5:3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와서 누구의 명으로 건축하는지 묻자 스5: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됐다고 대답하니 저들이 다리오왕에게 이 내용이 사실인지 묻습니다.

    스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 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스6:2 메대 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스6: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다리오왕은 고레스왕때 조서를 찾아내어 기록을 확인하고 스6:12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하고 다시 확실하게 고레스의 영을따라 성전을 건축하라고 확인조서를 내려 줍니다.
    이렇게 해서 스6:15 다리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을 필역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7:1절에서 다시 아닥사스다왕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스 6장 14절의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의 설명을 앞의 4~6장에 걸쳐서 한 것입니다.

    고레스와 다리우스의 조서로는 성전건축까지만 마치게 된 것을 설명합니다.

    성전건축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성으로서의 지위로 회복시키기 위해 성읍과 성곽을 복구하여 자치권을
    회복하도록 조서를 내린 것은 아닥사스다의 조서인 것입니다. 조서에 내용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런 내용이 없으면 어떻게 음해자들이 스 4:12,13 절에 있는 말을 하겠습니까?

    음해의 내용을 잘 읽어보세요. 성읍과 성곽을 복구하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게 아니라
    그것을 다 복구하여 자치권을 회복하면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할 것> 이라고 모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조서에 성읍과 성곽을 복구하라는 명이 없었다면 왕한테 모함할 것 없이 저들이
    바로 성읍과 성곽을 부셔버렸을 겁니다. 왕의 조서에 복구하라는 명이 있었기때문에 함부로 못하고
    대신, 그것을 복구하면 저들이 자치권이 생겨 독립할지도 모른다는 음해성발언을 한 것입니다.

    단 9:25절에는 70이레의 기산점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라고 하면서 부가적 조건이
    나와 있습니다.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라는 내용인데 이는 <성전>
    의 중건을 말하는게 아니라 <성>의 중건을 말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전 중건까지만 마친
    고레스와 다리오의 조서는 해당이 안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예루살렘 성까지 복구하기 위한 내용이
    조서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을 중건하라는 내용만의 조서라는 것이지요.
    즉,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라는 조서가 아니라 단순히 성전 건축을 용인하는 조서였다는 것입니다.

    단 9:25절 뒷부분의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의 구체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성읍과 성곽을 복구하고 거리와 해자(적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하여 성 둘레의 외벽 아래에 파놓는 인공적인 호수)가 만들어지는 것들이 25절에서 가리키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 의 의미였다는 것입니다.
    고레스와 다리우스의 조서에는 성전 건축에 관한 내용이고 성읍과 성곽의 복구로 거리와 해자가
    이루어지는 조서는 아닥사스다의 제 7년에 내린 조서에 있는데 이것 역시 방해를 받아 중단되었다가
    아닥사스다의 2차 조서가 내리고서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 ?
    김균 2014.10.23 00:37

    내가 볼 때

    단9장 25절은 그 뒤의 이야기를 연대 정하고

    위로 올린 겁니다

    위로 올리고 보니 b.c457년이 나온 겁니다

    그 해가 아니면 뒷 구절 이레의 절반을 해석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 선구자들 이런 식이요

    전에 다른 사람이 했던 것 짜깁기요

    다니엘서의 후대 저자 문제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성경통신학교교재 신계훈목사의 다니엘서 해설 그런 정도만으로 알고 있으니 

    일반 많은 성경학자들이 하는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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