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발부된 영장

by fallbaram. posted Dec 17,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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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추운 기운이 감도는 삼월의 오후 늦은 시각

삼삼 오오 젊은이들이 울산역으로 모여들기 시작 하고 

소위 장정이라고 호칭하는 훈련병이 되기전에 주어지는 

호칭을 부르는 군바리 몇명이 역 앞으로 나타난다.


당일에 거기까지 오는 아이들

전날에 와서 인근 여관에 자면서 마지막

파티 (?)를 치루고는 여직 부시시한 얼굴로 나타나는 아이들

열명이 넘게 보이는 온가족이 따라와 잡은 손 놓지 못하는 모정에

붙들린 아이들

나라 지키려 가는

사나이들의 길목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형형색색의 해프닝이

무르익어 갈 즈음에

"장병"

"장병님들" 하면서 일등병 두명의 소리가 crescendo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바로 코 앞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거들렁 거리는 장병하나를

불러서 군화로 죠인트를 깠다.

그대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군중은 순식간에 철이들고

일사분란하게 줄세우기가 가능해진다.


서울대학을 다니던 놈도

시골에서 온 촌놈도 (잠수하고 혼동하지 마셈)

역전에서 뼈가 굵은 양아치도

양복을 입은 놈도

최신 유행의 오버를 걸친 놈도


모두가 그 일등병의 구령에 하나가 되는 신기하고 신기하고

또 신기한 일이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난생 처음 보는 군중의 질서라는것.


내가 입은 케임부릿지 기성복 하늘색 양복 (딱 한벌 있었던 내 옷이라서 기억에 남은-사방 호치키스로 찍은)

속에는 한국 국립 의료원에서 발부한

우측 청각 불청 (deaf) 이라고 쓰고 의사의 싸인이 찍힌 진단서가 한장 있었다.

일단 입소한 후에 거기서 재 검사를 실시 할때에 제시하면 그것 하나로

나는 모두가 부러워 할 "고향 앞으로" 의 구령이 준비된 대단한 조서였다.

적어도 내겐 아닥사스다의 조서 보담 더큰.


그렇게 의도적으로 야간에 출발하는 기찻간에서

쥐잡기 원산폭격 온갖 운동들 해가면서 기차는 논산으로 갔고

새벽에 논산에 풀어놓고는 눞혀놓고

우로 돌아

좌로 돌아로 돌리면서 방향을 상실하게 맨들고

내무반에 집어 넣고는 거기선 다시

삼선 정렬 오선 정렬 하면서 음악공부도 시킨다


아마도 그 당시의 내가 품었던 진실이란

어떤식으로 던지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거나 같아 지기 위해서

뛰고 구르고 엎드리고 온갖 수단 가리지 않고 하는것이며

또 그렇게 되는것을 목도하게 된다.


토끼잠을 재운후에 소위 짠밥이라는 노린내 물씬나는 밥을 먹이고

빤쓰 바람에 연병장에 집합을 시킨다.


의무대 주최로 신체검사가 시작이 된다.

나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빤쓰속에 꾸겨넣은 진단서를 꺼낸다.


회오리 바람처럼 순간에 머리를 스친 몇개의 생각은 이러했다


"비록 힘이들고 강제라는 입장에서 삼년을 썩는다는것이

얼마나 아까운 세월이겠느냐만 남자는 이런 삶-구령에 죽고 사는 삶이

필요해"


"귀가 잘 들린다고 거짓말을 해야겠지만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의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것이냐?"


"지금 다시 돌아가면 등록금도 없고 식비도 없고 잡비도 없는데 여긴

먹여주고 입혀주고 용돈도 줄 터이니 오히려 여기가 더..."


마지막 생각이 미처 머릿속에서 떠나가기도 전에

그 진단서는 내 손에서 갈갈이 찢어지고 이삼미터쯤 아래에 있는 똥통으로 나비처럼

춤추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삼년의 군 생활이 얼마나 흐뭇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한참을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장병장, 빨리 전역 신고하는데로 오라니까" 라는 전갈이 들린다.

아쉬운 전역이었다.


남들은 손가락 짤라서라도 가고싶지 않은 군대

장애인도 나라를 위해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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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않는 나의 군번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남자들이여 저 노래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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