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대통령님, 세월호 연장전 갑시다

by 펌3 posted Nov 02, 2014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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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결혼을 하여 자녀가 있었다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거야.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엄마,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저렇게 애타하는 이유가 뭐야?"


박근혜 대통령: "응. 자식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애타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니. 네가 세월호에 탔다가 죽었다고 해봐라. 배 안의 불이 꺼지고 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배는 기울어져 있는데, 창문으로는 밖에서 구조되는 사람들이 보이고,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는데, 그 아비규환, 그걸 상상하면 부모로서 미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지. 그리고 엄마 정부가 늘 하는 말 있지. '비정상의 정상화'. 그거 말 잘 지은 것 같아.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야. ㅎㅎ."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엄마, 그런데 왜 엄마는 그 가족들을 외면해?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만들겠다고 하고, 국민들 앞에서 막 울면서 엄마 책임이라고 했잖아. 왜 말이 달라졌어. 내가 세월호에 탔다가 죽었다고 해도 그렇게 할거야? 그 사고가 경상도의 부산 앞바다 앞에서 일어났어도 그럴거야?"


박근혜 대통령: "넌 평소에 말이 너무 많아. 이 한 가지만 말할게. 이론과 현실은 달라. 응, 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야. 엄마는 너희 할아버지한테 정치는 그런 것이라고 배웠거든. 너희 할아버지도 '이번만 뽑아주시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임기를 보내겠습니다."라고 무려 네 번이나 국민 앞에서 약속하셨었거든. 그런 걸 '정치적인 수사'라고 하는거야. 할아버지가 비명에 가시고 난 다음에 할아버지 주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은 꼭 이번만 대통령 하고 물러나실 생각이었'다고 했던 것도 '정치적인 수사'지. 정치란 그런거야. 당선되고 보는거지. 강한 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강한 거야. 알았지? 정치는 현실이야, 모 아니면 도라고. 선거에서 지면 끝장이야. 그런 하찮은 것에 흔들렸다면 너희 할아버지가 18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겠니. 할아버지가 대통령에서 물러났으면 그 오랜동안 쌓이고 쌓였던 부패 사건들이 한 꺼번에 터져나올텐데, 할아버지가 감당이나 하셨겠니? 그 주변 사람들은 어떻고. 야당이 감옥에 넣고 싶지 않아도 터져나오는데 어떻게 할거야. 유야무야 하며 넘어가기에는 너무 길었어. 죽기 아니면 살기였지. 지도자는 냉정해야 돼. 작은 것에 흔들리면 안 돼.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초지일관하게 밀고 나아가야 해. 그 시대에 빨갱이는 뭐가 빨갱인줄 아니. 할아버지 생각하고 다르면 빨갱이야. 빨갱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이 사회를 움직이기가 아주 쉬워. 지금도 그래 엄마 생각하고 다르면 다 빨갱이야."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아, 그래서 할아버지가 1979년 10월 26일 돌아가시는 자리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차지철 경호실장 아저씨가 나무라면서 '데모대가 100만 명이라도 탱크로 밀어버리"라고 그랬구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이고,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초지일관하게.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아 알겠어요. 저보고 그렇게 살으라는거죠, 할아버지와 그 주위 사람들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그런데 엄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할 때, 하루종일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 집무실에 있었어? 엄마 아침에 출근하잖아. 그런데 왜 사람들이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데, 엄마가 집무실에 없었다고 그래? 엄마 뭐하고 있었던거야? 어디 서 뭐 하고 있었냐고 묻는 사람들의 SNS를 막 뒤지고 감옥에 보내고 공포 정치를 한다고 해. 할아버지 때보다 더 막 간다고.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박근혜 대통령: "응, 가서 공부해. 그런 건 묻는게 아냐" .......................... (무슨 말을 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자녀가 있었으면 박 대통령의 판단과 집무 방식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결혼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보다도 그의 캐릭터가 그렇게 형성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엄마~, 나 낳을 때 배 아팠어?"


