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자신이 게시판에서 쓴 언어의 폭력에 대해 고민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인간적인 박진하 목사를 보고 싶다.

by posted Nov 16,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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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카스다


제발 글 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겠다는 것 아닌가? 왜 사과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만이 심판할 수 있다는 식의 말로 넘어가는가? 자신의 글의 폭력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인가?


"형제가 사단이 될 때......"는 박진하 형제의 경우가 게시판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본인은 진정코 모른다는 말인가?


은혜로운 성경절, 예언의 신 다 좋다. 글을 쓰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사과도 하면서 하는 것이지, 사사로운 전화통화에서는 그렇게도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쓰면서 왜 글로는 그냥 넘어가는가? 게시판 가족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그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친구가 될 만한 태도를 보여달라. 그대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게시판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달라? 게시판에서의 모습처럼 거칠고 사과도 안 하고 안하무인으로 그대 가족과 친지들에게 하지는 않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그대의 기관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대처럼 한다면 그대는 그들에게 무어라 할 것인가? 한 시도 운영될 수 없을 것 아닌가?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가? 무엇을 위해 무례를 반복하는가? 게시판에는 무수한 그대의 선배들이 늘 그대를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보다 신중하고 보다 자중하시라. 90대, 80대, 70대 선배가 지켜보고 있다.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달라. 어른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달라. 그대의 삶에 혹 재림교회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있다면 지금이 그러한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이다. 그대나 우리나 같이 늙어가고 동행하는 형제 아닌가? 거친 말, 거친 행동, 부탁인데 자중하고 겸손하시라.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이 제목의 글은 자신에게 먼저 비춰보시라. 그렇게도 무수히 많은 설교를 해온 목사에게 나타나야 하는 모습 아닌가. 그런 모습이 조금이라도 그대에게서 볼 수 있다면, 그대는 여러 누리에서 진정 존중 받고 존경 받으리라. 앞에서 웃고 뒤에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으리라. 그대의 모습이 천성은 아니잖는가?  


이젠 대놓고 민초에 들어오고, 대놓고 카스다 kasda.com 에다 퍼나르는 커밍아웃이 고맙다. 글 속에 숨은 비열함을 감춰주기를 바란다. 그대는 목사, 양을 치는 목자, 너무 카스다를 소음으로 가득 채우지 말기를 바란다. 


적과 아군으로 나누는, 너무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의 자기만족과 같은 신앙이 자신을 영적인 난장이로 보이게 하는 것에 대하여 깊이 깨닫고 뉘우치기를 바란다. 그게 그대에게 필요한 '진정한 회개'가 아닌가! 성경과 예언의 신 맨날 갖다 붙이면 뭐하는가? 그대에게 열매를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이가 아주 많다면 그건 그대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대의 글과 말이 너무도 많은 분란을 가져왔다. 이것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너무도 반복되는 그대의 글과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니 글도 적당이 올리게. 집안에 어른이 있으면 가솔이 자중하는 법. 게시판도 그러니 재림교회 그만 무시하게. 그 에너지를 그대가 운영하는 기관에 사용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연구하게. 그 입에 많이 올리는 '새벽기도', 그 시간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대에게  뭐라하시는가? 기도를 10분의 1로 줄이고, 10분의 9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오늘 하나님은 그 새벽기도에서 그대에게 무어라 하시든가? 카스다에 글 올려서 안하무인의 글을 올리라고 하시든가? 하나님이 그렇게 싸구려가 되신 것인가? 


그대를 비판하는 분들이 그대에게 나쁘게 되라고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본이라고 보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일요일휴업령 인정하냐 안 하냐로 문제삼는 그대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 지!'. 그대는 신앙 생활을 잘못했네. 그 동안의 모든 괴로웠던 일들이 바로 이런 시각에서 온 것 아닌가?  신앙이 뭔가? 


게시판의 글을 쓸 때, 네티즌들에게 호소할 때도, 연합회장님 봐 주세요라고 할 때도, 자기만족으로 하지 말고, 마치 어머니 같은 노인들께 추석상 차려드릴 때처럼 그렇게 말하고 그런 분위기가 감돌게 글을 써주게. 집안에 공경하는 어른이 있는 것처럼, 이 게시판에도 너무도 많네.


그대는 은근히 게시판에서 편을 가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분란을 부채질하는 에너지 역할을 한 적은 없는가? 그대가 쓴 글들과 말로 다른 사람들이 화합하고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 메이커가 된 일은 없는가? 


그대가 도매금으로 '민초스다' 욕한 그 동안의 행태를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일세. '민초스다'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네가 언제 한 번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민초들의 삶'에 대하여 고민 한 번 해본 적 있냐. 


