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재미있게 노시는데 찬 물 한 그릇 받으세요
재림교회의 신학 역사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을
우리는 1888년 논쟁이라 부른다
같지 않은 교리를 가진 교단에서 성장한 목사들이
재림과 안식일이라는 한 개념으로 합쳤는데
그 속에는 전에 가졌던 그 사상들이 역시 꿈틀거리고 있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는 이런 사상들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믿음이냐 행함이냐
이것만 주된 관심사라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그 당시는 총회 전에 1달씩 성경연구를 하고 총회를 했다
그래서 거기서 도출되고 확정된 것들이 새로운 것으로 승격하는 것이 바로 총회였다
그곳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만 논한 것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몽학선생도 같은 레벨에서 떠들고 있었다
역시 오늘 우리가 떠드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몽학선생을 논하는 사람들
사실로 말하자면 몽학선생의 정의에 무식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고 글 써대는 분들 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엮여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웃음부터 난다
바둑의 고수가 상대의 수를 몇 수 알고 돌을 놓듯이
우리도 그 정도되야 여기서 내 패를 보이지 않고 상대를 읽고 있어야 한다
나도 어떤 때는 상대의 패를 못 보고 내 패만 보여 주는 경향이 있는데
지나고 보면 아차 한다
1888년 이 교단은 새로운 경지를 걷고 있었다
대쟁투도 증보판을 내고 새롭게 전진할 궁리를 하고
선지자에게 무조건 조르기보다 저들의 생각을 내 펄칠 수 있을만큼 지식도 자라고 있었다
물론 그 당시 벌써 보수와 진보의 편이 갈라지고 있었다
갈라디아 율법에 대한 논쟁
즉 몽학선생이 어떤 놈이냐 하는 문제도 큰 이슈였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성경을 해석한다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이
몽학선생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혀 논쟁을 했다
한쪽은 의식법이 몽학선생이다
다른 한 쪽은 도덕법이 몽학선생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선지자라는 여인에게 물었으나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모두들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논쟁이 수그러지고 의식법이면 어떻고 도덕법이면 어떤가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선지자가 한 말씀 하셨다
"어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가?
나는 의문의 율법과 십계명인 도덕적 율법 이 두 가지가 다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다고
대답하는 바이다"(가려뽑은 기별1권233)
이놈 너도 맞고 저놈 너도 맞다
몽학선생이 별건가 그것에 매인 놈은 다 해당된다 바로 이 말이다
그럼 피터지게 싸울 때 이런 소리 하지 왜 세월 지나서 성깔이 가라 앉을 때
이런 소리하냐?
우리 선지자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태도를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종종 예루살렘 총회를 빗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그 중요한 십계명을 총회에서 입도 방긋하지 않고
피, 목매여 죽인 것, 제사물건, 음행, 이런 것들만 이야기했을까?
신약성경 어디에도 십계명 그리고 4째계명에 대하여 중요성을 이야기한 바울 서신이 없는데
나는 매우 실망한 사람이다
그 중요한 기별을 왜 바울은 그렇게 많이 쓴 서신에서 한 번도 강조한 적이 없을까?
1888년
그토록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왜 입을 다물었을까?
왜 성령께서는 그리도 쉬운 문제를 한 참 지나서 너희들 둘 다 이겼다 하는 식으로
감동을 주셨을까?
이게 오늘 재림교회 높으신 분들이 시간 질질 끌고 모른 척 하다가
나중에 슬쩍 시행하는 여러 행정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째깍째깍 답하는 문제는 뭘까?
돈에 대한 것 즉 십일금에 대한 것이다
ㅋㅋ
아 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왜고너의 손을 번쩍 들어 줬다
성령은 너무 하신다
손들어 주는 김에 그것도 알기 쉽게 손들게 해 주시지.....
다음 찬 물은 조사심판이다
다들 한 잔씩만 마시고 속 차리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