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 님 - "갈라디아서에 풍덩" - 빠져봅시다! (2/3)

by 계명을 posted Dec 17, 2014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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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많은 경우 성경에서는 가이드라인 혹은 힌트만 줄 뿐이지,

구체적인 것은 독자에게 맡긴다.

 

이 갈라디아에서도 자유를 주시는데 그 자유가

어떻게 나에게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또한 자유를 얻은 후 육체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살라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으로 사는 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은 독자가 스스로 찾아서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경험을 해야 감동이 되고 자기 것이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체험과 감동의 색감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경우 힌트만 혹은 가이드라인만 주고

나머지는 독자가 경험하도록 공백을 허용하고 있다고 본다.

 

부흥회를 했더니 “반응 너무 좋던데요”

 

단지 정보를 제공받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이것도 중요하지만)

독자 스스로가 행간의 공백에서 체험하고, 느끼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단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어떠함과

마주쳐야 되는 문제인 것이다.

 

다시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5:13)

 

단지 “자유”라는 선물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러기 위해서 선한 행위하며 살아야 겠다는

우리 결심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수없이 해보지 않았던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쉽게 아주 쉽게 풀어보자.

우리 잘 아는 탕자의 비유다..

 

산전수전 다 겪은 탕자가

결국 돼지 우리 안의 생활까지 이르게 된다.

 

생각한다.

 

배 고프다.

냄새난다.

도저히 더 있을 수 없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담보로 막대한 재산을 취득했다.

자식으로써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나는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불효자다! 죄인이다!

여기서 나의 생을 끝내자!

 

그런데 아버지는 늘 종이 필요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 종으로 가면 아버지는 받아 주시지 않을까?

그때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집에 거의 왔을 때,

아직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달려 나와 아들을 얼싸 안는다.

그리고 반지를 끼워주고,

좋은 옷을 입혀준다.

 

이것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 탕자가 처음부터 반지를 얻으려고 좋은 옷을

얻으려고 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것을 얻었다고 기뻐하지 않았다.

 

그럼 탕자는 자유를 얻어서 기뻤는가?

아니다.

 

탕자는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하였다는 것에 기뻤다.

불효 막심한 자기를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품성과 마주치면서

그는 기뻤다.

 

나 같은 자식을 이렇게 용서 하시다니!

반지를 얻어서, 좋은 옷을 입혀주어서,

아니다.

아버지의 어떠함을 알아서 기뻤다.

 

용서받은 아들은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무엇을 하라 하든지

그의 목숨을 다해 아버지를 섬길 마음이 생겼다.

그는 집안의 종들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일할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법이 없어져서 자유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에 자유인이 된 것이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그 율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율법에 대해서 자유인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인”이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나를 용서한 아버지의

성품에 감동이 되어 그 분의 뜻이라면 목숨까지

바칠 동기기 생겼으며 이웃을 위해

종 노룻할 동기기 생긴 것이다.

 

내가 비록 악한 마음이 생겨 다시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더라도 아버지는 나를 다시 용서 하실 거라는

 

아버지의 성품에 대한 확신이

 

나를 자유인으로 만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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