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사람들
(글 가운데 데이빗 코레쉬에 관한 글은 김 주영님의 글입니다)
오늘 병원을 갔습니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입원했던 병실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아직 입원해 있는 분을 만났고
또 집 사람이 누었던 그 자리에는 성결교회 목사사모가 입원해 있었습니다
내가 그 목사사모에게
재림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냐고 하더군요
아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래 입원한 분의 남편 이야깁니다
“ 내 친구 중에도 안식교인 있어요
내 아버지 친구의 아들 중에도 안식교인 있어요
그 친구들 지금 안식교 믿다가 집안 망했어요.“
“왜 그런가요”
“거기 믿고 있더니 강원도로 가더니 아이도 안 낳고
집안 망쪼들었어요.
안식교가 그런 곳인가요?“
아마 노아 방주 이야긴 것 같았습니다
그가 안다는 사람을 나도 알거든요
160여년의 재림교회 역사에
이런 오점 많습니다
데이빗 코레쉬
박 명호처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데이빗 코레쉬가 소속되었던 다윗의가지 SDA 파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두 사람의 회고록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버논 하웰
데이빗 코레쉬의 어린 시절 이름입니다
그는 열 네 살짜리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비는 물론 엄마를 버렸고 Rocky 라는 별명을 가진 의붓아비는
주기적으로 버논을 두들겨 팼습니다.
말을 더듬었고 빼빼 말랐고 주눅이 들어서 학교생활을 못했는데
1학년을 두 번이나 반복했고 2학년도 낙제해서 특수교육반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저능아 Mr Retardo" 라고 놀렸습니다.
결국 11학년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열세 살 되던 생일에는 모든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멍이 들도록 두드려 맞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짓눌려 자란 그 아이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총이었습니다.
텍사스의 여느 아이들처럼 사냥을 다니면서 총과 친해졌습니다.
총이야말로 배신 없는 친구요, 보호자였고
나중에 다윗의 가지파가 총장사 (FBI 는 중무장으로 오해) 를 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나봅니다.
또 하나 그에게 위안을 준 것은 음악이었는데
우연히 기타를 알게 되어 부지런히 배웠고
가는 곳마다 성경을 가르치다가 기타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그룹을 만들어 메시아 프로덕션 이라는 이름으로
CD 를 내기도 하고 전도용으로 연주를 했는데
그의 기타 연주는 여느 락스타에 뒤지지 않은 탁월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영혼을 살린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그의 엄마는 안식일교인이었고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를 지루해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그는 교회만 가면 팔팔해졌는데
목사들, 전도목사들의 설교가 좋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설교도 들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외웠는데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줄줄 대어 가며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는 멍청한 놈인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
조금 있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데이빗 코레쉬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위에 말한 그런 상황에서 태어나 억압 속에서 몸부림치던 영혼이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없었다면 그런 환경가운데 자라나는 수많은 아이들처럼
마약과 범죄의 길로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타고난 영성은 그를 살렸으나 결국은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신앙이란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건강입니다.
데이빗 코레쉬의 성경읽기 방식은 근본적으로 우리와 비슷합니다.
성경 예언은 비밀 코드로 되어 있어서
성경 전체에 숨겨져 있는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추면
종말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재림교회는 2300 주야 예언이 끝나는 1844년 날짜를 알게 된 것 외에
더 이상 그런 식의 성경 읽기는 이단이라고 하는 반면
다윗의가지파는 계속 그런 식으로 읽기를 고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계시록의 일곱 인 예언에 집착했습니다.
1993년 FBI 와 벼랑 끝 대치를 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일곱째 인을 풀 열쇠를 찾고 있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기도취와 망상에 빠진 사람 손에 들린 성경은 파멸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성경을 읽지나 말지..."라고 그에게 말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일까요?
내 발에는 등이고 내 길에는 빛인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너에게는 걸림돌이었구나...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건강입니다.
그의 본명은 버논 하웰이었으나 다윗파에 합류한 이후에
이름을 데이빗 코레쉬라고 바꾸었습니다.
박광규가 박명호가 되듯 새 이름을 가진 겁니다.
데이빗은 물론 다윗이고 코레쉬는 고레스의 히브리식 발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 고레스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입니다.
다윗 고레스 이중적으로 나르시스트적인 이름입니다.
망상의 산물이다지요
코레쉬 집단의 비극이 일어나던 당시
웨이코의 안식일교회 목사는
총격으로 사망한 정부 요원을 위해 추모 헌금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ATF/FBI 에 포위되고 결국 불꽃으로 산화된
여자와 어린이들을 포함한 70여명의 다윗의 가지 '안식일교인' 들을 위한 배려나 수습,
혹은 몰살 직전에 빠져 나와 살아남은 여자와 어린이들을 포함한
다윗의 가지 '안식일 교인' 들을 위한 구호, 배려, 수습, 상담, 재활...
그런 것은 일절 없었습니다.
1993년 4월 19일 탱크가 건물 한쪽을 부수자 연기가 올라오고
건물이 화염에 휩싸이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TV 중계로 지켜 본 안식일 교인 가운데
과연 누가 저 이단 집단의 구성원들이 나와 같은 교인이었구나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그만큼 그들과 우리는 멀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웨이코에서 대치 상황이 벌어지던 50여일동안
대총회가 위기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 언론 매체들은
Branch Davidian Seventh Day Adventist 라는 그들의 정식 명칭을 내보냈지만
곧 각종 뉴스에서 SDA 라는 이름은 빠지고 그냥 Branch Davidian 이라는 이름만
사용되었습니다.
