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ready but not yet

by fallbaram posted Feb 06, 2015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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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과 이미사이 - 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속에 들어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처럼

아직 오지 않는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미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뿌리를 보살피 듯
우리 곁의 의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하고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이십몇년전

첫학기 세미나리 강의에서 만난 인상깊은 교수가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언제나 포도주 한잔 한 사람처럼 얼굴에 홍조와

취기가 있었던 사람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다.


그분이 구원론 (Salvation) 을 강의하셨는데

첨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셨고 강의에 열이붙으면 홍조띤 얼굴이

더 붉어지고 뒷발꿈치을 들어올리며 작은키를 올려 세우는 특유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Already

but

not yet!


그분이 주제가 처럼 외치던 제목이다.


다시말해서 십자가는
Already 이다.

더이상 추가할 것이 없는 완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십자가의 완성에 덧칠을 하고싶어

미친다.


그 완성에 덧칠없이 참여하는것이 믿음의 첫단계다.

그 완성에 들어가 본 믿음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Not yet 이 재림이다.

Already 가 없으면 not yet 도 없는 것이다.


Not yet 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의 철저한

감동이요 감격인 것이다.


그 감동과 감격을 재현하는 곳이 이웃과 나의 사이이다.

박노해도 말하는 그것을 우리는 왜 잘 모를까?


줄을 설때

자신의 힘으로 이웃을 도운자들은 왼편에 서고

Already 의 힘으로 이웃을 도운자들은 오른편에 선다고 한다.


루터가 이런말을 했다.

그리스도인이란 주막에서 기독교라는 술에 취한 사람들인데

나귀를 타고 집으로 갈때에 오른쪽은 은혜요 왼쪽은 율법이다.

어쨋던 넘이질 수 밖에 없는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데

기왕에 넘어질것이면 은혜쪽으로 넘어져라고 한다.


일곱번은 왼쪽으로 넘어지다가 다시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넘어지는

자들이 의인이다. 그분이 손잡아 일으켜 주실 일이다.


이미 쓰여진 말씀

이미 달리신 십자가의 완성에 덧칠하고 싶은 선지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 동네..

가슴이 아프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미국속담에

Early bird gets the worm.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얻는다)


그러나 자신이 새가 아닌 벌레라면 일찍 일어나면 큰일이다(?).


왼편에 줄을 선 사람들이 장래에 아빕을 기다리면 그것도

큰일이다.


나는 왜 요즘 부쩍 이런 노파심이 생기는 것인가.

시인 박노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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