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장년 교과책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서문을 읽다가 생각나는 바를 적는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예문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예전의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린 자녀들만 집에 두고 외출을 할 때면 꿀단지나 꽃감바구니,
혹은 펄펄 끓는 가마솥을 가르키며
“엄마 돌아올 때까지 너희들 이것 절대 먹지마, 먹으면 죽을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고 외출을 한다.
이 경우 엄마가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한 진심은 무엇일까?
정말 만지거나 먹으면 죽이겠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직 철없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다 먹어버리면 배탈이 나거나
귀한 것을 다른 식구들은 못 먹기에 나누어서 먹이려는 배려이며,
또한 뜨거운 가마솥이 위험하기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못 만지도록 한 배려의 엄포인 것은 철든 어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우가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선악과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고 남겨두셨다.
하나님은 한국 엄마를 많이 닮으셨나 보다.
아니 정확한 것은 한국의 엄마가 하나님을 좀 닮았나 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정말 죽이시겠다는 말일까?
아니면 아담과 하와의 안전을 위한 배려의 말씀인가?
아무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안 듣고 선악과를 먹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물어야하는 질문과 답은 무엇일까?
질문은
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악과를 먹었을까?
하나님은 뻔히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줄 아시면서 왜 그러셨을까? 이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무조건 순종해서 먹지 말았어야 했을까?
먹고 싶고,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되도
무조건 참고 먹지 말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던 것이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아이들이 꿀이나 꽃감을 빼먹은 이유와 같다고 본다.
즉 아이들이 아직 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철이 들었으면 설혹 엄마가 그런 말을 안 해도
아니, 오히려 알아서 먹으라고 해도 안 먹고
동생들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남겨 두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도 아직 철이 들 들었었나보다.^^
이해를 못하고 의심을 품은 체 무서워서하는 복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에덴동산의 선악과 사건은
“먹느냐? 안 먹느냐? 의 문제”가 아니라
"철 드느나? 안 드느냐?"의 문제이고,
“철 들어라!”가 답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철든자만이 비록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의심 없이 무조건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철 든다”는 말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복종이 아니라 이해이며 사랑의 섬김이다.
율법의 지킴이 아니라,
사랑의 헌신을 말한다.
표층이 아니고 심층을 말한다.
율법을 지키려하지 말고 사랑을 하자!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구동산에서의 선악과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아닐까!
"살거나 디지거나" 입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웃더군요
잠언서를 이런 식으로 교과책으로 쓴 저자는
교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잠언서를 읽어야 할런지를 모를 겁니다
잠언이 잠언이 아닌 교리적 서술이라면 잠언으로서의 가치는 상실입니다
잠언은 도덕적인 책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종말론적 사상을 주입시키면 잠언으로서의 가치는 상실합니다
31장입니다
"르무엘 왕의 말씀한 바 곧 그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꼬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