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세이] 대한민국 검사들께

by 저울 posted Jan 25, 2015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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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대한민국 검사들께


      
사람이 늘 자신의 뜻한 바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신념이 옳다 해도, 그게 보편적 가치에 부합한다 해도 때론 굽히고 눈치를 봐야 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절망과 좌절, 분노와 저항, 타협과 굴신을 겪습니다. 거창하게 말 할 것 없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가장 무섭습니다. 도저히 아니다 싶어서 사표를 내고 싶어도 갈 곳이 없고 부양해야 할 가족을 생각하면 그저 눈 딱 감고 알아서 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서민들의 삶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정년까지 살아간다 해도 그 다음의 삶은 막막합니다. 쌓아둔 재산도 없고 재취업의 기회도 무망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대부분의 삶입니다.

과연 지금 이 나라에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민주주의의 가치가 수호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가치를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바로 검사 여러분들입니다. 대다수의 검사들이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그런 검사들의 모습을 감추고도 남습니다. 오로지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자신의 안위와 입신에만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 더 또렷합니다. 사회구성원들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냉소하고 체념한 시민들의 모습을 과연 여러분들은 느끼고 있으신가요?

기소독점권을 쥐고 있으며 막강한 수사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당신들의 눈은 언제나 최고권력자만 향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수년 전 방산비리를 수사했으면서도 면죄부를 주었는데 정작 비리가 터지자 입 싹 닫고 오불관언인 것도 이젠 놀랍지도 않을 지경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정치권 눈치 보기 때문이지요. 소시민들은 호구지책 때문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쫓겨나면 생계가 막막하니까요. 그러나 검사나 판사는 옷 벗으면 변호사가 될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 정도의 안전판(?)을 마련한 계층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다 쫓겨나면 막강한 로펌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서 그러시나요? 노력한 만큼, 열심히 산 만큼 대가를 누리며 사는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꾀하는 것은 부정한 삶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드라마 한 편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모양입니다. ‘펀치’라는 드라마는 검사들의 이야기더군요 그러나 법을 수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검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모술수와 야합에 대한 민낯을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권력의 횡포와 부의 추악한 탐욕이 빚어내는 불의를 일소하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수호하는 검찰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히려 권력욕에 휩싸여 인간의 도리마저 내팽개치는 정치검사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분노하고 욕하며 대리만족을 누립니다. 그저 드라마라서 그렇다고, 허구일 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자문해볼 일입니다.

극중에서 차장검사가 법무장관의 면전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장관님, 저는 검사입니다. 검사가 들어야 할 명령은 청와대의 하명이 아니라 법의 명령입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검사들이 지금 있는지요? 부당함에 맞서다가 눈 밖에 나서 한지를 떠돌아야 하는 강직한 검사들의 모습을 최근에 보지 않았나요? 걸핏하면 인성교육 운운하며 가르치려 들 일이 아닙니다. 사법연수원에서 법조인들 제대로 인성교육부터 철저하게 시키고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에 대한 신념을 확고하게 해주며 맞서 싸우는 용기를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깨져도 그들은 살아갈 대안이 있지 않은가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을 더 얻으려고 그렇게 비겁하게 처신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회를 살아갈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거 단순명료합니다. 검찰이 권력자와 재벌 눈치 보지 않고 오로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할 헌법정신에만 올곧게 충실하면 됩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두렵고 무서워서 몸 사리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소시민들을 위해서라도 멋진 검찰이 돼주시길 빕니다. 설마 이렇게 따가운 소리 지껄였다고 잡아가시는 건 아니겠지요?

김경집 인문학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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