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무리 마을) 다음까페에서 복사 **
양띠 13:17
--> 양띠님이 제시한 구절을 통해 양띠님은 <거듭나기 전 또는 의롭다 칭함 받기 전>에는 결코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다라고 성경은 말한다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절대적인 가르침으로 아래의 생애의 빛 가르침을 보시기 바랍니다.
<생애의 빛 가르침>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를 살아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이 순결케 되어야 한다....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죄인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460,461.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죄인이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고 범죄로부터 돌이켜 계명을 순종하게 될 때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그들에게 입혀 주신다.” FILB 115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아담이 범죄 전에 살았던 죄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 우리는 그 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뜻이다.” SF 1902, 7/23
-->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생명의 빛의 가르침은 <의롭하 하심을 받는 칭의>를 받기 전에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한다>라고 하며 그것이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서 <계명에 순종하게 될 때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입혀주신다>라는 <의롭다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되는 것이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 <즉 의롭다 함>는 뜻이다 라고 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 <계명을 순종하게될 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엄연히 양띠님이 위에서 성경구절을 제시한 것과 완전히 틀린 주장입니다.
양띠님 : 죄인--> 회개 --> 의롭다 함을 받음 --> 계명에 순종
생애의 빛 : 죄인--> 회개와 계명에 순종, 굴복--> 의롭다 함을 받음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백한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도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는 의를 이룰 수 없지만 우리의 모든 마음을 주님께 바치고 순종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 구절의 구조를 보십시요. 대립형입니다.
1.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2.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 에서 <의에 이른다>를 의롭다 칭함으로 보시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사망에 이르고>는 무엇인가요?
1. <거듭남 이전에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냐> 아니면
2. <거듭남 이후에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냐>
이 두 명제는 완전히 다른 상태입니다. 1번의 경우가 생애의 빛의 주장인데, 이는 초대교회때부터 지금까지 늘 있어왔던 오류들입니다. 도르트신조에서도 이러한 오류에 대해서 반박을 하고 있긴 합니다.
만약 생애의 빛의 주장과 본인이 주장한 것이 달라보이지 않는다면 <거듭남>에 대해서 즉 구원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신다는 뜻이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성도임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원리는 저도 동의하나, 문제는 그러한 원리가 언제 적용되어지느냐에 대한 성경적 원칙에서
-양띠님은 <거듭남 이후>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야 가능하다고 했고, 거듭남 이후 성령의 은혜로 율법의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애의 빛에서는 <거듭나기 전> 즉 아직 죄인이 되었을 때에 성령의 은혜와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큰 차이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생애의 빛에서 거듭나기 전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목사님이 오해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전에 아직 육신적인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킬수도 또 따를 수도 없는데..
생애의 빛에서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니... 저는 생애의 빛에서 나오는 글이나 강병국 목사님의 말씀을 여러번 들어봤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사님께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의에 이르는 것에 대해서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알고계신 하나의 죄라도 품고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어도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상태에 있는 자라도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해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죄인이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고 범죄로부터 돌이켜 계명을 순종하게 될 때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그들에게 입혀 주신다.” FILB 115> -> 강병국 목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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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 않고 범죄로부터 돌이켜---> 회개를 뜻합니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2. 계명을 순종하게 될 때 ---> 분명히 계명을 순종하게 될때 라고 말합니다. 제가 잘못읽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과 2의 결과(그 후에)는 곧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그들에게 입혀주신다>---> 칭의(의롭다 하심)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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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십시요.. 분명히 강병국 목사는 <의롭다 칭함을 받기 전>에 <회개>와 <계명을 순종할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성령의 은혜로 회개를 통해 만들어지는 즉 하나님의 은혜로만 만들어지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계명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먼저 새 마음을 하나님께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새 마음을 받는 과정이 회개의 과정입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근거는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그 근거이지, 우리가 <계명에 순종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의 <상태>로는 <거듭날 근거 즉 칭의를 받을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의 <상태>가 <거듭나고 의롭다 칭함을 받을 근거>는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죽어주신 십자가의 구속>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에 <우리가 계명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거나 의롭다 하는 칭의를 받게 하는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행위구원>의 대표적인 주장들입니다. 행위구원의 <인간의 어떤 행위를 근거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주요 핵심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지킬 때에 <의로운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행위는 <십자가가 우리를 어떤 위치로 옮겼느냐>에 따라서 의로운 행위가 되고 아닌 죄악된 행위가 됩니다.
