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humanity ( 2 ) -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by 잠 수 posted Jan 04, 2015 Like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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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humanity ( 2 ) -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


마 8 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사람 냄새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한센씨 병 환자를 고치신 이적 사건속에서

우리 예수님의 사람 냄새를 느껴 보려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소개하면서 이 사건을 첫 번째 이적으로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사람의 한센씨 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는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시가 좋아서

한 하운 님의 시를 처음 접하였을 때

많이 읽고 또 읽고 그 당시 눈물도 많이 흘린 시가 바로 아래의 시입니다.


이 병에 걸려 시인으로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간 시인 한 하운

(韓 何雲, 본명 한 태영, 1919~1975)


이 분의 시를 통하여 마태복음 8 장의 주인공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파랑새 / 한 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늴리리


자화상 / 한 하운


한 번도 웃어 본일이 없다

한 번도 울어 본일이 없다


웃음도 울음도 아닌 슬픔

그러한 슬픔에 굳어 버린 나의 얼굴


도대체 웃음이란 얼마나

가볍게 스쳐가는 시장끼냐


도대체 울음이란 얼마나

짓궂게 왔다가는 포만증이냐


한 때 나의 푸른 이마 밑

검은 눈썹 언저리에 배워 본 덧없음을 이어


오늘 꼭 가야 할 아무데도 없는 낯선 이 길 머리에

찔름 찔름 다섯 자보다 좀 더 큰 키로 는 섰다


어쩌면 나의 키가 끄는 나의 그림자는

이렇게도 우득히 온 땅을 덮는것이냐


지나는 거리마다 쇼우 윈도우 유리창마다

얼른 얼른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전라도 길 -- 소록도(小鹿島)로 가는 길 / 한 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나 / 한 하운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잘못 돋아난

버섯이올시다. 버섯이올시다.


다만

버섯처럼 어쩔 수 없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목숨이올시다.


억겁을 두구 나눠도 나눠도

그래도 많이 남을

벌이올시다. 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 한 하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


이 시에 나타난 한 하운 님과 마태복음 8 장에 등장하는 환자와는

같은 병으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이 환자의 삶 속에는 세 가지의 고통이 있습니다.


(1)  자신을 보며 날마다 느끼는 절망입니다.


이 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무서운 병입니다.

치료약이 발달한 현대에 생각만 해도 끔찍한 병인데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하운 님의 시를 통해서 그 분의 절망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불치의 병에 걸린 이 사람의 절망감은 어떠할까요 ?


(2)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없는

혼자만이 살아야 하는 소외와 외로움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는 혼자 살아야 합니다.

가족들과 격리되어서 동굴이나 다리 밑에서 혼자 생활을 해야만 했고,

구걸을 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환자가 거리를 지나가려면,

한손을 입술에 대고 다른 한손을 저으면서


“나는 부정합니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환자와 옷이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병이 옮는 것으로 생각을 해서 그럴 경우에는

환자를 돌로 쳐 죽여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런 환자는 어쩌면 이미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병은 히브리어로 ‘짜라아트’라고 합니다.

그 말은 '치다' '때려 눕히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 병을 하나님께서 치시고 때리시는 천벌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는 당시에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당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다고 생각되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어떻게 주님 앞에 나왔을까요 ?

어떻게 주님이 그 마을에 계심을 알았을까요 ?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도망가지를 않고 주님 앞까지 나아왔을까요 ?


이 사람은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에 맞아 죽어도 주님을 만나서 이 병을 고침 받으리라

주님은 나를 절대로 멀리하시지 않는다는 믿음의 확신

몇 일을 고민하며 결단을 위해 준비를 하였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이 사람과 대면하였을 때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셨을까요 ?


긍휼의 눈으로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눈가에 촉촉한 애끊는 아픔의 이슬이 맺혀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

버림 받은 자

갑질의 고통에서 숨도 쉴 수 없는 을의 무리들

미생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적인 삶을 한탄하는 무리들

완생을 꿈꾸며 스스로 좌절하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무리들

죄인으로 살아야하는 삶의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서

억머구리 울음을 토하는 무리들


우리 주님은 이들에게 다가가시고 손을 내밀어 고쳐주시는

가슴이 따뜻한 인간미가 풍부하신 분이십니다.


그 누가 그의 흉내라도 낼 수가 있단 말인가 ?

믿음으로 주님께 나온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는 이 환자를 향하여 손을 내미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환자를 만지시며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부모와 자식이라 할지라도 이 환자를 만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환자와의 접촉은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내 밀어 이 환자를 어루만져 주심으로 그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입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란 손과 발에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손을 내밀어 만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이 닿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주님의 손이 닿으면 병든 자가 나음을 입고

주님의 손이 닿으면 슬픔에 빠진 자가 삶의 기쁨을 누립니다


미국의 오래된 시 가운데,

거장의 손이 닿을 때 ( The Touch of the Master's Hand ) 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매장에 낡은 바이올린이 있습니다.

3 불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었고, 더 이상은 없습니다.

이 때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마치 보물을 다루듯이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서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현들을 조여 음정을 잡고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천사의 음악같이 청중들을 황홀하게 하였습니다.

한 곡을 끝내고 노인은 감화 깊은 음성으로 중얼거립니다.


“잘 있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아! 40년 만에 너를 만졌구나!”


하고는 다시 연주를 시작합니다.

경매는 갑자기 활기를 띠고 결국 이 바이올린은 3,000 불에 낙찰되었다는 詩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더러는 울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어찌된 일이요.

무엇이 바이올린의 값을 올렸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거장의 손이 닿았기 때문이요”


거장 예수님의 손이 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진물이 나고 냄새가 나고

상처가 심하여도 우리 주님은 그 상처에 직접 손을 대시고 고쳐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 인간미의 절정입니다


약자인 이 환자를

버림 받은 이 사람을

불치병으로 삶을 거의 포기한 이 사람을

주님께서는 만져 주심으로 낫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그 따뜻한 손길이 그에게 닿자마자 그는 나았습니다.

그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주님의 따뜻한 그 손길이 나에게도 필요합니다

주님의 온정이 주님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나에게도 필요합니다.

아니 영원히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직접 더러운 환부에 손을 대시므로 부정한 자와 같이 되신 주님의 그 인간미

주님을 다시 새롭게 바라봅니다


나를 고쳐주시고 나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영혼은 이미 병이 깊어 진물이 흐르고 지독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주님의 그 손길이 필요합니다


내 상처 모든 환부에 손을 대시어 낫게 하소서

주님의 따뜻한 그 온기를 날마다 매 순간 느끼게 하소서 아멘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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