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의 해변에서 맞는 세밑은 숙연하다. 일출의 포구, 정적이 깃든 호수, 눈 내린 마을과 산사 나들이가 호젓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송지호 인근의 공현진 포구는 옵바위 너머로 펼쳐지는 일출로 사색을 부추긴다. 옵바위 일출은 추암, 정동진 등 강원도의 일출명소와 견줘 손색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게 오히려 매력이다. 얼굴을 사뿐히 내밀던 태양은 옵바위가 토해 낸 듯 바위 사이로 힘차게 떠올라 붉은 자태를 뽐낸다. 이곳 일출이 더욱 장관인 것은 뜻하지 않은 손님인 송지호 철새들의 겨울 군무가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공현진 해변에는 이때쯤이면 일출사진을 찍으려는 출사객이 찾아든다. 숙소를 바닷가에 잡았다면 창가에 서서 방안으로 밀려드는 붉은 기운에 취할 수도 있다.
옵바위 일출여행이 알찬 것은 인근에 송지호와 왕곡마을이 들어서 있어서다. 울창한 송림과 청명한 물빛이 인상적인 송지호에는 큰 고니, 민물가마우지, 청둥오리 등의 겨울 철새가 날아온다. 호수 한 편에는 철새들을 찾아볼 수 있는 철새 관망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호수에는 도미·전어 등 바닷고기와 숭어·황어 등의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한다. 호수 한가운데는 송호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서 있어 운치를 더한다. 송지호 산책로 끝에는 전통 한옥마을인 왕곡마을이 자리잡았다. 왕곡마을은 양근 함씨, 강릉 최씨, 용궁 김씨의 집성촌으로 19세기를 전후해 건축된 북방식 전통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마을길에 접어들면 초가지붕 위로 하얗게 눈이 쌓여있고 수십여 채의 전통가옥 사이로 실개천이 흘러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근현대사 주인공들을 품었던 화진포 고성을 가로지르는 7번 국도는 북쪽 화진포까지 내달린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곱씹을 공간들이 화진포호 주변으로 모여 있다. 화진포가 화제가 된 데는 드라마 <가을동화>나 영화 <파이란> 등이 한몫을 했지만 화진포는 사랑보다는 그리움이라는 테마와 잘 어울린다. 화진포의 ‘화진’에는 ‘꽃 피는 나루’라는 봄뜻이 담겨 있다.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인 화진포호는 덩치답지 않게 고즈넉하다. 철새가 몸을 씻고 간 호수의 미동에는 잔잔함이 서려 있다. 호수에서 길목 하나만 넘어서면 화진포의 바다다. 화진포 해수욕장은 공식적으로 남한 최북단의 해수욕장으로 등록돼 있다. 예로부터 화진포 일대에는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과 이기붕 전 부통령 별장, 김일성 별장으로도 쓰였던 화진포의 성 등 근현대사를 채웠던 인물들의 별장이 줄줄이 화진포에 남아 있다.
화진포의 성은 바다를 조망하기에 좋다. 화진포 바다는 호수와는 또 다르다. 백색 포말을 일으키며 고요한 정적을 깨운다. 화진포 해수욕장 앞바다에는 푸른 소나무와 황금색 대나무가 자라는 모양이 황금거북이를 연상시켜 금구도라 불리는 섬이 위치해 있다. 화진포 사구에 들어선 이기붕 별장은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건립된 뒤 북한군 간부 휴양소,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의 별장, 육군사령부 휴양소 등을 거치는 질곡의 세월을 간직한 곳이다. 이승만 별장은 화진포의 성과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서 있다. 완연하게 호수에 기댄 아늑한 전망이나 내부 볼거리는 이승만 별장과 기념관이 탁월하다. 화진포는 자연경관뿐 아니라 근현대사의 볼거리와 흔적까지 새겨져 있어 상념을 더한다. 화진포를 정점으로 고성의 포구는 북쪽으로 향하면 마차진, 대진, 초도 포구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향하면 거진, 가진항으로 연결된다. 마차진에는 부채꼴 해변과 돌바위들이 어우러졌고 멀리 언덕 위에 대진항 등대가 서 있는 풍경이 탐스럽다. 대진항 인근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놀래미·숭어가 건져져 나오며, 새벽에 대진항에 들르면 오징어회를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초도 포구는 한적한 동해안 포구마을의 아늑한 풍경을 보여준다.
한적한 포구와 마을, 산사로 이어진 7번 국도 화진포에서 해안 드라이브를 즐기며 남쪽으로 향하면 거진 등대와 거진항이다. 고성 최대 항구인 거진항은 예전에는 겨울 명태잡이로 명성이 높았지만 요즘은 그 빛이 바랬다. 발품을 팔아 오랜 세월의 거진 등대에 오르면 고성의 해안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거진항 남단의 가진항은 규모는 작아도 예로부터 다른 어항보다 수산물이 많이 나 주민들이 덕을 크게 봤다고 ‘덕포’라 불리던 곳이다. 일출과 호수, 해변 감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진부령길에 위치한 건봉사에 들른다. 사찰은 화진포 너머 자태를 뽐냈던 금강산 줄기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다. 고성팔경 중 1경인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 중 한 곳이며,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가 봉인돼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밑 바다에서 느꼈던 숨막히던 일출의 감동을 눈 덮인 산사를 거닐며 차곡차곡 추스르기에 좋다.
글과 사진 서영진 |
2015.01.11 00:52
강원도 고성 겨울바다 춥다 춤춘다 파도가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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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일 속초 거진 간성으로
여행을 갑니다
좋은 참고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