십자가의 구속이 우리존재를 <죄의 위치>에서 <의로운 위치>로 옮긴 것이지, 결코 우리의 어떤 행위가 우리를 죄의 위치에서 의로운 위치로 옮기는 요소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거듭나기 위해 성령의 은혜로 죄를 돌이키고, 성령의 은혜로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령의 은혜로만 죄에서 돌이키고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저도 이에 대해서 잘못되었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맞는 이야기를 완전히 잘못된 말로 뒤바꿔버리는 명제가 바로 <그렇게 할 때에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혹 거듭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롭다 칭함을 받는 근거는 십자가 뿐)를 비진리(의롭다 칭함 받는 근거는 회개와 계명 순종)로 만들어 버린 상태입니다.
1. 거듭나는 것과
2.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의 구별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이 되었다>는 뜻으로 새 마음을 심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구원 받았다", "예수님을 믿었다" 라는 다른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하나님은 그때에 "의롭다 칭해 주십니다"
거듭나는 것은 <죄를 깨닫고 회개와 믿음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 과정은 성령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며, 죄를 깨닫고 말씀을 깨달아 믿음이 자라고 죄에서 점점 돌이켜 하나님으로 향하는 마음의 변화의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즉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지요
즉 성령께서는 성자의 구속사역(십자가 사건)을 죄인들에게 <적용시키는 것-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듭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모두 성자의 구속사역이 우리에게 적용되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거듭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체험하고 그 체험에 반응하여 회개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거듭남과 의롭다 하심의 근거는 <십자가>가 그 근거이지.. <우리의 상태와 어떤 행위>가 그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의롭다 칭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법적
거듭남이 <죄인이 의인이 되는 실제적 현상>을 말하는 것이라면..
의롭다 함은 <죄인이 의인이 된 실제적 상태>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선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자의 구속사역인 십자가 공로>를 근거로만 되어지는 것이며, <죄인의 어떤 상태>가 그 근거 되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정리하지요.
1. 우리 마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면 우리 마음이 거듭나야 한다.
3. 우리 마음이 거듭나려면 오직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난다.
4. 우리 마음이 거듭나면 이제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신다.
입니다.
<거듭나면(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된 상태)> <의롭다고 칭해준다> 라고 했지요..
그리고 거듭남과 의롭다 칭함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계명순종)에 근거하여 거듭나고 의롭다 칭해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구속을 근거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의롭다 칭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없이 믿고 교회 가운데서 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주이심을 고백해야합니다. 우리는 죄된 연약과 허물을 온전히 벗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 (거듭난)사람은 곧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을 받습니다. 그것이 새 마음이요, 살같은 마음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나의 죄때문에 예수께서 단번에 죽으신 사실을 믿어 다시는 죄를 위해 살지 않기로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칭의의 결과입니다.
양띠님 : 죄인--> 회개(믿음) -->거듭남, 의롭다 함을 받음 --> 계명에 순종
생애의 빛 : 죄인--> 회개(믿음)와 계명에 순종, 굴복--> 거듭남, 의롭다 함을 받음
이 내용을 잘 면밀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거듭남=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 입니다.
그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저는 <물과 성령으로만 생기는 것>이라고 했고
생명의 빛은 <물과 성령과 계명순종>이라고 <계명순종>이란 인간행위를 추가한 것입니다.
