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일요일)
야생 백조 ( 2 of 2 )
너무 늦은 사과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모씨의 흉악한 정치의 희생밥으로 파리때처럼 수십만명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한동안 기근으로 온국민들이 최악에 상황속에 허덕이고 있을때, 남의집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토끼 고기로 팔은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부모들은 너무 배가 고파서 자녀들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들은차마 눈을 뜨고 읽을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참혹함 들을 이상하게도 눈물 한방울 안 흘리고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세상이 너무나 험악하기 때문에 잔인성에 대해 감정이 무감각 해진듯 하다. 어느 역사를 조금 이라도 들어가 보면 무모한 죽움들이 이루 말할수 없이 많다. 종교 역사도 예외아니다. 역사뿐만 아니고 현제 세계 방방곡곡에서 진행형이다. 얼마전에 북조선 감옥생활에대한 책을 읽고 몇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장정에 글을 읽으면서 감동이 되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부분들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잔인함에 강도가 진하지 않았지만, 장정에 개인적인 가정 이야기라서 그런듯하다. 나도 모르게 읽어내리다 보니 저자와 친숙함을 느끼게 되면서 그의 삶을 개인화 시켜서 그런 증상들이 일어났을듯한다.
영화를 관람할때나 책을 읽을때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케릭터(들) 을 만나게 된다. 야생백조에서 세명을 꼽는다: 주인공의 외할머니, 외할머니의 새 남편,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이다. 오늘은 아버지, Wang Yu Chang,에 대해 생각을 좀 멈추어 보도록 하겠다.
장 선생님은 1921년에 탄생하셔서 1975년에 일찍 세상을 떠나신 분이시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정말 아깝게도 일찍 눈을 감으셨다. 나는 그의 54년 생애를 정말 인간답게 그윽한 향기를 피우면서 가장 갑진 삶이였다고 생각한다. 살기좋은 중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것을 걸고 헌신했던 국민 지도자로써, 자녀들에 아버지로써, 그리고 한 여인의 남편으로써 장성생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다.
장선생님 은 보수적이셨고 가족모두들에 매우 엄격하게 대하셨다. 청교도적인 열정으로 새로운 살기좋은 중국을 이룩하겠다는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모든 에너지를 바쳤다. 혁명이 항상 아버지의 최고의 관심사였고 우선적인 충성을 아낌없이 투자한 곳이였다. 가정에서도 공상주의 규율을 엄격하게 따르도록시행하였다. 아버지가 높은 직위에 있으니까 다른 집처럼 특별 대우를 받기는 커녕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고 더욱 강력하고 완벽하게 규율을 강요하였다. 가족들과의 사랑이 자연히 멀어졌다.
아버지가 출장도 많이 가시고 바쁘셔서 아이들하고 시간보낼 여유도 없었고 가끔이나마 집에 들릴때는 저자의 남동생을 많이 때리셨단다. 저자에 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한 실망들을 딸에게 말해주셨다. 어머니의 머리를 기댈수 있는 아버지의 어깨를 원하셨다. 그 무엇보다 아버지의 사랑과 지원을 원했고, 아버지에 첯번의 관심이 되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항상 아버지의 충성심은 형명이셨고, 어머니는 경쟁할수 없는 하잘것 없는 존제임을 의식하고 몹시 실망하셨다. 어머니 인생의 가장 슬프고 힘든 순간에 혼자 있어야 했음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에게 개인적인 이해와 부드러운 사랑을 그렇게도 원했지만, 받지 못했다.
한 주말에 공상당원 가족들이 영화관에 모여서 오락을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가 배가 너무나 아파서 높은 공상당원들만 앉아있는 곳에 있는 남편에게 아프다고 숙소에 좀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남편의 운전사가 저만치 앉아서 쇼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모처럼 즐기고 있는데 가족이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어떻게 미안해서 그럴수 있느냐고 거절하였다. 남편이라도 좀 어떻게 손을 써볼 생각안하고, 나몰라 라고 하듯이 계속영화만 보고 앉아있었다.
혼자 걸어서 숙소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멀고 거친 길이였다. 그는 고통중에정신을 잃었고 병원에서 깨어났다. 임신한줄도 모르고 있었고 아기는 유산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얼굴인 남편에게 처음으로 한말, I want a divorce!
