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홀로 주무시기 외로우시죠? (안식일 교인들에게 묻는다)

by 아기자기 posted Dec 16, 2014 Likes 1 Replies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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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억수로 비가 많이 쏟아지는 어느 날 

해질녘 아리따운 과부가 혼자 사는 집에 한 과객이 문을 두드렸다. 

근처에 다른 집도 없고 날씨도 거칠고 어두워서 거절을 못하고 과부는 

이 과객이 집에 묵고 가기를 허락했다. 


건넛방에 짐을 푼 과객,

깊은 산중의 작은 집에 마루 하나 건너 있는 방에 

아리따운 젊은 과부가 홀로 있음을 알기에 

괜한 상상과 쓸데없는 기대감으로 잠 못 들고 있는데,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그 젊은 과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저, 홀로 주무시기 외로우시죠?


아니 이럴 수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어쩐지 처음부터 날 쳐다보는 눈빛이...


“흐흠,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아, 네~ 네!”


조심스레 방문이 열리고 젊고 아리따운 과부가 수즙은 듯 살며시 들어왔다.


“잘 됐네요. 마침...


지나가는 노인 분이 묵어가시길 청하니

두 분이 말동무나 하시며 주무세요.

할아버지! 이리 들어오세요!”


“......”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다른 사람도 생각하는 줄 착각한다.

홀아비 생각에 과부 생각도 같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런 것을 사심자시(師心自是)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스승師, 마음心, 스스로自, 옳을是,

즉 자기 마음을 스스로 옳은 스승 삼는 것으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뿐 아니라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여 

타 종교인들이나 타 교파 사람들을 비하하고 배척하며 

심지어 탄압하고 언어와 행동의 폭력을 가한다. 

모든 종교에는 이런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경전(성서)해석에서도 마찬가지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신이 믿는 경전(성경,교리)만이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것까지는 뭐라 할 수 없지만, 

자신의 해석을 절대화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고 

남에게 강요하고 남을 판단하며 심지어 정죄하고 저주하는 우매한 이들이 있다. 

이들 문자주의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보고자하는 것만을 보고 

듣고자하는 것만 듣는 사유의 유아이며 우물 안의 개구리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를 ‘Confirmation bias 확증 편향‘이라 한다. 

이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하며, 

“자신의 가치관, 기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확증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편향된 현실인식 방법이다.” 

즉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들으며,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논리와 고정관념으로 보고 왜곡 해석하는 것이다.


김일성 독재 체제하에서 태어나 그들로부터만 교육받고 자라난 이들은 

철저히 편향된 정보만 습득해서 그들 자신도 모르게 일방적이고 왜곡된 사상으로 세뇌되어 

자신들은 김일성 독재체제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체제이고 

김일성 일가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임을 한 점 의심 없이 믿고 

체제 반대의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적대시하고 탄압한다. 


이는 북한 인민들만의 비극이 아니고 남한의 국민들도 언론탄압의 독재 체제하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믿고 인정하는 정보(성서와 책들)만 보고 

다른 사상이나 정보를 무시하고 눈과 귀를 막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일리이며, 편향된 오류일 뿐이다. 


우리들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과 화잇부인의 글만 읽으라는 말을 아직도 듣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물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성서과 자신들의 교단의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을 애써서 감추고 외면한다고 자기 것들이 진리가 되어 주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무지의 감옥에 가두는 우매한 짓이다. 

김일성 독재 집단에서 성공 출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김일성 체제에 오류가 없고 제일이라고 충성 경쟁을 하듯이 하는 믿음은 

믿음 아니라 고집이고 편향된 자기 신념의 억지일 뿐이다.


종종 여기에서도 화잇 부인을 선지자로 인정하느냐 아니냐로 사상 검증을 강요하는 이들이 있다. 

참 무례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단독자인 타인에게 신념을 간증하게하거나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이며, 

그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기에 무지한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두가 하나님의 품성과 그 섭리를 알아가는 선지자이다. 

그렇다. 화잇이 선지자이면 루터도 칼뱅도 선지자이며 바르트도 몰트만도 틸리히도 선지자이다. 

내가 선지자이면 당신도 선지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장소마다 당신의 모든 백성을 성령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화잇 부인만 성령을 받고 당신은 성령을 안 받았나? 

화잇 부인의 글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쓰여진 글이면 

설교자들의 설교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는 말이고, 

우리의 글들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쓰는 것 아닌가? 

성령에도 급이 있고 차별이 있는가?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타 종교나 교단을 향해 적그리스도니 바벨론이니 정죄와 저주를 남발해 놓고 

어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를 이단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주장하는가? 

이것은 정말 어린애의 논리에도 맞지 않는,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아닌가? 


이런 모순된 행위를 심리학 용어로 인지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라 한다. 

“태도와 태도, 또는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이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모순을 줄이려고 사람들은 태도나 행동을 바꾸려 시도하는데 

태도는 다른 사람이 모르지만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므로, 

행동에 맞게 태도를 바꾸게(변명) 된다.”


그래서 종종 변명이 실수를 낳고 실수가 거짓이 된다. 


이런 인지 부조화로 인해 발생한 자신의 모순을 알게 되어도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의 근간이 흔들릴까봐 애써 무시하고 

오히려 상대를 공격함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확증 편향’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진리 추구가 최선이 아니라 자기 신념(교리)의 방어가 최선이 되어버린다.


나 자신에게 먼저 하는 말이지만, 

정치나 종교의 장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을 통해서도 배워야한다. 

다른 종교, 교단, 사상 및 모든 학문을 다 전문가 수준으로 알 수는 없지만 

능력껏 가능한 한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요즘 말로는 “통섭 Consilience”이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학문을 멀리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무지의 소치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학문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하나님을 증거 하기 때문이다.

멀리해야할 것은 세상 학문이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관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남을 먼저 대접하고, 

상대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은 나도 하지 말아야한다. 

상대적으로 아무리 작은 행위라도 애써 변명하지 말고!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가장 신사숙녀적인 사람이고, 진보적인 사람이며, 멋쟁이 아니겠는가?


사심자시(師心自是)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인지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의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자!



요즘 며칠 동안의 게시판을 보고 느낀 점을 적어보았다.


잠 못 드는 밤

창밖에 비는 내리고...


“저, 홀로 주무시기 외로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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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교인들에게 묻는다)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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