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에 만 서른이 넘어면 징병기피로 븥잡히더라도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때인데 계룡산 산골 깊이 숨어서 성명철학을
전수 받던 한 사람이 스물 여덟에 잡혀와서 나와 훈련소 이십오연대 12 중대의
동기생이 된다.
비쩍 말라 보이는 체구에 얼굴이 넓적하면서 또 길쭉해서 꽤나 초췌하게 보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운명철학을 했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군 상사들에게 불려 다녔고
그러는 사이에 훈련도 자주 빠지는 혜택도 누리며 지내는 그는 나름 잘나가는 동기생이었다.
생전에 급체라는것을 잘 하지 않던 내가 그날은 급체를 해서 배가 쥐어짜도록 아팠던 날이다.
누군가 내게 그 운명철학을 하는 자가 지압도 잘 하니까 그에게 가서 지압을 부탁하라고 해서
점호가 끝이나고 소등이 이루어 진 다음에 어둠속에서 그를 찾아갔다.
막 잠이들려고 하는데 찾아온 동기를 어둠속에서 누워 바라보더니 간단하게 지압을 했는데
급체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무엇인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훈련병 중에서 내 얼굴이 가장 인상이 깊어서 눈에 밟히는 사람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찾아 왔으니 내일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서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내 등뒤에서 그가 한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잘생겨서 인상이 깊은것이 아니고 그가 본 나의 인상은 눈과 입이 비뚤어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삐딱하고 또 말도 삐딱하게 할 수 있어
보이는 그런 인상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나를 정확하게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와 잠을 자고 그 다음날
저녁에 이름 ( 한문으로) 과 생년월일을 적은 쪽지를 가지고 그를 찾았다.
그가 쪽지를 받아들고는 한참을 손가락으로 세고 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삼형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두형제만 있군요"
" 부모님이 두분 다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네요"
" 장형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고:"
" 역마끼가 상당히 많이 비칩니다"
"해외에서 살게 됩니다"
"해외에서 살게 됩니다"
" 유산은 한푼도 받지 못하나 부모님이 가진 재능은 백프로 이상을 받아서 태어났군요"
그리고 나서 한참을 망설이더니 " 앞으로 서른 다섯 이후의 운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섬뜩했다, 서른 다섯에 끝나는 나의 운명이.
길도자와 경사경이 나의 성공과 미래를 막고 있으니 개명을 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 무슨 이름으로 할까요" 물었더니 성현으로 고치고 그 고친 이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오천번
이상을 불러준 다음에 내 운명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는 그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결혼을 하고 이민을 와서 시민권을 받은후에 부모님을 초청했더니 우리집으로 오신
어머님이 돈 몇백불을 내어 놓으면서 그동안 땅판돈은 동생이 다 갖다 쓰고 남은것이
이거라고 하신다. 그 돈을 그냥 가지고 계시라고 말하는 사이에 삼십오세 이상의 운명이
잡히지 않는다는 마지막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앞으로 2 년이 채 남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드렸고
아내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오천번을 내 아내가 나를 성현이라 부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가 또 그일도 망각한 채 서른 다섯의 나이를 들어선 어느 순간에 나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고
재츄이 행님 생각 마이했다.
제츄이 행님도 이름 바꾸면 어떨지
내가 끝내 쓰지 못한 이름 유 성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