딸에게 어떤 아버지였는지를 읽으면서 내 심금을 울렸다. 나의 생각으로는 부모가 아이들이게 주는 영향이 자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큰 요소가 되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부모는 절대적으로 자녀의 본질 (essence) 을 태어난 그대로 받아드려야 하고 아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수 있도록 내면적으로 세워주는 역활을 해야한다. 이것을 전제로 하고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 본성를 부정(거부) 하고 온갖 희생을 하고 사랑한다고 퍼부어도 언제나 무엇인가 빗나감을 경험하게 될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심정을 생각하게된다. 아이들이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고유한 본성을 지니고 이세상에 태어났다. 부모의 가장 중심적인 역활은 타고난 본성을 잘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정은 집단 정신 (collective spirit) 이 결핍되었다고 어려서부터 늘 지적받았다. 그녀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교적이기도 하였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항상 혼자 있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독서하는 일을 즐겼다. 아버지는 딸의이런 측면을 발견하고 승인하는 말씀들을 하셨다. 집단정신으로 너무나 친숙해지면 파괴적일 일이 될수 있어, 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격려의 힘을 입어 그는 자신만에 공간을 양심의 가책없이 당당하게 유지하였다.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작가된것도 나는 아버지가 딸에게 준 긍정적인 시선이 큰 부분을 차지 했을것이라고 짐작한다.
문화 혁명 시대에 부모님이 정의로운 발언으로 정치범으로 몰려서 오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문화 혁명은 잔인한 인간 관계를 를 만들었고, 수많은 가족들이 소외되었다. 그러나 장정의 가정은 더욱 사랑으로 뭉치는 경험을 하였다. 부모님의 용기와 보전 (integrity) 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부모님이 격어야 했던 심한 고통이 자녀들의 감정이입 의해 부모님의 대한 새로운 사랑과 존중을 느끼게 하었다. 남동생도 아버지에게 어려서 매맞은 경험을 잊고 아버지를 진정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울린 두 짧은 문장을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 하겠다. 아버지가 먼 시골에 다른 사상범들과 같이 강제노동소에 계실당시에 자녀들이 방문했을때의 하신 말씀이다. 돌아가시기 얼마전이였다.
My father reproached himself for having been harsh to Xiao-hei, and would stroke his head and apologize. “It seems inconceivable I could have hit you so hard. I was too tough on you,” he would say. “I've been thinking a lot about the past, and I feel very guilty toward you. Funny the Cultural Revolution should turn me into a better person.”
어머니는
다는 강제노동소에서 벌을 받고 계셨는데,
많이
아프셔서 생명이 위험하다는 기별을 받고 아버지가
어머니 방문허락 요청을 거부당하고 그렇게도 용감하신분이
큰소리도 다른 사람들있는 앞에서 엉엉우셨다.
그리고
허락되는 문자를 보내셨다.
"Please accept my apologies that come a lifetime too late. It is for my guilt toward you that I am happy for any punishment. I have not
been a decent husband. Please get well and give me another chance."
张先生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관대한 사랑으로 키우신 따님의 글로 아버님의 숭고한 삶에대해 배우고 많은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인터내션얼 베스트 셀러인 와잇스완 을 못보신 아버님과 할머니에게 헌정 (dedicate) 하였더군요. 세상을 떠나신 오랜후에 따님이 아버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어머님이 딸에게 말한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하는 마음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투명하고 정직함이 가장 질기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재 확인하는 순간들이였습니다. 세상 살이 힘들어서 오른길이 아닌줄 알면서도 타협에 유혹을 받을때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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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이
부모 세대의 옛 가치관이 지금 세대가 보기에는 많이 고지식하고 답답합니다.
전 세대에서는 공직자나 목회자들이 사회와 교회를 위해
자신과 가정을 희생하는 것을 순수하게 생각하고
자신이나 가정을 돌보면 죄책감을 느끼곤 했습니다.ㅠㅠ
그러나 지금은 그걸 이해도 못하고
또 가치관이 많이 바뀌어서 그건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가정에서의 사랑이 사회로 그대로 이어져야 하는데
전에는 그 사이에 단절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또 너무 이기적이고
목회도 희생의 섬김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직업이 되어버린 듯도 합니다.ㅠㅠ
누구 정답을 사는 이를 보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