박근혜 대통령: "응, 아팠지. 3일간 아프고 아파서 널 낳았단다. 넌 나의 전부야!"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엄마, 엄마는 천주교인이지? 천주님을 믿지?"


박근혜 대통령: "응, 믿지!"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엄마에게 있어서 천주님은 어떤 분이야?"


박근혜 대통령: "음, 아빠같은 분이랄까? 결단력있고 지칠줄 모르고 국민에게는 엄하고, 의견이 다른 자들에게는 가차없는 그러나 내게는 따뜻한 불도저 같은 강인한 남자!"


박근혜 대통령의 아들, 딸: "그렇구나!"


박근혜 대통령: "권력이란 그런거야. 이성계를 봐. 역사에서 타이밍 맞춰서 권력을 쥔 사람들 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일단 쥐고 보는거야. 그 다음엔 관성의 법칙에 의해 앞으로 가게 돼 있다고. 그게 인생이야. 종교도 정치 밑에 있는거야. 그게 인생인거야."



언젠가 어디서 본 것 같다. "국민과 결혼한 대통령!". 선거 구호뿐이었나? 가슴이 없는 대통령인가? 결혼이 그런건가? 헌신짝 내버리듯 내치는? 결혼관계의 신뢰가 그런 건가? 





세월호 참사 관련으로 5건의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추모만 했다면 별 문제 없었을 터인데,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다는 것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었다. 지금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구체적인 행동만 없으면 대부분의 추모 대회는 한없이 평화로울 수 있다. 

그런데 추모 대회를 하다가 나는 한 번 연행되고, 갈비뼈가 부러져 다시 병원 생활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찾아보겠다고, 정진우씨의 카톡을 검찰이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텔레그램으로 망명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수백만 명의 국민들만 망명객들로 만들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샅샅이 찾으려는 노력은, 샅샅이 조사해 어떤 끈 하나라도 붙잡으려는 노력은 4월 16일, 그 바닷가에서 해야 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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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을 넘지 마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열리는 29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찰에 가로 막힌 채 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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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름 열심히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도 해보지만 세월호 관련해서는 아무리 많이 울어보고, 외쳐봐도 가셔지지 않는 미안함과 안타까움 같은 것이 늘 '살아' 남아 있다.

내게도 세월호에서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가끔 빤히 들여다보며,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해 본다. 너처럼 그렇게 소중했을, 죽어간 너의 친구들을 위해 아빠도 노력은 했다고 혼잣말을 해보곤 했다. 죽어간 아이를 잊지 못해, 아들이 평소 입던 양말과 속옷과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며 울먹이던 ○○의 아버지는 또 다른 나였다. 아이 얼굴이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해 밤에도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는 △△어머니가 또 다른 내 아내의 얼굴이기도 했다. 

그들은 또 내 친구들이기도 했다. 열 다섯 명, 열 여섯 명, 스무 명... 한 명 한 명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죽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어깨가 무너져 가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그들은 다르지 않았다. 85호 크레인 위에서 우리 동료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하던 김진숙과 박성호가 그들이었고, 경부고속도로변 옥천나들목 광고탑 위의 유성기업 이정훈과 홍종인이 그들이었다. 

다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노조 사무실 배관호스에 목을 매단 동료의 관 앞에서 오열하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피맺힌 얼굴이 그들의 얼굴이었다. 96일을, 67일을 굶으며 죽겠다고 말라가던 김소연과 유흥희가 유민 아빠가 되어 앉아 있었고, 시신마저 유린당한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가 또 다른 이 시대의 실종자이기도 했다. 

3000일 넘게 거리에 나앉아 있는 코오롱정투위의 최일배가, 오늘도 중앙지법 앞에서 우리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나의 가족들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시위 중인 콜트-콜텍 목 잘린 기타노동자들의 처지가 청운동 앞과 광화문 광장의 유가족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나의 친구들이었다.  