언론들은 의료와 구호 사업으로 이름난 이 존경할 만한 교단을
그런 사교집단과 연결시키지 말아달라는
대총회가 고용한 PR 회사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일찍부터 안식일교단은 그들로부터 선을 그었고 아예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몰살한 사람들을 포함해
다윗의 가지 추종자들은 90 퍼센트 이상이 안식일교인들이었습니다.
학벌 없고 이름 없던 데이빗 코레쉬를 사람들에게 알려 힘을 보태준
오른팔, 왼팔 역할을 했던 두 사람
마크 브로 (Marc Breault) 와 스티브 슈나이더 (Steve Schneider) 는
삼육학교 출신이었는데 브로는 신학과 졸업생이었습니다.
시각 장애의 이유 등으로 목회에 부름을 못 받고 있던 중
로마린다의 한 수퍼마켓에서 데이빗 코레쉬의 장인을 만나 전도 받아
코레쉬의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하와이 출신인 그는 곧장 자기 친구 스티브 슈나이더를 찾아 전도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 어디서 듣던 대목^^)
전도 목사 되는 것이 꿈이었던 슈나이더는 위스칸신 아카데미를 나오고
영국 뉴볼드 칼리지를 중퇴하고 방황하다가 하와이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하여
하와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고 지역 안식일교회에서
인기 있는 안교 교사요 영향력 있는 평신도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브로는 코레쉬파를 이탈하여
그들이 사교 집단임을 알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그들이 볼 때는 가룟 유다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슈나이더는 코레쉬의 후견인, 오른팔, 2인자로 끝까지 남아
최후의 순간에 같이 죽었습니다.
4월 19일에 몰살한 명단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영국인 안식일교인입니다.
뉴볼드 대학 신학과 졸업생들 중에 코레쉬 파의 전도자로 일한 이들이
적어도 세 명 있었고 목회 인턴을 하고 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심 있고 예언의 신을 사랑하고 철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둘은 자메이카를 비롯한 서인도제도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 중에 브로와 슈나이더의 연고지 하와이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박명호가 초기에 안식일교인들을 바탕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일반인에게로 세력을 확장시킨 것과는 달리
코레쉬는 끝까지 안식일교인들을 상대로 일했습니다.
우리 주위의 개혁교단처럼 말입니다
박명호의 메시지와는 달리 코레쉬의 매시지는
안식일교인 아니면 관심 없을 그런 주제들입니다
예언, 계시록, 남은무리, 일곱인, 환란....등등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토론들처럼
바로 오늘 우리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서로를 비방하면서 싸우고 있는
그 아름다운(?) 특수교리들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책 보고 같은 안교 교과 보고 믿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길을 가게 될까요?
나는 오늘 많은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뭐라고 변명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라고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성결교회 목사사모 앞에서
“저들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에게서 나간 무리들입니다“
그렇게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대총회가 미국 재림교회가 데이비드 코레쉬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정말 창피하고 우리끼리 말할 때는 이설자로 몰았지만
다른 교인 앞에서는 이설자로 몰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들도 한 때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고
앞으로 어떤 기회에 같아 질 수 있는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개신교인 앞에서 우리끼리 서로 이설자로 모는 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언 해석
나는 연구할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납니다
이건 아니야 하는 생각이 항상 내 속을 긁어 놓습니다
재림교회 교리 그대로 답습하면 아무런 문제없고
교단에서 그래도 일부분들에게라도 존경 받고
욕도 먹지 않고 몇 년을 한 사람하고 싸우지도 않고 등 돌리지도 않고
전처럼 잘 지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요즘처럼 몸도 아파 죽겠는데 이 험한 길을 가면서
이 난리를 치고 있을까요?
아무리 연구하고 삿대질처럼 싸워도 해결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연구해도 답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답이 안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은 답을 잘도 찾아냅니다.
연대를 들이 밀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연대에 대하여 다른 이들에게서 얼마나 조롱을 당하는지 조차 모릅니다
이 교단의 생리는 원래 그랬습니다
내가 평생을 섬기면서 이 교단 변해야 한다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글자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하고 그것 손대면 죽는 줄 아는 그런 집단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했던 말을 방방 뛰면서 방송용 멘트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리에 목 맨 사람이 없어져 갑니다
예언의 신에 감읍하던 무리들이 없어져 갑니다
여기서 몇몇 사람들 관심 가지고 살아가지만
정작 저들도 저들 교회가면 그런 이야기 입 밖에도 안 낸단 말입니다
개혁교단은 우릴 보고 기성교회라고 욕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린 기성복 같은 집단이 된 겁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옛것을 누가 더 선명하게 믿는가 싸우고 있습니다
평소에 한 번도 가르치지 않은 것을 한 번 씩 시간 나는 대로 믿어라 하는 식의
우리들의 성경연구 예언연구는
사실 죽은 양식입니다
그 죽은 양식을 썩었냐 아니냐 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아마 이 짓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겁니다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새로운 것이 주님의 말씀이기를 원합니다.
예언서가 아닌......
살맛나는 로산의 집
http://kim3004.hompy.com
인터넷 안식일학교과해설
장로님, 힘내십시요.
""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정신건강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기본 도덕 , 예의나, 상식적인 에티켓, 위에
신앙을 쌓아야 된다고 믿고 있습죠.
정신적인 건강도 하나 더 추가해야합니다.
장로님, 정치 얘기만 빼면 안식일교회 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