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교수의 북-중 교류 50년 / (25) 연재를 마치며
사실을 내밀어도믿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
설마 마오쩌둥, 덩샤오핑이
가짜를 진짜로 알고 환대했을까
구구한 말 하기보다 사진 몇장들로 대신한다
베이징 역에 도착한 김일성과 그를 마중나온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그들 뒤로는 당시 중공 중앙 총서기 장쩌민과 국무원 총리 리펑의 모습이 보인다. 1989년 11월. |
20살 때 중공의 칭화대학 지부 서기를 지낸 펑중윈(馮仲雲)은 동북항일연군과 88여단 시절 김일성의 맹우였다. 신중국 수립 뒤 하얼빈 공업대학 총장과 베이징 도서관 관장을 지냈다. 수리부(水理部) 부부장 시절에는 평양을 방문해 댐 건설에도 많은 기여를 했지만 문혁 시절 사망했다. 1992년 4월 김일성은 펑중윈의 부인 쉐원(薛雯)과 자녀들을 평양에 초청해 기념사진을 남겼다. |
중국을 처음 방문한 조선노동당 조직부장 김정일을 회담장으로 안내하는 덩샤오핑. 1983년 5월. |
1990년 3월, 평양을 방문한 당시 중공 중앙 총서기 장쩌민. 김일성과 함께 걸으며 군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는 모습이다. |
북-중 밀월시절, 김일성의 안내로 ‘조선공농업전람장’을 참관하는 중국 국가주석 류사오치 일행. 왼쪽 첫째가 예젠잉. 1963년 9월, 평양. |
1993년 7월 당과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 일행이 김일성 주석, 북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후진타오가 중공 중앙 상무위원 겸 서기처 서기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
중국을 방문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장 박금철의 손을 잡고 접견실로 향하는 마오쩌둥. 1961년 6월21일, 후베이성 우한. |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황지광(黃繼光)은 열사로 추앙받았다. 황지광의 모친은 동네 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면서 원수 주더(朱德)와 춤을 추고 싶어했다. 중난하이의 무도장에서 황지광 모친의 소원을 들어주는 주더. 연도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