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by 김균 posted Oct 31, 2014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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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지금부터 3400여 년 전 어느 날

정확하게 말하자면 B.C 13651114

라암세스3세 사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화장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화장품은 고대 이집트 모든 일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품이었다

당연히 태양 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피부보호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3400여 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발명한

f20(썬크림=자외선 차단제의 치수)로 알려진

수분 함유의 썬 크림이었다

 

사실 고대 이집트 남자들은 여자만큼이나 화장을 했다

이집트인이 화장품을 최초 발명한지는 모르지만 기록으로 남은 최초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집트인들은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미용제품을 발명했다

파운데이션 볼터치 립글로스 아이라인 등이다

마스카라 펜이나 브르쉬대신에 상아나 은, 청동으로 된 섬세한 작은 주걱을 발명했다

죽은 사람에게도 그 화사함은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성경은 애급의 총리였던 요셉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50:26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물론 요셉의 아비인 야곱에 대하여도 이런다

50:2,3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왜 향을 넣었을까?

내세를 위하여? 그런 이유는 그 시대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애급의 왕은 죽고 나면 신이 된다고 믿었다지만

요셉이 총리였던 왕조는 셈족인 힉소스족의 나라이며

야곱은 죽어 내세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행위는 망자에 대한 예의차원의 꾸미기라 보면 더 맞을 것 같다

 

그들은 건강한 혈색은 사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sarcophagi(이집트 석관무덤)에미용기구들을 함께 묻었다

청결함은 경건함 다음으로 여겨졌고 머리를 빡빡 민 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다

최초의 면도칼은 청동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은 주전 3000년 전의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멋진 헤어스타일을 추구했다는 것인데 그들은 가발을 이용했다

최초의 가발은 주전 2600년경에 이집트 무덤에 새겨져 있다

비싼 가발은 인모나 양털이었고 대추야자 나무에서 얻은 섬유로

인조가발을 만들기도 했다

그 것 마저 구입할 돈이 없으면 짚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에게는 가짜 턱 수염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집트 제18왕조의 여왕인 핱셉수트는 의식행사 때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서

턱수염을 붙였다

대부분의 문명사회는 거울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청동을 윤을 내어 거울을 만들었다

태양신 를 본 떠서 만든 것이라 한다

 

따라서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감탄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은 알렉산더 시대까지 가서 최초로 콤펙트 파우더를 접한다

사실 파우더는 얼굴에 바르는 것이 아닌 거울에 윤을 내는 것이었다

 

현대의 미용산업은 수십억달러 거대한 시장이다

이건 우리의 집착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시장이다

정말 순수하게 미용실을 발명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요즘 면도를 하고 화장품을 바르지 않으면 얼굴이 조여서 못 견디겠다

매일 면도를 해야 하는 내 얼굴이 밉다

화장품 값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싸구려 사 쓰면 된다고? 앞으로는 그래야겠다

옛날 연합회 출입할 때는(직원으로 오해하지 마라) 회기 역 부근에서

반의 반값으로 판매하는 것들 자주 사서 썼는데

요즘은 샘플 얻어서 쓴다

 

이젠 화장품과 타투의 관계를 말해 보자

어떤 개구리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 입을 둥글게 모아 자기 과시를 한다

낚시하다가 복어를 낚아보면 이놈이 뭍으로 잡혀와서도 온 몸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날 건드리면 독으로 죽는다

코브라도 위험이 오면 얼굴을 넓힌다

상대가 혹시 길죽한 자신을 깔봐서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다

 

이렇듯이 인간도 심리학적으로 남에게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산다

벧전 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2000년 전 그 시대에 베드로는 왜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을까?

가난하고 못 배우고 아는 것도 없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자 교인들이

가난한 교인들을 얼마나 깔봤으면 이랬을까?

이런 행위에 대하여는 주의 만찬 때도 같은 내용이 있다

고전 11:20,21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부자는 자기 것 많이 가지고 와서 오래 도록 먹으니 배부르고 취했다

가난한 자들은 남의 놉을 살다가 늦게 오니 먹을 것이 없어서 시장했다

너희들 주의 만찬을 왜 이렇게 불공평하게 하느냐

어떤 놈은 취하고-물론 술을 마셨으니 취한다- 어떤 놈은 배고프고

교회가 이런 것 까지 해서 되겠는가? 하는 바울의 책망이다

2000년 전에는 술이 그들의 음료였다는 것에 이의는 달지 마시라

100년 전에도 기독교에서 술이 음료였다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달지 마시라

 

아래 사항을 참조하시고 태초부터 술은 금한 것이라고 성경절 몇 개 가지고 와서

허무맹랑하게 성경해석하는 것은 그만 두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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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1800년에 교회가 금주서약을 처음 실시했으나

금주운동단체는 1808년 뉴욕 주 새러토가와 1813년 매사추세츠에서

최초로 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운동은 교회의 영향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갔고 1833년 미국에는 여러 주에 걸쳐 6,000개의 지부(支部)가 있었다.

