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뼈"가 튀어 나올 때

by 아기자기 posted Nov 30, 2014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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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뼈

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 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 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 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가

각자 일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주) <철학적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nann Wittgenstein 1889~1951)은


"언어는 삶의 문맥에 따라 다양하다“고 했다.


강의실의 언어, 종교의 언어, 과학의 언어, 교회의 언어, 시장의 언어, 이 게시판의 언어... 

이 모두가 같은 말이라도 그 삶의 문맥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삶의 자리와 환경을 고려해서 이해해야 한다.


재래시장 국밥집의 욕쟁이 할머니의 언어와 교회에서의 언어를 혼동하면 안 되고,

종교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를 혼동하면 안 된다.


이 게시판에도 나름의 언어의 용례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 언어는 국밥집 언어로 이해해야지

그것을 다른 언어로 간주해서 법정으로 끌고 가면 한편의 코메디가 될 것이다.


민초 미장원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재춘이행님의 투박한 언어,

시골 촌놈님의 음엉한 언어,

삼천포 할아범의 삼천포 언어,

미장원 김씨 아줌마의 다감한 언어를 모르면

희대의 코메디언이 탄생한다.


이 언어사용의 규칙이 무너지면

마치 상처를 뚫고 튀어 나온 뼈처럼 ‘소리의 뼈‘가 드러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자신들이 사용해 온 언어가

얼마나 맹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는지 자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일상에서는 뼈의 존재를 모르다가

몸살이 나서 온 몸의 뼈가 쑤시는 아픔이 오면

그제야 말을 멈추고 자신의 뼈의 존재를 인식한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의 소리의 뼈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김교수님과 같이 침묵의 강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말할 수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한다.“ -비트겐슈타인

그것은 말로는 깨달을 수없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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