유가족들마저 침몰... 보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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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족에 눈길 주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로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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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정부와 국회와 법정은 이 모든 이들을 구해주지 않고, 도리어 외면하는 지점에서 한결 같았다. 세월호 참사 초기 바짝 엎드려 있던 대통령이 어느새 기세등등하여, 법치주의 운운하며 유가족들과 국민 모두의 바람인 특별법 제정에 가이드라인을 치고 나왔다. 본인은 이제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탈출해 살아났다고 생각하는가보다. 

눈물 흘리며 사죄를 구하던 그 눈에 싸늘한 독기를 품고 청와대 앞에서 벌써 70여 일 넘게 한 번만 만나달라고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철저히 '떼쓰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6·4지방선거, 7·30재보선 당시 앞 다퉈 세월호 참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던 그들이, 세 번에 걸쳐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법인지 종잡을 수 없는 껍데기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하여, 진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나아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국가의 무능과 자본의 부패를 넘어 한국 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나아가자는 전사회적 열망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연거푸 수장당하는 참사를 거듭하고 있다. 죽든 살든 이 죽음과 능멸의 체제 내에서 얌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치욕에 시달리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 한 분은 도도한데, 온 국민이 발가벗겨진 듯한 모욕에 시달리고 있다. 도리어 사회적 패배감과 무력감만 저 막막한 팽목항 앞 바다처럼 드넓어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실종자 포함 304명의 생목숨이 눈 앞에서 수장당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젠 그 유가족들마저 온갖 능멸 속에서 고립당하고 침몰당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아직도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에서,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국회의사당 들머리 노천에서 100여 일 넘게 노숙을 하며, 죽어간 우리 아이들, 선생님들, 노동자들, 평민들의 손을 잡아달라고, 우리들의 손을 좀 잡아달라고 긴급구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저 유가족 분들의 간절한 소리. 그 앞에서 이제 우리도 그만 일상을 위하여 귀를 막고 눈감고 돌아서야 하는가. 대한민국 세월호 전체가 좌초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저 오만한 대통령이, 저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한 정부와 국회가, 사람 목숨을 이윤의 잣대로만 재는 저 무자비한 자본가 집단이 대한민국 전체를, 우리 모두의 삶 전체를 위험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이 대참사를 또다시 묵인하고 넘어갈 것인가.

11월 1일, '연장전' 돌입의 휘슬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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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연장전' 시국 기자회견이 열렸다.
ⓒ 신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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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문화의 시대, 반인륜의 시대에 과연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창작의 도구로 쓰는 '연장'들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를 묻고, 이 시대와 양심의 '연장'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연장전'에 돌입하고자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나서고 있다. 

영화, 영상, 미디어, 언론, 출판, 문학, 미술, 만화, 음악, 연극, 춤, 굿, 어린이책, 문화기획, 디자인계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인들이 분노하며, 이건 아니라고 나서고 있다.

참사 200일 되는 11월 1일 '연장전' 돌입의 휘슬을 울린다. 11월 15일엔 그 1차전으로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광화문으로 자신들의 모든 '연장'들을 들고, 4·16 참사 이후 만들어 온 모든 표현물들을 들고 모이기로 했다. 1일엔 항의와 규탄의 의미, 추모와 반성의 의미로 자신들의 연장을 내려놓고, 11월 15일엔 그 추모와 반성, 항의와 규탄으로 버려진 연장을 다시 집어들고 모인다. 숫자를 떠나 지난 30년 동안 이 정도 규모로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연대의 전선으로 모여 본 전례가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의 정도였다.

이제 막 특별법의 골격 정도를 잡아나가려는 이 시점이 세월호 추모와 진상규명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점 정도라는 문제의식으로, 끝나지 않는 '세월호, 연장전'에 돌입한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등은 사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다. 

