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라는 질병

by 김원일 posted Jan 30, 2015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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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30 18:35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영향력이 커진 주제가 바로 ‘건강’이다. 한국 사회의 미디어는 신문 방송을 가리지 않고 건강에 대한 정보들을 끝없이 양산해내는 중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의사들을 부쩍 많이 보게 된다. 거의 모든 방송사에서 의사와 연예인을 함께 불러다 건강과 질병에 대한 ‘토크’를 한다. 의학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이런 프로그램들이 가지는 영향력은 특정 과일 값의 폭등과 품귀현상이 잘 보여준다. 방송을 보며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시청자는 방송 후에 이어지는 암보험, 생명보험 광고의 행렬을 맞이해야 한다. 불안해진 시청자들은 자신의 ‘건강하지 않은 삶’을 걱정하며 보험 가입을 고려한다.

‘건강한 삶’에 대한 미디어의 강조는 이처럼 지식(의학)과 쾌락(연예인)과 비즈니스(보험)가 결합한 종합적인 담론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건강담론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거의 유일한 정언명령이다. 이는 다시 한국의 언론을 장악한 다른 프로그램 형식들과도 기꺼이 조응하는데, 이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주제는 ‘성공’이다. 건강토크쇼는 ‘신체적 성공’, 힐링토크쇼는 ‘정신적 성공’, 막장드라마는 ‘경제적 성공’, 서바이벌 오디션 쇼는 ‘사회적 성공’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건강토크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들의 가장 근본적인 불안을 건드리는데, 이는 ‘아프면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로 표현된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파서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건강 아니면 돈, 서로를 요구하며 서로를 갈구하는 이 두 요소는 우리 삶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지표이며, 대중문화는 이를 서사화하는 지배적 형식이다.

건강에 대한 집착은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것에 대한 배제를 동반한다. 예민해진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침범하는 것들을 미세하게 분류하기 시작하고 이 범위는 확장된다. 더러운 것, 표준에서 벗어난 것, 뚱뚱한 것, 약한 것, 위험한 것은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한다. 종이컵과 전자레인지와 담배 연기의 신체적 독성을 걱정하는 이들과 장애인, 성소수자, 비만 여성, 동남아 노동자, 전라도 출신, 진보좌파, 인문학 전공자들이 끼치는 정신적 독성을 걱정하는 이들 사이의 거리는 가깝다. 신체적·정신적·사회적·경제적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제거해야만 한다. ‘독소’, ‘암 덩어리’, ‘바이러스’, ‘수술’ 등의 용어는 의학을 넘어 박근혜 시대 들어 정치용어로 사랑받는다. 건강에 대한 집착은 배제와 혐오를 수반함으로써 공존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는 멀어진다. 이것의 극단화된 정치적 형식이 파시즘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무슬림 청년들의 테러를 보며 우리는 쉽게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하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건강 근본주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근본주의가 가진 문제는 자신의 도그마 이외의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한다는 데 있다. 신체적 건강에 대한 한국인들의 집착은 거의 하나의 도그마, 하나의 근본주의가 되었다. 건강, 힐링, 웰빙에 대한 강조가 넘쳐나지만, ‘무엇을 위해, 왜’ 건강해야 하고,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는 정지되어 있다. 건강, 그것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조건이기에 그렇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삶은 점점 일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사유가 필요치 않은 것으로 변해간다. 내 건강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황폐해진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죽음이 구원인 것처럼, 건강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이 황폐함이 곧 건강함의 표상이다. 건강담론의 역설이 바로 이것이다. 아도르노가 간파했듯, “넘치는 건강은 그 자체로 이미 항상 병”이라는 것.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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