혹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사과라는 설이 있는데, 하와가 먹었던 사과여서 그 사과를 손도 대지 않고 입에서 ㅅ자도 꺼내려 들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이런 생각까지 해보네. 왜 사과를 모르는가? 사과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고맙다고 하게. 그게 실수하는 아내와 자녀와 오순도순 사는 재미요 행복의 비결 아닌가?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원이 무언가? 부디 세상 살아갈 때, 아버지 어머니가 보여준 본 대로 살거라가 아닌가? 부모가 그리 모본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이 그대가 자주 입에 올리는 그리스도인이요, 사나이요, 그리스도인의 신앙 양심 아닌가? 그대가 '그리스도인의 신앙 양심'이란 단어를 올릴 때마다 마치 입에 모래를 가득 넣고 있는 힘을 다해 씹는 느낌인 사람들이 많을 거란 것 아시게. 그대도 인간이어서 생각으로 행동으로 죄를 지을 때가 있는데, 왜 왜 죄인으로서 '반성하는 신앙'을 살지 않는가? 대부분의 잘못 나가는 교주들의 행태가 그러한 줄은 알지만, 그대는 교주가 아니잖는가? 백성을 무시하는 왕도 아니고 그런 대통령도 아니잖는가? 유치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싶네. 그대가 '그리스도인의 신앙 양심'을 늘 카드로 꺼내니 나도 한 마디 하리다.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그대는 인간이라는 것을 한 시도 잊지 마시게."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 바로 '예(禮)'를 아는 것이네. '염치'와 '분수'를 말하네. 세천사의 기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것 아닌가? 그대도 알고 자주 이야기 하지 않는가? "피조물로서의 네 분수를 알라!"   


겸손하게 공부하고, 새벽기도와 한낮 컴퓨터 앞에 몇 시간 씩 앉아 있을 때, 손가락이 칼날처럼 춤을 추고 싶을 때에라도 '하나님이 조용히 말씀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한 시도 잊지 말게나. 그대를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쓰네. 영적인 어른이 되기를 바라네.


그대는 행복한가?



형제가 사단이 될 때 ......

2014.11.16 12:14

박진하조회 수:105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 16:23)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수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충격적인 말씀이다.

제자 베드로가 졸지에 사단이 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자를 사단이라고 하실까?....

온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께서 왜 베드로를 사단이라고 하셨을까?

베드로가 왜 졸지에 사단이 되었는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왜 “구주께서는 당신의 입술에서 떨어진 책망 중에

가장 가혹한 책망의 말씀을 하시게 되었”(투쟁, 312)을까?



"사단은 항상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자신을 개입시키려고 한다. …

베드로에 관계된 이 교훈은 주의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서신 65, 1894.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1-2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부활하시겠다는 것은 "예언"이었다.

그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원초적 복음에 담겨있는 말씀이며

구약 곳곳에 메시야가 당할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인류 구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되어야 할 예언인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이나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조건적 예언이다.

둘째, 절대적 예언이다.


조건적 예언의 경우는 니느웨 성에 대한 예언이다.

죄로 가득한 니느웨 성이 40일 후에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 성과 백성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욘 3:10)신 것이다.


절대적 예언의 경우는 범죄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약속하신 메시야에 대한 모든 말씀들을 위시하여

다니엘서 2장에 예언된 금, 은, 동, 철, 흙으로 이어지는 세계 역사와

다니엘과 계시록 곳곳에 예언된 예수 재림과 더불어 모든 종말적 사건들이다.


조건적 예언의 경우 그 당시 국가나 민족, 백성들이나 개인이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지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예언한 말씀은 취소되거나 감소되거나(형벌의 경우) 사라진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렘 26:3)


절대적 예언은 그 어떤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한

그대로 "반드시" 성취되고 이루어지고 응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여러 징조들도 모두 '절대적 예언'이다.


예수님이 인류의 구속을 위해 반드시 감당하셔야 할 십자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예언이었다.

그런데 사단이 베드로에게 들어 와 그 십자가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베드로 생각에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 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베드로 생각에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결단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사업에서 십자가를 보고자 하지 않았다.

베드로의 말이 주는 인상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

끼치기를 원하셨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그래서 구주께서는 당신의 입술에서 떨어진 책망 중에

가장 가혹한 책망의 말씀을 하시게 되었다. …
사단은 예수를 낙심하게 하여 그를 그 사명에서 돌아서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으며,

베드로는 그의 맹목적 사랑으로 유혹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의 장본인은 악의 임금이었다.

