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서 실명제 시행한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했을 때
이 누리가 열렸다.
거기서 비주류였던 누리꾼
다는 아니어도 상당수가
필명이었다.
졸지에 제도적으로 "따" 당하고
졸지에 졸이 되어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해
이 누리가 열렸다.
꼭 그렇게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 비주류 졸들이
여기서 주류가 되었다.
비주류가 주류 되고
졸이 차, 포, 말이 되어
주류 됨의 포도주에 취해
주류의 주제가 부르며
떠들썩 흥겨워할 때
이곳의 또 다른 비주류는
외로이 이런저런 목소리 내지르며
외각으로 밀렸다.
그들도 같은 옆집에서
대부분 또 다른 이유로
"따" 당한 사람들.
여기서도 그렇게 밀리는 것은
생각과 감성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요
그들도 각오한 일이리라.
그러나
그들을 이름 지어 부르며
경멸하고 학대하는 행위는
아무리 취중에 저지르는 무의식적 만행이라 해도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하는가.
1844년 10월 22일
그 반석에서 기어 내려와 풀죽어 있는 우리 조상에게
어떤 이들은 밤새 천국 잘 다녀왔느냐고 조롱했다.
이곳 누리꾼 중
저렇게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린(릴) 형제자매에게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젠가
한국에서 휴거 소동이 벌어졌을 때
라시에라 기독교 역사학 교수가
내게 전화해 물었다.
나는 그때 만학 끝머리에서 헤매닥질치며
아직 직장이 없을 때였다.
"네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현상
걱정된다.
똑같은 건 아니었어도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 재림교인들
어떻게 하면 손을 내밀어
곧 실망할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뭐 좋은 의견 없느냐."
전화선 이쪽에서 수화기 들고 있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제 다른 곳으로 전근해 가고 없는 그의 전화선 저쪽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를 울린다.
주류에서 졸로 밀려나
이제 이 누리의 주류가 된 그대들이여
이곳의 비주류
졸이 되어 "따" 당하는 저들에게
우리
따뜻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