특히 캐리 네이션을 비롯한 몇몇 금주운동 옹호자들은 조직화된 운동과는 별도로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에서는 최초로 아일랜드에 금주단체가 생겨났고

1829'얼스터 금주협회'의 결성을 계기로 이 운동은 큰 진전을 보이기 시작해

그 뒤에는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와 영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20세기 중반에 가장 큰 금주운동단체였던 '영국성공회 금주협회'

1862년에 세워져 1873년 재건되었고 1969년에 들어와 '

전국경찰법원전도단'과 합쳐 '영국성공회 사회봉사위원회'를 결성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1836년과 1837년 각각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최초로 금주운동단체가

설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술을 끊거나 그것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이들 단체들이 여러 지역에서 벌인 교육과

법령제정 활동의 목표였다. 또한 근래에 들어와 도덕적·정치적 활동을 서로 연계시킨

금주운동은 활동영역의 국제화와 여성의 조직적 협력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최초의 국제적인 금주운동단체는 1851년 뉴욕 주 유티카에서 결성된

'선량한 신전 수도 기사단원협회'(Order of Good Templars)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단체는 점차 미국 전역과 캐나다·영국·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로 퍼져나갔고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서아프리카, 남아메리카까지

확산되었다. 1909년 런던에서 세계금주회의가 열려 '국제금주연합'을 결성했다.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미국의 금주단체 '전국 여성기독교인 금주연맹'

1874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금주법 제정의 촉진을 위해 정치적 수단과 아울러 교육적·사회적 수단도

이용했으며, 1880년대에 와서는 다른 국가들에도 조직을 확산시켜

1883년에는 '세계여성기독교인 금주연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한국은 어땠을까?

한국에서의 금주(禁酒), 단연(斷煙)운동이 일어난 것은 1900년 이후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앞서 금주, 단연에 대한 권고와 경계가 있었다.

선교사들은 선교초기에는 술과 담배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 입장이었으나

1895년을 전후한 때로부터 금주, 단연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계주론(戒酒論)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청교도적 신앙생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신앙적 유익과 한국사회 개화를 위한 의도가 있었다.

즉 술은 백성의 재산을 패하여 백성들을 점점 곤궁(困窮)토록 만들며,

장부(丈夫)의 기운을 꺾어 회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

건강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선교하던 선교사들은 술과 담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나

처음부터 이를 금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교회 초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성탄절이 되면 술을 빚어서 교인들이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 있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신발장 옆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가 폐하면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또 장로교회의 첫 선교사인 언더우드(H. G. Underwood)

한때 흡연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란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그는

한국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흡연한 일이 있으나 후일 건덕을 위해 단연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는 아편사용에 대하여 엄격한 입장이었으나

, 초문제는 관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다름을 알게 된 것이다.

음주하기 전에는 선량한 사람도 일단 음주하게 되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또 음주로 패가망신한 경우를 수차 목격하고

금주, 금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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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은 벧전3:3 이 문구로서 금반지를 금하고 고급 옷을 금하는 것이

예수쟁이인 것처럼 포장한다

두 돈짜리 금반지는 금한다고 야단 떨면서 로렉스 시계는 아무도 말 않는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이야기가 통하는 것이 교회인 것 같다

아 참 대단위 땡처리 점포인 코스트고에 갔더니 13천만원짜리 시계가 있더라

중국 상해 조선족 교회 앞에 짜가 골목이 있었는데

로렉스 시계 고급에 속하는 것 400위안했다

 

난 편하려고 머리를 파마한다

그런데 정작 곱슬머리인 사람들은 그걸 미장원에 가서 펴려고 돈을 들인다

타투도 그런 경우로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탈렌트들 타투 자리를 밴딩으로 묶고 나왔는데

이젠 거리낌 없이 반소매 차림으로 출연한다

다중이 하는 것은 언제나 자유스럽다 이러다가 목사님도 타투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오늘 우리는 죽은 자를 위하여 라는 단어는 빼 먹은 채 타투를 경원시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것 보면 싫은 시대가 있었다

 

내가 믿는바 그것이 진리이다 다른 사람이 믿고 말하는 것은 짜가다

이렇게 판단하면 남도 나를 그렇게 판단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자들이 분으로 곱게 단장하고 시집가듯이 우리는 예수의 신부로서 곱게 단장하는 게

예의 아닐까?

이젠 가난했던 예수가 아닌 우주 제일의 부자 예수의 아내들로서

곱게 화장하고 필요하면 타투도하고 비싼 시계도 차고

나처럼 등산 가는 사람이면 구스 점퍼나 고어텍스 바람막이도 입고

그리고 기다리는 게 신부된 도리 아닐까?

인류 역사와 함께한 화장품 그리고 타투

죽은 자를 위하여 몸을 베는 것은 타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엘리야와 대결한 바알의 선지자들 행위를 보면 안다

왕상 18: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몸을 스스로 베는 것은 이렇게 종교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반대론자들의 답장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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