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이런 갈등이

by fallbaram posted Jan 22, 2015 Likes 0 Replies 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갈등이란 칡나무 하고 등나무가 얼른 보기에 너무나 흡사해서  두가지의 일들이

구분하기가 어려울때 빗대어 쓰여지는 말이다.

몇년이 이미 지났지만 환갑때에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보니 삼십년은 한국에서

또 삼십년은 미국에서 살아온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록 미국에서 살아온 날들이

반이상이긴 하지만 철저히 영어권 생활반경에서 살지않고 거지반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교회를

다녔기에 미국을 fully 살았다고 할수도 없다. 이제는 미국에서 산날이 훨씬 많아졌지만

서류상으론 분명 미국시민인데 지금 호주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컵을 구경하는 내 가슴은

 아직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빡빡 우겨대고 있다.


이런 종류의 한국인들을 아주 불쌍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시민으로 살면서  미국식 문화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발전도 잘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날이면 날마다 발전을 거듭한 조국의 새로운 문화에도 접촉을 할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딱 삼십년 전에 성장이 멈추어진 꼴이라고나 할까.

더 넓은 땅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화와 사건들을 어느정도 경험한 잇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 나이가 들수록 먹는것이나 살아가는 온갖 방향에서 전보다 더 진하게

한국인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갈등이 내 노년의 삶을 휘감고 있다는

새로운 의식을 하게 된다.


갈은 한국인의 뿌리고 등은 미국시민으로 살아가는 현실이라고 할까.


사실 나는 비록 그 당시에 열심으로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일단은

영문학이 전공이기에 미국에 와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섭렵하려는 시도를

해 보지 않은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려면 먼저 언어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어로 생각이 떠 오르면 그것을 다시 영어로 바꾸어 표현하게 되는

수준에서 온갖 몸부림을 치다가 나이가 지긋이 들면서 은근슬쩍 그런 몸부림에서

나를 해방시키고 민초라는 곳으로 들어와서 모처럼 해방된 기쁨을 자축하는듯

죽을둥 살둥 곰팡이 쓴 옛날의 모국어를 애써 기억해 내고 그 알량한 언어를

빌려서 한국인의 글발을 써 갈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한국의 어느 산자락에 허름한 별장 하나를 사서 말기환자 몇명정도

데불고 살면서 안식교인이기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뉴스타트 하면서 황혼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한국인으로 완전 귀의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라고 있다.


갈등의 갈이되는 칡나무는 넝쿨이나 꽃이 등나무처럼 아름답고 정원수로 키울만큼

뛰어난 외모는 갖지 못했지만 그 뿌리를 캐어보면 우리몸에 상당히 이로운 약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등이 되는 등나무는 뿌리의 약효는 갖지 못해도 그 줄기가 함부로

뻗어가지 않고 잘 정리되어 있고 또 보라색 꽃이 상당히 아름답다. 시카고 보타닉 가든에서

지난번 봄에 본 꽃이 핀 등나무 한그루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어차피 반은 갈이요 반은 등이 되는 내 삶에서 등나무 같이 아름다운 넝쿨에

칡나무의 뿌리를 갖게 되었으면 하는 기도가 솔솔 피어 오른다.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힘들게 써 내려가는 내 글줄기에 갈등의 아름다운

면들만 표현되고 또 그렇게 독자들에게 느껴지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함께 올리는

목요일 저녁이다.


민초의 정원에 갈등이 얽히며 꽃 피는 날!

님들도 갈등 하나요?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