온 사회가 상갓집이 되고, 온 국민이 상주가 된 이 거대한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진실 조사도 하지 않겠다면 그 국가가, 그 정부가, 그 국회가 도대체 우리에게, 이 사회에 무슨 필요란 말인가. 국민 대부분이 공유하고 요구했듯이 진상조사위원회는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 내에만 설치되는 국가 기구로만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 모두가 실상은 조사받아야 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국가기구의 참여도 보장해야겠지만 대다수는 주권자들인 민간이 초헌법적 권위를 가지고 모든 국가기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도하는 준엄한 민간위원회여야 했다. 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 이제 와서는 위원장의 임명과 조사권까지 교란하고 박탈하겠다는 특별법과 그 진상규명위원회는 사실은 우리 사회 모두의 존엄과 안전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교살하고 다시 한 번, 아니 영원히 세월호의 참극을 저 깊은 망각의 바다 속으로 수몰시키고 말겠다는 거대한 학살극에 다름 아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또 다른 참사를, 학살극을 막는 데 힘이 부족할 수도 있고, 공권력이나 사회 기득권층들의 총체적인 공세 앞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 이제 그만 세월호 문제를 대충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경제' 문제로 돌아가자는, 나중에 다시 하자는 우리 내외부의 달콤한 선동과 피로감에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할 까닭이 있겠는가. 마지막까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는 데 주저할 까닭이 있겠는가. 끝까지 질문하려는 노력을 그만둬야 할 까닭이 있겠는가. 끝까지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불온함을 포기할 까닭이 있겠는가. 신문 지상이나 TV 뉴스에서 간간이 나오는 국회 내 '쇼'나 보면서, 다시 넋 잃은 관람자나 되고 말 것인가. 

나는 어떤 '연장'을 들고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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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연장전 웹포스터
ⓒ 세월호 연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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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이 나서니 그날 함께 응원해주고, 구경와 달라고 부탁하는 글이 아니다.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부끄러운 마음, 지친 마음 다시 추스르고 나선다고 하니, 그날 우리 모두가 모여 이 기만적인 세월호 정국에 대한 분노의 소리들을 모아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입이나 국회의 기만적인 얼굴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확인한 바, 진정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나서서 다시 바르게 세우는 날로 만들어보자는 호소다.

우리 문화예술 역시 한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와 가치의 우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혀가는 사회적 입법 기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통치' 행위는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는 무슨 권력자들이 아니라 국민들의 심부름꾼들일 뿐이고, 모든 '통치' 행위는 주권자들 모두의 집합된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연히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독재가 독점이 폭력이 모욕이 대양보다 더 크게 자라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보다.

나는 세월호 200일이 되는 11월 1일, 어떤 마음의 '연장'을 들고 나갈 것인가?
다시 11월 15일, 나는 어떤 반성과 각성과 분노의 '연장'을 들고 나갈 것인가?
나의 '연장'은 어떤 역사의 밭을, 진실의 논을 일구는 데 쓰여야 할 것인가?
나의 '연장'은 어떤 허위의 장막을, 권력의 벽을, 독점의 금고를 깨부수는 데 쓰여야 할 것인가?

애니메이션 만화가가 꿈이었다는 소정이에게, 시각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주아에게, 배우가 꿈이었다는 동협이에게, 춤을 좋아했다는 경주에게, 음악교사가 꿈이었다는 시연이에게, 제빵사가 꿈이었다는 다빈이에게, 동물학자가 꿈이었다는 재강이에게, 국제구호활동가가 꿈이었다는 수연이에게, 바리스타가 꿈이었다는 준민이에게, 수화통역사가 꿈이었다는 서우에게, 박물관큐레이터가 꿈이었다는 지아에게... 

생존자라는 게 멍울이 되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에게, 일반인 희생자들에게, 구조 활동 과정에서 다시 숨져간 수많은 의인들 앞에, 그 무수한 짓밟힌 꿈들에게 나의 '연장'은 어떤 이웃이어야 할까.

나의 '연장전' 역시 이제 시작일 뿐이지 않는가.   

<세월호, 연장전> 문화예술인 선언 소셜펀치 페이지(바로 클릭)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프레시안, 참세상, 미디어오늘,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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