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버스 정류장-채 상근
그대, 바다냄새에 절은
바닷가 버스정류장 나무의자에 앉아
버스를 타고 올지도 모르는 그리운 사람을
무작정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바다를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은 채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서
버스를 타고 온다는
보고 싶은 그 사람을
연착되어 쌓이는 그리움으로
하얗게,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리움에 절은 바닷가 버스정류장
나무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파도를 넘어오는 푸른색 버스를 타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버스바퀴가 파도에 반쯤은 젖어
움직일 때마다
바다냄새가 나는 버스를 타고
푸른 그리움으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
바다냄새 절은 온몸으로
푸르게, 그대에게 가고 싶다
발코니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자마자 바다가 바로 오십미터쯤
아래에서 보란듯이 주름을 잡고 있다.
잡았다가 다시 펴고 폈다가 다시 잡는 그 주름잡는일을 바다는 그마두려 하지
않는다..
쉴새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열정.
그 주름의 언저리에 떼를 지어 웅성거리는 갈매기들은 거품뿐인 그것의 나약함을
잘 아는지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달려드는 그 물살에 아무런 동요도 없다.
발코니의 문을 여는 순간 두 부부의 입속에서 아! 하는 신음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온다.
화씨 삼십도도 채 되지않는 시카고에서 세시간 전만해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반팔로 갈아입고 바닷바람에 맨살을 드러낸다.
기억속의 짜맞추기를 한참을 하고 또 손가락도 꼽으며 그것도 모자라 미간도 찌푸려 가며
한참을 부산하게 뭔가를 생각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정확히 우리 부부와 가을바람의
부부 단두짝이 만나 15년만에 다시 갖는 휴가" 라고 내뱉는다.
그는 미시간에서 나는 시카고에서 두시간 남짓하는 거리에 살아가지만 그도 바쁘고
나도 바쁜탓에 간간이 주말만 함께 한 날들은 사실 많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함께 여행을 한 시기는
그는 사십대 초반이었고 나는 사십대 후반이었던 때이다.
오직 공부 하나로만 살아온 지성과 들판에 나가면 어떤것도 낯설지 않는
가을바람의 야성이 만나 21일간은 동남아의 뒷골목에서 또 다른 이주간은
하와이에서 겉으로는 갈등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의 것을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새로운 자연과 낯선 문화와 벗하였던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들이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물거품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지성에만 올인한 의사들이나 교수들이 그럴수 있듯이 그도 사람앞에 서는것이 두렵지는 않아도
사람들과 특히 한국인들과 무작정 어울리는것이 언제나 어색한 사람이다.
그의 부인과 내 집사람은 어릴적 부터 소꼽장난 친구여서 둘 사이에는 격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남자들 사이에는 서로가 걸어온 길의 방향이 하도 달라서 처음 만나서 우리는 십년쯤은
서로 내외했던 기억이 있다.
운동신경이 좀 떨어지는 그는 어린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얻은 여러가지 씁쓸한 기억들이
가슴에 상처처럼 달라붙어 있다. 함께 운동이나 놀이를 하다보면 나는 쉽게 재미에 빠져들고 있고
그는 할수 없이 분위기 때문에 따라오는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그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하며
한순간이나마 책이 아닌 자연속에서 달리 호흡하는 법을 가르치느라 애쓰다 보면 우리 사이엔
우정의 강이 자연스레 흐르는 것을 언제나 끝말에서 발견하고 헤어질때의 포옹은 더 각별해진다.
우리의 일상은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 그날 그날 바다의 파도가 그어놓은 경계선에서
모래속에 알알이 박혀있는 바다의 온갖 이야기를 밟고 다니다가 해가 중천에 뜨면 미시간과 시카고에선
돈주고도 보지못할 파릇파릇한 잔디밭으로 일일 농사 (잡초제거?) 를 지으러 나가곤 했다.
십오년의 세월도 순식간에 흘렀는데 그까짓 일주일이야 순식간이라고 어찌 불평하랴만
그에게 부탁한 설교 (약속을 받고 평생을 약속을 붙들며 살았던 아브라함이 죽을때도 생전에
이루어 주지 않으신 그 약속을 붙들고 죽었다는)를 파도소리 함께 듣고 묻으면서 우린 짐을 싸고 돌아와야 했다.
카스다 게시판에는 활짝 웃고있는 그의 모습이 맨 윗쪽에 있다.
지금 다시 찍으면 더 활짝 그리고 더 건강한 사진이 될텐데...
민초의 사람들아 놀러좀 다니시오.
친구와 기억에 남는 시간을 맹그시오.
쏜살같은 세월에 노출되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바닷 바람 한줌이라도 막아 주는
값싼 친절도 한번씩 베풀어 보시오.
얼마남지 않은 나의 시간표도 그렇고
또 우리 서로 기댜려야할 아빕의 날자도 그러하니...
아빕께서 부인과 가족에게로 돌아가면 저리도 하루종일 댓글문화에 심취해서
민초를 어지럽히는 일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 믿어지는데...
아니 그렇소?
손을 꼽고
이분 맞죠?????
웃는 양반이 이분밖에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