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JCN님 글은 취한듯 좀 괴상한 느낌이
2014.11.06 19:03
님의 글은 읽어보면 죄송하지만 괴상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근본 내면은 인간적으로 따뜻한 면도 있는듯 싶습니다
님께 좋은 약을 드리려고 그러니 끝까지 읽어 보시지요
즉 님 글은 마치 취객이 길에서 소리 지르는듯한 느낌인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하고 님의 문장을 검토해 보니
다음 같은 5 가지 특징 때문에 그런듯 싶군요
1. 반 말로 해라 ! 하는 말투와
2.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하여 중언 부언함과
3. 논리의 부족성과
4. 심한 미움이 가득한 듯한 말투
5. 지도자들에 대한 반항심 같은 말투
인데, 육적인 술 취함도 깨려면 다시는 알곡을 변질시킨 술을 들지 마시고
변질 안된 알곡의 밥만 먹으면 차차 깨듯이
영적 술도 마찬가지로 먹지 말아야 하나니, 곧 세상 책은 보지 마시고
민초스다 같은데도 들어가지 마시고
( 거기 가보니 욕설, 야유, 비난, 정죄, 이설이 난무, 정신이 없음 )
여기서 정상적 교제 하시며, 변질 안된 알곡인 하나님 말씀을 많이 잡수십시오
하나님과 교제로 기도도 많이 하시고 그러면 차차 술이 깨버립니다
맑은 물도 많이 드십시오. 맑은 물은 피 속의 알콜 농도를 희석시켜
알콜이 뇌로 안가게 하여 술이 깹니다.
그 맑은 물은 예언의 신입니다
강력한 약은 성경이자만, 우선 중환자에게는 부드러운 약부터 서서히
처방했다가 좀 회복 된 후에 강한 약을 주듯이 .... 그리고 그
부드러운 약은 예언의신입니다
댓글 1
정무흠
2014.11.06 19:40
조재경 목사님을 생각하며 - 박용근
제 이름은 박용근입니다. 처음으로 이곳 카스다에 글을 올립니다. (아마 이 글이 저의 유일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십습니다)
단 한 번도 글을 올리지 않았던 제가 이렇게 굳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조재경 목사님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 동안 이 카스다에 실린 글들을 읽어 오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배웠왔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안타까왔던 것은, 일부 성도님들이 조재경 목사님에 대해 오해 내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혹 여러 성도님들이 조 목사님의 진실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쓰는 것입니다.
저는 2002년 앤드류스 세미나리 공부를 위해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홀로 이곳 베리엔 스프링스로 왔습니다. 등록한 교회(미시아나 한미 재림교회)가 이곳에서 약 35분 떨어진 인디애나 주 사우스 밴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매 안식일마다 조재경 목사님의 차에 편승해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오랫 동안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저는 조 목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화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제 질문에 조 목사님께서 답하시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저도 한 때는 깊이 성경공부에 심취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14시간 성경만 읽어도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빨리 지나가는지.. 수 많은 관련 서적, 그리고 카스다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수 많은 글들을 섭렵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 지식에 대한 교만도 나도 모르게 또한 커갔습니다. 이런 저는 이 분을 만났을 때 주제넘게 이 분을 한번 시험해 보고자 하는 좋지 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온갖 지식을 동원하여 때로는 짓굳게, 때로는 농담 삼아, 때로는 진지하게 성경은 물론 목사님의 사생활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 분께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야구방망이로 아들을 때리려했다는 소문에 대하여, 교회기물을 파손했다는 소문에 관하여,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하시는 너서리 잡(Job)에 관하여, 일부 교인들이 반발하는 성경 구절해석에 관하여, 카스다 및 다른 여러 싸이트에 올리신 논쟁 글들에 관하여, 왜 스스로 목회에서 초빙을 못받는지에 관하여, 사모님이 저렇게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관하여...
이러한 나의 짓굳은 질문에 목사님은 항상 진지하게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도를 지나친 나의 질문에 충분히 화를 낼 만도 하련만 도무지 이 분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이분에게는 남을 향한 악의라고는 전혀 찿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카스다에서 수 많은 조롱을 당할 때라도 이 분이 타인을 향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봐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일부로라도 더 이 분의 지식을, 인내를, 그 한계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중에 저는 이 분에 대한 많은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오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정말 남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경에 관해서도, 도데체 그 어떤 질문에도 이 분은 도무지 막힘이 없었습니다. 온갖 성경의 난제들을 질문했건만 마치 준비된 분처럼 자상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때로는 정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가만히 뒤돌아 생각해보면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지 사실 이 분의 말씀이 정말 옳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했습니다.
요컨데, 이 분은 정말 성경공부를 많이, 확실히 하신 분이셨습니다. 가까이 뵈니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활동 이외의 모든 생활 자체가 공부였습니다. 저도 많은 목회자를 만나봤지만 이런 분은 극히, 매우 극히 드물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분의 성경만큼 그렇게 깨알같은 많은 주석을 달아놓은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주석을 달아 놓으셨던지 성경은 너덜너덜 해 지고 그 부피는 약 1/4이나 더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제 생각에 이 낡은 성경은 참으로 박물관에 진열할만 하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분께 정말 깊이 감명을 받은 것은 이 분의 성경지식이나 그 열의 때문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었보다 하나님을 향한 이분의 진실되고 충성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은 몇 십년 전에 서약한 대로 지금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전도지를 돌리시는 분입니다. 사우스 밴드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어떤 때는 예정된 구역에 차를 멈추시고 전도지를 돌립니다. 눈이 오건 비가오건 개의치 않으십니다. 비를 맞으면서 라도 반드시 계획된 일을 마치십니다.
머리에 지식만 가득 차 있는 교만하고 못난 저는 특히 비오는 날에는 이것이 싫었습니다. "목사님, 비가 심하게 오니 나중에 돌리시지요", "목사님, 제가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할 일이 있는데 오늘은 그냥 가시지요". 이런 날에는 저를 바래다 주시고는 다시 그 먼 길을 돌아와 전도지를 돌리십니다. 웬만하면 한번쯤 건너 뛰기도 하련만 이 분에게는 이런 일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하신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이 분이 비 맞으며 전도지 돌리는 동안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복잡한 심정으로 차 안에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분이 꼭 이렇게 해야만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날 밤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이 밴튼 하버에서 차를 잃어버리셨으니 급히 좀 도와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밤중에 각종 범죄로 위험한 그 흑인지역에 들어가 차를 세워놓고 서원대로 전도지를 돌리시고 와 보니 차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분, 참으로 못 말리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제 마음에도 서서히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목사님이 점점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저는 이 분의 일부 성경해석이나 의견에 결코 동의 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 분의 그 금강석같은 충성된 모습에서 비치는 참다운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생존하기에도 빠듯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전혀 물질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요!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믿음 안에서 지행일치의 삶을 사시는 이 분의 모습이 얼마나 진실된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조롱과 모욕을 당하여도 항상 하나님만 보고 선의로 남을 대하시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요! 때를 얻든 못 얻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려는 그 열의는 얼마나 값진 건인지요!
비록 초라하지만 그 안에 거하는 참으로 선하고, 진실되고, 충성스런 이 분의 모습은 참다운 예수의 제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바로 이러한 중심을 귀하게 보십니다.
저는 나날의 삶에서 이 분과 같이 선하고, 진실되고, 충성스럽게 사는 것이 참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끼면 느낄수록 이 분이 더 크게 생각되어집니다. 이런 분이야 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참 성도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약점이 있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경우에 따라 서로 의견을 달리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상대에 대한 조롱이나, 비방, 험담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조재경 목사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