저도 이제 목사님의 글을 읽었으니 정리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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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하지요.
1. 우리 마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려면 우리 마음이 거듭나야 한다.
3. 우리 마음이 거듭나려면 오직 물과 성령으로만!!! 거듭난다.
4. 우리 마음이 거듭나면 이제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해주신다.
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 것이 거듭남이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목사님도 저에게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전적으로 지키게 될까요? 물론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 새 마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전적으로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정리와 양띠님의 정의는 완전 틀립니다.
저의 글이 동의가 된다고 하면서 완전 다른 말을 하시는 것은
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부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분명히 죄는 불법입니다.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명을 어기는 것은 죄입니다.
이런 죄를 여전히 품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 받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도 다음과 같이 신명기에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그 명하신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찌니라"(신 6:25)
이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의롭다 칭해주시겠습니까?
물론 거듭남과 칭의는 거의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사랑으로 지킬 수 있고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죄가 없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6)
<이런 죄를 여전히 품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 받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 라고 하셨는데요..
우리가 품고 있는 죄가 어떻게 씻겨져서 우리가 의롭다 칭함 받게 되는 것입니까?
1. 계명에 순종해서 죄가 씻겨 집니까?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씻겨 집니까?
위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이 우리의 죄를 씻겨 줍니까?
성경에서 <죄인의 죄를 씻겨 주는 것이 무엇이라 합니까?>
1. 계명에 순종하면 죄가 씻겨 진다 합니까?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이 죄인의 죄를 씻겨 준다 합니까?
왜 양띠님은 계속적으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마치 거듭남과 연관을 시키는 것이지요?
-거듭나기 전에는 죄로 인해 계명을 순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의로운 상태가 아니지요..
-거듭난 후에는 죄를 씻김 받은 새마음이라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의로운 상태입니다.
계명에 순종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거듭났다 안거듭났다가 결정되는 것이
죄를 씻기는 것은 <계명 순종>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계명 순종이 죄를 씻기는 것이라면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의 방법이란 소리 밖에 더 되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아니면 왜 계속적으로 계명순종이 거듭남이라고 자꾸 주장하시지요?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았다> 라고 했고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라고 했었는데..
양띠님의 주장이 지금 <구약시대에는 율법 지킴으로 구원 받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아니다! 라고 하신다면 지금 양띠님은 본인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위에 적으신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지금 주장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위에 양띠님이 기록하신 글 제대로 이해하고 지금 주장하시는 것인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계명을 지켜야 거듭납니까?>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거듭납니까?>
성경이 계명을 지켜야 거듭난다고 말하는 구절이 한구절이라도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안식교가 괜히 이단이 아닙니다.
구원의 방법에 <계명 순종>이란 것을 첨부했기 때문입니다.
계명 순종은 구원 받은 이후에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 것이 거듭남이라 생각합니다. >
--> 라고 하셨는데, 양띠님의 이러한 주장이 바로 <계명을 지켜야 거듭난다>라는 말입니다.
2. 그 마음(거듭난 마음-새마음)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 거듭난 마음 후에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이 되는 것이지...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그 자체(그 상태)가 거듭남이 아닙니다.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거듭남이다.>라는 말과
<거듭나야지만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라는 말은 완전히 틀린 개념입니다.
양띠님의 거듭남은 <계명에 순종하는 상태를 거듭남>이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성경은 <거듭남은 죄악된 마음이 성결케 되고 새롭게 된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상태를 거듭난 상태라 말하지 않습니다.
계명은 먼저 마음이 거듭난 후에야 계명에 순종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너희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Circumcise therefore the foreskin of your heart, and be no more
stiffnecked.
