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의 놀라운 경험을 하다

by 임용 posted Jan 22, 2015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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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의 놀라운 경험을 하다

1980년대 초 춘천삼육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거듭남을 경험한 이후로 나의 삶은 오로지 복음 전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내 보내실 때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셨기에
나 또한 나와 짝이 되어 전도할 사람을 구해보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기에 드디어 용단을 내리고 혼자서라도 방문을 시작하였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점심 식사 후 끼리끼리 모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내며 사이좋게 친목회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혼자서 집집 방문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중에는 일 관계로 방문을 못하니
안식일 오후라도 방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도 없고 효과도 없는 방문을 하던 중에 그래도 문전박대를 하지 않는 40대
중반의 한 남성과 성경공부와 함께 교재를 하게 되었다
이 분은 질병이 있어 주로 집 안에서 생활을 하는데,
이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했다

한번은 이른 봄 하우스에서 생산한 꽤 비싼 포도를 사 가지고 갔다
사실 나와 나의 가족은 맛도 못 보는 포도를 전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이후 어느 날 임선생님이 나가는 교회에 나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안식일 그가 교회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그 다음 날 일요일에 그를 방문해서 우리교회에 와 본 느낌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도무지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든 좋으니 해보세요.

했더니 임선생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 교회에는 못 나갈 것 같습니다.
나는 임선생님이 나가는 교회 교인들은 전부 임선생님 같은 줄 알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공들인 모든 수고가 공수포로 돌아오는 아픔을 겪었다.

“와 보라” 라고 전도한 사도들의 교회가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는지 모른다.
힘들고 어렵게 이도한 사람이 교회 한 번 와 보고는 안 나오겠다니......

이 일 이후로 ‘다시는 전도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고 지내는데
  ‘전도해도 효과가 없고 그렇다고 전도하지 않을 수도 없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맨손으로 갈 수도 없고 그러니 병 고치는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 이후로 매일 새벽 5시에 교회에서 병 고치는 은사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40일 작정 기도를 한 것이다. 40일 기도가 끝나는 안식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주님이 꿈에 한번 나타나시든지 아니면 뭐 특별한 무엇이 나타나야 응답된 것을 확인할텐데......

어느 안식일 오후 최상기집사가 자기의 4촌 형이 있는데 나보고 성경을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계시는데 내가 왜 가르쳐 하고 반대했다. 몇 차례 그런 부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내가 꼭 가르쳐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고 물었더니 임선생님이 하시면 끝장을 볼 것 같다는 것이다

. 그래서 안식일 오후 2시에 최상현씨 댁에서 성경 공부를 하기로 약속을 했다.

한 달여 지났을까. 방문을 갔는데 전 같으면 문 앞에 나와 기다릴 텐데 아무도 없어 마당에

들어서면서 최선생님,  하고 불렀더니 방에 앉아서 문을 여는데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왜 울고 계시느냐? 고 했더니 내 손으로 자기 배를 만져보라는 것이었다.

아 아니 왜 하니 내 손을 끌어다 배에 얹으며 만져보라는 것이다.

만지니 글쎄 배 안에 주먹마한 돌이 만져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이게 무엇이냐 했더니  간이 굳은 것이라 했다.

그러면 병원에 가셔야지 이렇게 울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했더니

강원도 도립병원(춘천 소재)에 갔다 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무어라 하느냐 했더니 진찰 후 그냥 집에 가라고 해서

 하도 어이가 없어 서울대학병원에 가볼까요 했더니

 거기도 갈 필요가 없다 했단다. 그럼 집에 가서 죽으란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고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제

일주일일지 한 달일지 모르는 남은 생명 앞에서

 소망을 확실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싶어

그야말로 간절한 심령으로 호소를 했다  남은 생명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고 믿음 안에서 잠드셔야 합니다. 하고 간절히 애원하다시피 했다.

예수님 확실히 계시면 하늘에서 만나고 예수님 안 계시면 본전이 아닙니까?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더니,

 임선생님, 내가 무슨 염치로 죽을 날 받아놓고 하나님을 부르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그 순간 번개 같이 스쳐가는 것이 십자가 좌우편의 강도 사건이었다.

최선생님, 성경에 보면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예수님 좌우편에

강도 살인자 두 명이 함께 형벌을 받는데  한편 강도는 말하기를 야,

예수야 네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우리도 내려주면 믿겠다.

하니 다른 쪽 강도는 말하기를 너와 나는 죽을 죄를 지어 이렇게 벌을 받지만 가운데 계신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야 하며 예수님,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최선생님이 그 살인 강도한 사람 보다 더 악합니까? 하는 순간에 방바닥을 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데,  온 방 안에는 불이 활 활 타 오르는

느낌과 함께 심령에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달아올랐다.

한참을 울다 뚝 그치더니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내 손을 꼭 붙잡고 침례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침례는 내 마음대로 주는 것이 아니고 교회 직원회에서 결정해야 된다고 했더니

빨리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 춘천교회에는 엄보석목사님이 계셨는데 말씀을 드려 직원회를 소집했다.

직원회는 꽤 긴 시간 계속되었다  이왕에 죽을 사람 침례주다 죽으면 교회에서

사람 죽였다 한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이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지

 죽이는 분인가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달렸는데 설마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도록 하시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하고 확실히 보았다

이렇게 양분되어 설왕설래하다 결국은 목사님이 결론을 내리도록 했는데 주는 쪽으로 결의가 되었다.

마침 욕조 수리하는 집사님의 욕조를 빌리고 비닐을 큰 것 사사 트럭에 싣고 최상현씨 집으로 가서

 소여물 삼는 솥에 물을 데워 욕조에 담아 간이 침례식을 했다.

그 다음 날 나는 너무나 궁금해서 일찍 최선생님 댁을 찾았다. 너무나 반가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며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배에다 만져보라는 것이었다. 아!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그 차돌처럼 단단하게 잡히던 간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믿을 수가 없었다. 몇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때의 그 일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일 이후로 최상현씨는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나는 서울로 전근을 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그 놀라운 추억이 그리워서 최상현씨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대문에서 최상현현씨 계십니까?

 하고 말했더니 방문을 열고 나를 본 그는 신발도 신지도 않고 뛰어나와 나를 얼싸안았다.

오래 전 아침 기도력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 여인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지내는 가운데 성경을 읽게 되었다.

야고서를 읽는 중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약5:13-15)

이 여인은 말씀대로 목사님과 장로들을 초청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나았다.

그런데 목사는 자기가 기도해서 나았다고 생각하는데 선지자는 여인이 믿음대로 했기

때문에 나았다고 기록했다.

나 또한 는 그 때 최상현씨가 통곡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셨다고 지금 믿고 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셔서 전심으로 회개하고 통해하고 자복하는 자에게

권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경험이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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