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여자와 동시에 연애하던 시절-앵콜송

by fallbaram posted Dec 11,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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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츄이 형이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하니 또 시촌이 그와 동행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는

매우 꿀꿀한 날이다. 그래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날이기도 하다. 앵콜송을 부르는 이유이다.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던 여자분들이

연애 이야기 그것도 여섯과 동시에 라고 하니까 얼굴만 들이미는정도가

아니고  아예 간단한 평가를 곁들이며 무슨 시사회 정도의 수준으로

격상시키더니 결국 앵콜! 이라고 소리친다.


어린시절의 어떤 가정적 상처가 나에게 나타난 부분이 또 하나 있다면 이성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부분에서 내가 취한 행동들이다.

대학교 삼학년을 완전히 마치고 군대를 가기까지 어떤 여자하고도

단독으로 데이트를 한 일이 없었던 것은 일종의 여성 기피 증세라고 할까.

처음엔 나도 잘 몰랐고 친구들도 잘 몰랐던 사실인데  그 까닭은 내가 서 있는 곳에는 거의 항상

여학생들이 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체 행동에서는 별로 문제처럼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체로 어울릴 때는 아무런 내면의 저항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쩌다 단독으로 만나는

형편이 되면 그 상황에서 당장에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발동하고 상대가 서운할 정도로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나답지 않은 일이 여러번 벌어진 기억이 있다.


어떤 여학생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해를 휴학하는 사태까지 가게되고.

그당시 초미니로 다리를 꼬면서 바짝 붙어서 따라다니던 긴머리와 흑진주의 눈을 한

그 여학생 나중에 어느 대학의 영문학 교수가 된 그녀에게도 나는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던 내가 군대를 가서 연애편지 대필이라는 생소한 사업에 몰두하게 되면서

눈으로 보지 않고도 달랑 편지 한장만을 놓고  온갖 여성스런 분위기에 젖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나는 경험하게 된다.


문학의 여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독일이 낳은 여류작가 루 살로메를 사이에 두고

나이라는 시간차도 무색하게 철학의 대부 니이체와 문학의 대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리고

심리학의 대부 프로이트가 세상이 떠들석 하게 노골적으로 벌렸던 삼파전의 뜨거운 사랑 싸움이

오직 미모만이 아닌 여성의 문학성이라는 분야에서 비롯되었던 일을 생각하고 지금에사 그 기이한

내 속의 변화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다.


말이 길어졌는데 그 여섯이라는 연애편지의 대상중에 군계일학이라고 할만한 걸출한 글 솜씨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랑 연애편지를 주고 받는 당사자는 좀 투박하고 거친 성격의 남성이었고

그 여자의 편지에 묻어나는 거의 뇌쇄적인 수준의 문학적인 내용을 이해하기엔 어림도 없는 그런 

상대였다.

그래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두사람의 관계에 내가 끼어 들었고 별 생각없이 그녀의 글에 빠져서

답장을 하다보니 남자보다 휠씬 우월한 여자의 육감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던 나의 그 대필이라는

어슬픈 대역이 탄로가 나는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현명했다.

한두번의 야릿한 질문을 쏘아댔지만 이내 실제의 인물뒤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글 솜씨의

남자가 있다는 것을 재빨리 눈치를 채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나를 상대로  급선회하는 분위기를

나도 느끼게 된다. 국문학을 전공하다가 휴학하면서  전라도 임실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그녀의

매력은 문학성의 글 내용만이 아니다. 자수를 놓은듯이 한자 한자 또박또박 꽃편지 위에다

그림을 새긴듯 이쁜 글씨체로 쓴  편지가 오면 나는 그 반듯한 글씨속에 묻어있는 여자의 향기와

마음을 읽어면서 서로의 가면속에서 비밀스럽게  무르익는 무화가 열매들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육개월 이상의 세월이 흐르고 나는 뜻하지 않게 보안대 파견으로 부대를 떠나게 되면서

아쉬운 막을 내렸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문학세계 그리고 시인으로 살다가 입대한 또 다른 한 훈련병이

자신의 애인이랑 주고 받는 편지를 읽어 보면서 오직 예언의 신 그리고 기도력 수준의 젊잖고

종교적인 표현에만 국한되어 살던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 올려다 보기조차 힘이든 별처럼 아득한 문학의

세상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느끼며 살아온 지금의 내가 쓰는 이 정도의 글은 그 두 사람에게

맞았던 문학의 따발총에서 떨어진 파편의 일부라고나 할까.


얼굴도 모르고 주고 받던 짜릿하고 달콤했던 그 짦은 순간의 추억 하나가 황혼의 흐릿한 무대위에서

또 한번 추억의 앵콜송으로 오늘은 낭송이 되고. 있구나.


그녀는 지금?


옛날로 이렇게 생생하게 돌아가는것은 별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징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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