성경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지만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즉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고: 마음의 할례= 거듭남
신명기 30:6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여 네가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마음의 할례를 베푸셔서.. 즉 거듭나게 하신 후에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신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이구절이 계명을 지키면 거듭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증거가 그가 계명을 지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밑의 요한이서를 첨부한 구절도 역시 같은 말입니다. 즉 저 사람이 거듭났다는 증거가 어디있냐? 할 떄에 그가 계명을 지킴으로 알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즉 거듭난 후에 계명 지킴입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거듭남이라고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것 = 행위> 입니다. 즉 계명에 순종하는 행위입니다.
그럼 양띠님의 주장은 행위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말로 설명한다해도 결국 그 결론은 계명에 순종하는 행위가 거듭남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으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계명을 순종하는 상태가 거듭남>이라고 왜곡시킨 사단의 거짓 가르침에 속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 것이 거듭남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부분이 오해를 부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여기까지가 거듭남입니다. 이제 동의하시나요?
그리고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십니다. >---> 네 맞습니다. 여기서 <새영과 새마음>이 거듭남입니다.
양띠님.. <거듭남>이 육체의 거듭남 입니까? 육체가 거듭남.. 즉 육체가 다시 새몸을 입는 것이 거듭남입니까?
양띠님은 지금 <거듭남>이 <육체까지 부활한 상태>로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러한 질문을 할 수 없지요.
우리가 부활하기 전까지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는 없다는 뜻인가요?
혹시 죄를 완전히 승리하고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이 있었나요?
거듭남 이후 모세와 다윗과 노아와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중에 과연 죽을 때까지 죄를 짓지 않던 자가 있었던가요?
지금 양띠님은 <거듭남>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군요.
<거듭남>으로 육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겠지요.. 거듭난 마음이 육체를 완전히 100% 지배해서 육체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 아니지요..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5~9)
고린도교회와 로마교회에 바울이 서신서를 써 보낸 이유가 그들이 100% 행실이 옳아서 보냈다고 읽혀지십니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연약하여 쓰러질 때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며 점점 더 성장하였고 나중에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애를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바로 죄를 완전히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함께라면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도 없이 우리가 어떻게 거듭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연약하여 쓰러질 때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며 점점 더 성장하였고 나중에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생애를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거듭난 이후로 바로 죄를 완전히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는 동의합니다.네 거듭난 자의 마음은 정말 그러합니다. 완전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신념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성경의 내용을 <기본>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육체가 <실제로 하나님 앞에 100% 완벽하게 죄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웨슬레도 그러한 일시적 완전상태라 해도 <죄를 죄로 모를 경우에만 해당하는 완전상태>라고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18~25)
아브라함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고 아브라함을 의롭다 칭하셨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죄를 완전히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오직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일 3:7-9)
다음과 같은 성경절을 함께 묵상해보기 원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1, 2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 2)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믿음이..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
---> 믿음이 약해지지않고, 의심치 않고, 확신하고.. --> 이거 다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믿고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고 아브라함을 의롭다 칭하셨습니다. --> 네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죄를 완전히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생략.. 그런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가 진정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게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이것은 위의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죄를 짓지 않으려는 육체의 행함까지 포함한 말로 갑자기 바뀝니다.>
물론 우리가 아직 성화되지 않은 사람은 죄로 인하여 쓰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리에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우리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없다라고 생각해버리시면 이 일은 끝까지 불가능한 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가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주님앞에 서도록 힘쓰라고 하셨고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까지 자라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는 <영화의 상태 즉 의의 부활의 상태>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그것을 부인하십니까?
양띠님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까?
왜 부활의 상태를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거듭남과 죄 문제를 억지로 이론적으로 해결하시려고 애를 쓰십니까?
사람의 전 인생의 과정이..
이생의 삶-> 죽음-> 부활 인데... 왜 <이생의 삶과 죽음>까지만 생각하십니까? 부활까지 생각하십시요.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우리는 지금 이 육체를 가지고는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없고 부활한 후에야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 성경절을 복사해주십시오.
