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대학 캠퍼스의 마지막 한해-아찔한 추억

by fallbaram posted Dec 20, 2014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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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삼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가 사학년으로 돌아오니
외상으로 등록하는것도 어려웠지만 어려운것이 하나 생겼다.
등록실 학적부에서 나를 보자고 한다.
생각 없이 들어섰는데 나를 만나자고 그분의 얼굴은 사뭇 굳어있다.
삼년간의 성적표라고 하면서 앞으로 밀더니 자기들이 계산하고
계산해도 삼년간의 평점이 1.65 밖에 되지 않으며 졸업이 가능한 평점
2.5 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말을 덧붙인다.
한참을 서로가 말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어떻하면 좋으냐고.
정답은 앞으로 남은 일년간 학기에서 모든 과목의 성적을 A 맞으면
평점이 2.57 정도가 되니 그리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냥 학교만 다니면 졸업을 있을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산산조각이
나고 한번도 올라 보지 못한 험산준령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막막한 기분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살얼음을 걷는 빙판위의 학창시절이 시작되고 평생처음 공부라는 명목으로
오후부터 저녁까지 꼼짝없이 책을 읽는 정말 나답지 않는 새로운 모습으로 일년을
보내게 된다.
 
전공과목에서 성적은 빛나게 발전하더니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의아해 하고 나도 놀라는 일이 일어났지만 위기도 찾아 왔다.
교직을 위한 교육과목에서 생긴 일이다. 내가 숙제 ( 논문) 작성했는데
친구가 보자고 해서 빌려 주었더니 아이가 그대로 베껴서 제출한 것이다.
교수님 생각에 하나는 오리지날이고 하나는 카피가 틀림 없는데 평소에 공부를 하지 않는
내것이 카피라고 짐작이 되어 C 것이다. ! 모든것이 끝났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분노가 치밀었다. 성적표를 들고 내가 이런 성적을 받아야 하는지를 속시원히 알고나 교실을 나가고
싶다고 언성을 높혔다. 그가 자기 사무실로 와서 이야기 하자고 해서 그의 사무실에서 나는 내가 제출한
소논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그에게 설명했고 그가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게 최고의 점수를 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는 일년간 전과목 A 학점이라는 생애 최고의 훈장을
달게 된다.
 
이후로 부터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physical 하다고 보지 않고 academical 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랑처럼 들릴 있겠지만 나중에 한참을 지나서 생각해 보니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오른쪽 손바닥에서
일어난 손오공의 알량한 줄넘기였다는 사실이다. 이후로 나는 싸움에서 자신감이 충천하던 방향이
공부에서도 자신감이 충천한 것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때의 꿈은 이런것이었다.
이미 결혼을 약속하고 미국에 가서 영주권을 받으면 다시 나와서 나랑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한 애인이
나타나면 미국에 가서 의대를 지원하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꿈을 몰랐던 지금의 아내가 서로간 한번씩 변심의 아픔을 지나서 만난것은 사년이 지난
이후이고 나는 동생을 공부시켜야 하는 짐과 부모님 그리고 처갓집 부모님까지 어느정도 도와 드려야
의무감에서 꿈을 접게 된다.
 
누가 나에게 지금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말할 있다.
든든한 하나님이 계시고 살가운 가족이 있고 민초의 따스한 님들이 있어서
나는 지금 정녕 행복하다고.
 
생각 하나만 바르게 해도 출생이 결단코 헛되지 않을 있는 세상에
당신과 나는 태어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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