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대와 차 두대 사이의 거리에서 일어나는 (간증 3)

by fallbaram posted Dec 24, 2014 Likes 0 Replies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나는 늘상 운전을 하면서 운전중에 여러가지 상황에서 제각기
반응하는 군상들의 심리를 재미있게 관찰하는 작은 취미가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들어오지 말아야 하는 좁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차의 운전석에는

대부분 여성분들이 많이 앉아 있고

비집고 들어갸야할 중요한 순간에 절대로 길을 열어주지 않는 차량의

운전석에도 여성분들이 많이 앉아 있는 참 기이한 현상들. (접장님이

여성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짤라버릴 만한 코멘트^^)


한번씩 투덜거리면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성분이

하는 말,

"당신의 아내도 자주 그리하니 너무 열받지 말라" 고.


갓길에서 들어 오려고 하는 차량들에게 나는 되도록이면 양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끼어 들어와서 표시하는 감사의 표시가 옛날에는

거의 백프로 였지만 지금은 오십프로도 잘 되지 않는것 같다.


바로 코 앞 (차량 한대) 에서 양보하면 감사의 표시가 대부분 분명하게

전달되어 오지만 차 두대 정도의 거리에서 들어오기를 기다려 주면

거의 (구십구프로) 그런 표시 하지 않는다. 아마도 스스로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성경을 읽어보면 갓길에서 들어 와야 할 차량에게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양보 (?) 는

에덴동산에서 부터 줄줄이 시작된

사건들이다. 꼭 십자가 사건 앞에서만 눈물 흘리지 않아도 구약의 모든 사건에서

우리는 눈시울이 뜨겁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어야 한다.


평평하게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차량두대 사이에서 자신이 스스로 충분히

끼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되고 만다.


개인의 삶속에서도 같은 현상이 언제나 일어난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 (스스로 끼어들 수 있는 능력) 가 작살이 나면서

그는 그의 출생에서 부터 하나님의 철저한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의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요즘에 이리도 줄기차게 써 올리는 내 글의 중심은 한 개인의 삶속에서

철저히 개입하신 그분의 손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삼십오세 까지는 나는 내 힘으로만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야생마였다.

그 이후로 나는 당신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할땐

바로 그것을 회개하는 기도가 내 일상의 기도가 된다.


민초의 사람들아,

연말에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의 생애속에서


때론 손잡고

때론 뒤에서 밀어주고

그러다 업어주시기도 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지금껏 여기까지 데불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자


우리의 사랑

우리의 주님


예수님을 생각하자


그분이 말구유에 태어났다고?

천만에

천만에

천만에


내구유 (나의 삶-각자의 삶)에 태어나신 분이시다.

오늘은 당신이 동방박사다.


그래서 더 특별한 이날이 아닐까.


Merry X-mas to you all!





Articles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