저도 제가 믿는 것이 완전한 진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목사님과 제가 진리 가운데로 점점 인도함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제어하신다면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마지막은 영생이라.. 여기서 영생은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해도 우리 구원의 마지막의 영생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띠님이 응용한 구절인데....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부활)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8:23~)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롬8:26~27) ---> 대신 간구하여 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롬10:9)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롬10:10)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롬11:6)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전15:18~19)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고전15:54)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빌3:9)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빌3:21)
그리고 여러분을 위하여 썩지 않고, 더러워 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의 몫으로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벧전1:3~5)
우리가 과거에 지었던 죄는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우리가 현재 투쟁하는 죄의 문제도 해결해주십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기심, 교만함, 시기, 질투, 탐심 등등 모든 악한 마음을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양띠님 제가 질문드릴까요?
양띠님이 질문하신 <완전히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게 해주시나요? >라는 질문은
거듭남이후---> 죽기까지.. 100% 모든 죄를 짓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합니까? 양띠님? 그럼 부활이 필요없지요?
우리는 지금 이순간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죄가 없다면 주님 보시기에는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죠.
우리가 완전할 수 없다면 예수님은 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또 사탄의 기만 때문에 넘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때에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야죠.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1. 자신에게 있는 죄를 미처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2. 완전한 상태는 <일시적> 상태임.
이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우리의 마음속에 품은 죄가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보십니다.
성령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면 이런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이것이 완전한 상태라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를 모습을 보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십니까?
양띠님 우리에게 의가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죄송스럽지도 않습니까?
왜 자꾸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근거를 자꾸 <우리들의 어떤 행위>에 두려고 하지요?
양띠님은 처음에는 생애의 빛의 주장과 같이
1. <계명에 순종하는 것=거듭남>이라 했으나 위의 덧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2. 이후로 <거듭난 후에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많이 수정되었습니다.
3. 그리고 오늘은<거듭난 후에도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는 없으나 전적으로 순종하려는 믿음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까지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올리는 글 중에 다시금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우리는 지금 이 육체를 가지고는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없고 부활한 후에야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 성경절을 복사해주십시오. >--> 라고 하셨는데... 성경구절 복사해주면..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까? 여태 성경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셨던데요..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부활)이라 --> 마지막이 단계랍니다. 마지막에 이르기도 전에 죄를 승리하여 막을 내린다? 아니지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부활)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롬8:23~) --> 왜 탄식합니까? 100% 다 순종하는데...
카톨릭의 구원관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즉 믿음의 행위로 인해 의롭다 칭함 받음... --> 카톨릭의 칭의관이지요..
카톨릭의 칭의관과 종교개혁자의 칭의관을 구별하는 설교문 하나 올립니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양띠님 .. 성경에 어떤 구절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은 성경구절을 왜 서로 달리 해석하겠습니까? 그럼 구절이 중요한게 아니라 해석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사단들도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구절이 중요한게 아니라 해석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 속에서 죄를 승리하는 것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분명히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아직도 아래 말씀에 근거해 제가 납득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요일 2:3~6)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4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이런 일들은 무겁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 4)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 보면서 계속 말씀을 연구해보겠습니다.
계속 열심히 답변 달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저는 죄를 승리하는 것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없습니다.
되려 그 반대로 죄를 승리하길, 계명에 순종하길 간절히 원하며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간절하나 육신이 연약함을 직시하고 있어 부활의 소망이 더욱 간절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루터가 <성도는 죄인이며 동시에 의인이다>라는 명제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희 양무리마을 카페에서 검색해도 나옵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라는 말은 <영혼육이 모두 100% 죄를 짓지 아니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는 이단 외에 기독교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밑에 깔고, 복음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기독교인들’?the justified coram Deo through the grace of the Gospel by faith 역시 일평생 살아가면서 항상 넘어지는 죄인이라고 하는 그의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신학적인 주제에 걸맞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완벽한 기독교인이라도 하나님 존전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저는 부활 전에도 우리가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간다면 죄를 온전히 승리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부활해야만 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시니 저도 그 부분 제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바라보며 따라가길 기도드립니다.