그 충동적 호소의 이면에는 그의 교사(敎唆)가 있었다. …

사단은 예수께서 베드로가 그의 눈을 돌려 보기를 원하신

십자가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의 영광에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사단은 베드로를 통하여 다시 예수에게 유혹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투쟁,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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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휴업령은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 중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가장 중대한 종말적 예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


일요일 휴업령은 예수님께서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라고 하시며

친히 강조하여 하신 절대적 예언이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에 예언된 가장 중대한 예언 중 하나이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의 모든 예언들이 바로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예언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만큼

일요일 휴업령이 성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막대하다.


마귀 사단이 선악의 대쟁투에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계 12:17) 섰을 때

“크게 분내어”(계 12:12) 저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최후의 카드로 내미는 것이

바로 “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마 24:15) 즉 일요일 휴업령인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끔찍한지는 다음의 예언들에서 알 수 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5-17)


매매를 금지시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종교의 피바람이 예언된 경악할만한 사건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예언의 성취를 시발로 하여 이 지구상에는

지구 역사상 가장 두렵고 놀라운 환난의 때가 도래한다는 사실이다.

이 환난의 때가 얼마나 실로 두려운지 다음의 성경절들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예수님께서 친히 강조하여 예언하신 말씀이며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 예언의 중심이며

역사의 마지막 때에 반드시 성취될 절대적 예언인 "일요일 휴업령"이

성경과 예언의 신을 통해 명백히 제시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남은 교회라는 재림교회 안에서 언제나 최고의 불신의 대상이 되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조롱 당하고 업신 여김을 받고

이솝 우화의 늑대 소년 이야기의 대상이 된 그 배경에는

과연 누가 도사리고 앉아 있는지를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듣게 되길 바란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역사의 마지막 때에 소위 남은 자손이라고 일컫는

이 백성들 중에 언제나, 여전히 일요일 휴업령은 화잇 시대에 그 당시 일어나려 했던

사회적 현상에 대한 화잇의 대응이었을 뿐이며, 일요일 휴업령은 19세기 유물이며

지금과 같은 민주화된 백주대낮에 그와 같은 반민주적 폭거와 같은 일을

결단코 일어 날 수 없다며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는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저들 배후에서 저들을 충동질하며 교사(敎唆)한 자는 누구이겠는가?


저들이 바로 예수님 앞에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며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마 16:23) 곧 사단이 아니던가?

이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마 16:23) 자들이 아니고 그 누구던가?


하나님의 말씀에 명명백백히 기록된 예언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저들이 바로 예수님 앞에 사단이 아니고 그 누구란 말인가?


사단 마귀는 우리를 속이는 자이며 거짓말장이의 아비이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마귀는 자신이 남은 자손들을 멸절시키기 위해 최후의 비장한 카드로 준비한

이 계획이 남은 자손들에게 바르게 이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다.

거짓과 속임수, 궤휼로 사람들을 속이고 또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은 상징이나 묵시로 분별하기 어려운 예언이 아니다.

이미 남은 교회의 선지자의 계시를 통해 명확하게 씌여진 것이다.


“시험은 분명히 올 것이다.

나는 36년 전에 오늘날(1882년의 기록) 일어나고 있는 일이 장차 일어날 것과,

곧 법왕권 제도의 준수가 일요일 휴업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강요되고,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의 날이 유린당할 것을 보았다"

(주:이 글은 1882년에 기록했음) (2보감, 31)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거짓 종교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일상적으로 일하는 날이요, 그 어떤 신성성도 갖지 못한 주일 중 첫째 날이

바벨론의 신상처럼 세움을 입을 것이다.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은 이 거짓 안식일을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

이 날을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법령이 온 세상에 발해질 것이다”(사건, 134-135)


이렇게 초등학생만 해도 읽고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요일 휴업령에 대한 예언을

결코 일어 날 수 없는 일이며 부정하는 저들은 과연 예수님 앞에 누구인가???

명백한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폐하려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 엘렌 지 화잇을 거짓 선지자로 만들며

그녀를 통해 주신 하늘의 계시인 예언의 신을 거짓 소설로 만드는 자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 곧 반드시 이루어질 예언을 '결코 일어 날 수 없다'고 하는 자들은

예수님 앞에 "사단"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 사단이라고 책망 받을 때가 기회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예수님께 '사단'이라고 책망 받고 돌이킨 베드로는 참으로 복있는 자가 아니었던가?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7)


= 오늘 새벽에 눈을 뜨는 동시에 위 말씀이 나의 뇌리에 박히듯 지나가 정리했습니다 =


예수님이미지4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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