양띠님의 논지는 모순입니다.
즉 <육신의 연약함을 직시한다 하면서도 결국 이 땅에서 연약한 육신이 주님과 동행하며 죄를 온전히 승리하고 계명을 지킬 수 있다>라는 앞뒤 맞지 않는 모순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 말은 결구 현세에 모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현재 의인이라 하나님 앞에 선언받은 상태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태>가 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도 제 스스로 완전한 자가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 육체의 죗된 본성 때문에 쓰러질 때도 있구요.
그러나 그런 때마다 더 예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을 더 바라보게 됩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 12:10, 11)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단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갑시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서정>입니다.
구원의 서정은 <이생에서의 구원의 상태와 사후의 구원의 상태와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구원의 상태>에 대해
완전히 배제하고 <이생에서만의 구원의 상태>를 근거로 하여 <구원의 완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모순이며 성경적이지도 않습니다.
롬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 구원의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지 않습니다. 마지막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영생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목사님과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보는 분들이 진리를 바로 알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저는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린다고 생각지 않고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생 누리는 것을 성경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토론을 마치자고 하셨지만 한 번만 더 제가 궁금한 점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번만 더 인내로 사랑으로 답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다 죽고, 재산들이 다 없어지고, 자기 몸에 악창까지 나서 괴로운 가운데 자기 아내까지 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괴로움 가운데 욥은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또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앞에서 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렇게 살아서도 주님과 동행한 사람들은 주님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다니엘의 세친구들과 풀무불에서 함께하셨고 욥에게는 직접 나타나셔서 억울한 일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온 세상에 나아가서 온 우주에 하나님이 증거되었습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킹제임스역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습니다.
"And in their mouth was found no guile: for they are without fault before the throne of God"(계 14:5)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before the throne of God)에서 흠이 없는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앞에서 죄가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킨자들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저는 이런 말씀들을 토대로 우리가 주님안에서 죄를 온전히 승리할 수 있고 계명을 전적으로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 스스로는 하나의 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있으니 목사님과 제가 주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더 연구하길 원합니다.
제 입장을 좀 더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덧붙였습니다.
주님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로 서게 되도록 주님께서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들로 서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욥기는 끝장까지 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예 문자적으로 "욥이 회개"한 것이 나오니 말입니다. 욥기가 주는 교훈은 <의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성에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앞에서 완전하다 할 수 없는 피조물의 절대적 한계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사람이시니까.. 이런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목사님의 의견을 따를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 해석에 대해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말씀에 의해 제가 말씀드렸던대로 사람이 거듭나고 성령님과 동행할 때 죄를 승리하고 계명을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비록 넘어질 때가 있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하려합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신학자들의 책은 보지 않겠습니다. 성경 말씀이 그러한데 왜 제가 자꾸 사람들의 견해를 참고하겠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해주십니다.
다만 목사님께서 자꾸 제가 주장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셔서 목사님께 여쭤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목사님과 저를 끝까지 진리가운데로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을 다 지으시고 하나하나 보살피시는 것을 .. 그런 주님께서 욥을 얼마나 보살피고 계신지를 .. 그리고 욥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사단의 고소 때문이며.. 이런일을 통하여 온 우주에 정말 욥이 이런 가운데서도 죄를 범하지 않는 의인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인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욥은 모르고 욥의 친구들과 엘리바스의 말에 하나님의 뜻이 혼동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욥은 회개한 것이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 42:7)
그리고 욥이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기도해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주십니다.
저는 그런 완전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성령님에 의해 우리의 마음에 품은 죄가 없고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려는 마음..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완전으로 봐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흠이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즉 동기)를 보시는 분이시기에 저는 주님 앞에서 순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완전으로 봐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의 눈에는 흠이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즉 동기)를 보시는 분이시기에 저는 주님 앞에서 순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이것은 저도 <일부는> 동의한다고 전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양띠님의 주장은 생애의 빛의 주장과 다른 것임도 역시 말씀드렸고요.. 마음에 있는 것이 연약한 육신으로 드러나지만, 그 육신이 연약해서 마음을 못 따라 가지요.. 마음이 곧 행위는 아닙니
그러나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그런 행위 구원에 대해서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생애의 빛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구요.
목사님께서 오해하시고 이단으로 정죄하시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말에 실수해서 목사님께서 오해하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인간들이라 실수가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성령님께 맡깁니다.
목사님과 저를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동안 열심히 댓글로 알려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즉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받는 근거가
1. 인간에게서 그 근거를 찾는가?
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에서 그 근거를 찾는가?
에서 생애의 빛과 양띠님은 계속적으로 <우리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의 의는 <십자가의 의>가 빠지면 하나님 앞에 부족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럼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 없지요.. 그냥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구약시대 성도들이 십자가 사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거듭난 마음을 가졌듯이 말입니다.
아닙니다.
우리 거듭난 마음 자체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공로 이외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주시기에 의로운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에 대해서 말입니다.
1. 십자가 없이 거듭난 우리 마음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가? (의롭다 여김 받는 근거가 사람의 상태에 있음)
2. 십자가의 공로가 덧입혀져서 의롭다 하시는가? (의롭다 여김 받는 근거가 사람에게 없고 오직 십자가에만 있음)
둘 중에 어느 것입니까? 답변으로 끝내실 분은 양띠님 같아 보입니다.
또 다시 <사람의 상태>에 의롭다할 근거가 있다는 주장을 듣는 일이 없었음 좋겠습니다.
제가 좀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이 땅에 태어날 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아담은 바로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을 대신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아벨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고 이스라엘백성도 대대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양을 잡을 때마다 믿음의 선조들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굳이 다른 성경구절 양띠님이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해하는 부분만 언급하십시요..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에 죽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모든 인류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인생을 한번 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입니다.
부자로 살든지, 가난한자로 살든지 .., 불구자로 살든지, 건강한 사람으로 살든지 ...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자꾸만 십자가 없이 거듭난 우리 마음 때문에 우리를 의롭다 하시냐면서 자꾸 저를 오해하시니 제가 부연설명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참된 믿음이 있는 자는 주님의 능력으로 의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뿐입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양띠님을 오해해서 양띠님이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는것을 주장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생애의 빛>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계명을 순종하게 될 때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그들에게 입혀 주신다
--> 생명의 빛은 계명에 순종할 때, 그분의 완전함과 의를 입혀준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것을 부인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읽어보세요.
그 곳에 복이 있는 자를 설명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자"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 없이는 어떤 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과거의 죄도 십자가의 피값으로 대속해주셨고 현재 우리가 겪는 죄와의 투쟁도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생애의 빛이 예수님 없이 어떤 의도 이룰 수 있다고 합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통해 의에 이른다고 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의에 이르게 되느냐!!!!> 그것을 지금 묻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례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진정 십자가의 은혜로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명을 순종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성경에도 분명히 다음과 같이 나와있습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7~9)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지을 수 없다고 성경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애의 빛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오직 믿음 뿐 아니라 계명에 순종하게 될 때 의롭게 된다" 라고 말합니다.
여태 이것을 이야기했는데, 지금 무슨 소리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야고보서에도 귀신의 믿음과 진정한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2:17, 19~22)
그리고 계명을 순종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 양띠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글에서 어느 부분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그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명을 순종하게 될때--> 의롭다 칭함 받음(생애의 빛에서 말하는 칭의) (전통기독교에선 이 단계는 의롭다 함을 받은 이후의 성화의 단계임)
-->이 차이의 문제를 모르십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성령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겐 의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 14)라고 말씀하신 것이죠